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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리 기자의 사람 속으로

불을 껴안은 얼음, 소설가 박완서

“인생에 엄살떨지 마라, 비명도 교성도 지르지 말라”

  • 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불을 껴안은 얼음, 소설가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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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다섯을 모유로 기른 그는, 마흔 살 되던 해 여름 비로소 작가가 됐다.
  • 하루 20개의 연탄을 갈며, 망령 든 시어머니를 연민하며, 남편과 외아들을 한 해에 잃는 참절에도 마침내 문학으로 다시 섰다.
불을 껴안은 얼음, 소설가 박완서
우리는 종종 인생의 한 시기를 어떤 책, 어떤 영화로 기억한다. TV에서 ‘빠삐용’을 방영하던 날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고, 스물세 살 여름은 기형도의 시 ‘빈 집’에 갇혀 있다. 그러고 보면 소설가 박완서(73)는 ‘괴물’이었다. 열다섯, 스물, 스물아홉, 서른 셋. 삶의 도처에 도둑처럼 출몰해 뺨도 올려붙이고 가끔은 등도 쓸어 주었다. 그가 제 주인공을 내려보는 꼭 그만큼의 말끔함으로, 엄살떨지 않고 발 꼭꼭 찍어붙이며 허리 세워 걷고 싶었다.

구리시 아치울 마을로 달려가는 지금, 머리 속은 내내 그 생각이다. 고즈넉한 전원마을에서 꽃을 벗삼아 물러앉은 노(老)작가.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련만, 또 진정 그렇더란 증언이 한둘이 아니건만, 어쩐지 배신 같고 연막만 같다.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그 독한 직관의 칼을, 그는 어느 깊이에 숨겨두고 있단 말인가.

‘실물’과 ‘박제’, 그 하늘 땅 차이

“어서 오세요.”

담 너머로 인사 건네는 그의 미소가 과연 따뜻하다. 대문 열고 들어서니 눈에 확 안겨오는 초여름 뜨락. 잘고 수굿하면서도 깜찍한 오색 들꽃들이 넓은 잔디밭을 빙 둘러 마치 맞게 피어 있다.

객을 맞고 사진 촬영에 응하는 그의 태도는 능숙하고 단정하다. 활력, 효율, 명민.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이삼십대 신진에게나 어울릴 법한 단어들이 속속 떠오른다. 동선은 정확하고 몸짓에는 낭비가 없다. 목소리는 또 어떤가. 갓 지어 기름 도는 햅쌀밥 같다. 단 한 번 반말투 섞지 않는 공대(恭待)가 오히려 편안한 거리감을 형성한다.

햇살 밀려드는 거실에 차 한 잔 놓고 마주앉는다. ‘실물’과 ‘박제’의 하늘 땅 차이에 내심 혀를 내두른다. 책 속 그의 사진은 만년 소녀 같지 않던가. 이웃집 아낙처럼 심상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가까이서 본 그는 매우 세련된 여성이다. ‘귀족적’이라 해도 넘칠 것이 없어 뵌다. 예의, 겸손, 그 안의 감출 수 없는 연륜과 자신감. 그의 10만 고정독자들에게, 당신들 깜빡 속았다고, 사실 그 소설가 ‘거물’의 자태를 갖췄노라고 호들갑 떨며 일러주고 싶다. 아직도 노인 아닌 여자 냄새가 나더라는 것 또한.

자주 저고리, 검정 치마, 하얀 줄 세 개

박완서의 삶은 그가 쓴 여러 자전적 소설들을 통해 일반에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그는 1931년 개성시에서 10㎞쯤 떨어진 벽촌 박적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네 살 때 약을 제대로 못 써 유명을 달리했고, 형제라고는 위로 열 살 차이 나는 오빠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부친의 부재는 선생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요.

“저는 아버지가 없다는 결핍감을 모르고 자랐어요.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조부모 댁에서 함께 살았는데, 작은아버지가 두 분 계시는 데다 꽤 클 때까지 집안의 막내여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지요. 그 분위기를 알려면 당시 행세하는 집안을 이해해야 해요. 형수가 홀로 됐을 때 그 남은 자녀에 대해 시동생들이 갖는 책임의식 같은 거요. 저 대학 들어갈 때도 우리 숙부가 ‘니 등록금은 꼭 내가 줘야 된다’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워낙 과보호에 응석받이로 자라다 보니, 오히려 어머니가 엄한 훈육으로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지요.

그런데 늘그막에 되레 아버지 생각이 종종 나요. 어떤 분이셨을까…. 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아기인 제가 엉금엉금 기어가 뽀뽀를 하면 환히 웃으셨다, 사랑받았다, 그렇게 어머니가 단편적으로 들려주신 얘기들이 요즘 들어 새삼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자칫 촌색시로 고만고만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를 그를 대처로 이끈 건 ‘미신이나 팔자를 믿지 않고 과학과 교육과 책의 힘을 믿은’ 어머니 홍기숙 여사였다. 여덟 살에 서울 현저동으로 이사온 그는 매동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일본말을 전혀 몰라 고전했지만, 고학년이 됐을 무렵엔 국어(일본어)를 가장 잘하는 학생으로 뽑혀 벚꽃 문양 배지까지 달고 다녔다. 그렇더라도 창씨 개명을 하지 않아 학교 생활이 꼭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1944년 숙명여고에 입학했다. 일제 말기 소개령이 내리자 개성으로 올라가 잠시 호수돈여고에 적을 뒀으나 다니지는 않았다. 해방 후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는 1950년 숙명여고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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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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