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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신건 국가정보원장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 이수형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sooh@donga.com

솜같은 분위기, 칼같은 기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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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은 예리하기도 하지만 곧기도 하다. 그는 국정원 2차장 시절인 99년 초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이제 대통령에게 바른 말을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자. 지금까지는 새 정부가 뿌리를 내리도록 도와주고 감싸주는 데 필요한 정보를 보고했다. 이제부터 민심을 그대로 전하도록 하자. 비판적인 이야기도 거르지 말고 보고하도록 하자. 정부가 현실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국정원이 그 정도도 안 하면 직무유기다.”

비슷한 시기 국정원 일부에서 정치안정을 위해서는 여당인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전국적인 신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대해 당시 신차장은 부하 직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정권이 바뀐 뒤에 안기부 국·실장들이 왜 구속되는지 아느냐. 97년 대통령 선거 전에 오익제 편지를 공개할 것인지 여부를 놓고 발언한 것이 그들의 혐의내용이다. 국정원법을 봐라.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정치에 개입하면 곧바로 법을 어긴 것이 된다.”

신원장 취임 이후 정가에서는 ‘3신의 시대’가 열렸다는 말이 나돌았다. 한나라당 권철현(權哲賢) 대변인은 5월6일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권이 신승남(愼承男) 차장을 검찰총장에 기용해 신건 국정원장,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 등과 함께 ‘신신신 체제’를 만들려 한다”며 ‘3신 체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신승남 차장은 5월 말 박순용(朴舜用) 전검찰총장 후임으로 새 총장에 임명됐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검사 출신이다. ‘친정’이 다 같다. 호남 출신인 점도 공통점. 그래서 ‘3신 시대’라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성(姓)이 한글로 ‘신’자 발음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따라서 ‘3신’이라는 조어(造語) 자체가 난센스라고 법조인들은 말한다. 검찰의 한 고위간부는 “세 사람을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한 실례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검찰 간부 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세 사람에 대해 언급하는 유일한 효용성은 세 사람이 전혀 비교대상이 되지 않으며 따라서 ‘3신’이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들은 같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훨씬 많다. 같은 신씨이면서도 ‘뿌리’가 다 다르다. 신(辛)원장은 본관이 영월(寧越)이고 신(愼)총장은 거창(居昌), 신(辛)수석은 영산(靈山)이다.

집안도 각기 특성이 있다. 신원장은 ‘촛불’ 등 목가적인 서정시로 유명한 고 (故) 신석정(辛夕汀) 시인이 가까운 친척. 신시인은 대대로 가톨릭 집안인 신원장의 대부이기도 하며, 신원장의 부친 역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시인이다.

신총장은 교보그룹 창업주인 신용호(愼鏞虎)전회장 가문과 가까운 집안 사이이며 조상호(曺相鎬) 전체육부장관이 장인이다. 신수석은 대전지법 마용주(馬鏞周)판사를 사위로 맞아 법조 가문을 이뤄가고 있다.

‘3신 시대론’의 허실

고향도 같은 호남이기는 하지만 겹치는 곳이 없다. 신원장 집안은 대대로 전주의 유지였고 신총장은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다. 신수석은 전형적인 광주 토박이.

나이는 신원장이 41년생으로 가장 많고 신수석이 43년생, 신총장이 44년생이다. 대학은 신원장이 서울대 법대 59학번으로 같은 대학 62학번인 신총장의 3년 선배다. 신수석은 고려대 법대 61학번.

법조계 입문은 신원장이 63년 대학 4학년 때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면서 호남 검찰인맥의 길을 텄고 신총장은 68년 제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고등고시가 63년 제16회로 끝나고 그해 사법시험 1회가 치러졌기 때문에 시험 기수로는 신총장이 9기 후배다. 신수석은 그 신총장보다 2년 늦은 70년 제1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찰에서의 뿌리는 더욱 다르다. 이들은 30년 가까이 검사생활을 했거나 하고 있지만 같이 일한 적은 없다. 무엇보다 신원장과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기수와 보직에 격차가 너무 크다. 업무 스타일이나 성격도 판이하다. 이 때문에 신총장과 신수석은 신원장을 버거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원장은 검찰 재직시 대검 중수부 등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특수부 검사였다. 그는 82년 5월 ‘이철희 장영자 어음 사기 사건’ 수사 당시 대검 중수부 4과장으로 큰손 장영자(張玲子)씨의 형부이면서 영부인 이순자(李順子)여사의 인척인 이규광(李圭光) 광업진흥공사 사장을 직접 조사해 하루 만에 자백을 받아내고 구속했다.

신원장은 호남 출신이면서도 과거 영남정권에서 요직 중의 요직인 대검 중수부 1,3과장과 대검 중수부장, 법무부 교정국장과 차관을 지냈다. 검찰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는 “과거 영남정권하에서 호남 출신 검사들이 알게 모르게 인사차별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일부 호남검사들은 정권을 추종하면서 출세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신원장은 그야말로 실력으로 중요 보직을 맡았다”고 말했다.

93년 김영삼(金泳三)정부가 들어서면서 신원장은 광주고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입성했다. 법무부 차관은 고검장 서열 1순위로 차기 검찰총장을 노릴 수 있는 요직.

그러나 영광은 곧 좌절로 바뀌었다. 문민정부 내에서 아무도 돌봐주는 세력이 없던 그는 문민정부 초기 사정(司正)수사 때 ‘누명’을 쓰고 낙마했다.

93년 초 시작된 슬롯머신 수사는 당시 박철언(朴哲彦) 의원과 이건개(李健介) 대전고검장 구속으로 이어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사건의 파장이 신건 차관에게도 미쳤다. 당시 신차관이 사건의 주역인 슬롯머신업계의 대부 정덕진(鄭德珍)씨와 절친했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신차관이 정씨의 비호 또는 유착세력이라는 얘기도 나돌았다.

신차관은 결국 당시 고시 동기인 전재기(全在琪) 법무연수원장과 함께 후배검사들에게 불려가 정씨 형제를 알게 된 경위 등을 조사받았다.

신차관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신차관은 70년대 중반 서울 영등포지청(지금의 남부지청) 근무 당시 토지사기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고교 후배 신모씨를 통해 정씨를 알게 됐고 그 뒤 연락이 없다가 80년대 초 그 후배 신씨가 서울 강남에 장어구이집을 차리면서 신차관과 정씨 부부를 초청해 다시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경위야 어쨌든 언론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공직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신차관은 후배 검사들에게 조사를 받으러 가기 직전 사표를 냈다.

그는 후에 “‘검사’로서 후배 검사에게 조사받는 수치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당시 검찰 고위 간부들의 태도. 당시 사건 수사를 보고받는 위치에 있던 검찰 고위간부는 신건차관과 전재기 연수원장 등의 이름이 나도는 것에 대해 기자들이 확인을 요구하자 “아 참, 이 사람들아, 뭐가 그리 급한가. 다 사실대로 밝혀질 텐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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