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호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어정쩡하게 만들 바엔 시작하지도 않는다”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09-07 17:2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신동아’는 이번 호부터 세계 최일류 제품을 만들어내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을 소개한다. 시장점유율과 품질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는 각 분야의 명장(明匠)들을 만나 그들이 뿌린 땀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이 가슴 가득 품은 꿈을 들어본다. 그 첫번째로 세계 최대 크기와 최고 품질의 TFT-LCD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경악케 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를 만났다.<편집자>
    지난해 11월 일본 요코하마의 한 호텔. 전세계에서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와 벽걸이형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분야의 최고 엔지니어들이 모이는 ‘LCD/PDP 인터내셔널 2001’이 열렸다. ‘LCD/PDP 인터내셔널’은 이 분야의 ‘세계 신기술 잔치’와도 같은 마당.

    삼성전자 AMLCD 사업부 석준형(昔俊亨·53) 전무는 이날 세계적 전문가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2년 전 이 자리에서 삼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LCD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2년 전 여러분 앞에서 약속한, 세계에서 가장 큰 40인치짜리 TFT-LCD입니다.”

    영화 포스터만한 화면

    단상 아래 객석이 잠시 술렁거렸다. 당시만 해도 LCD 업계에서 30인치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겼다. TFT-LCD는 수십만개의 화소를 이용해 일정한 밝기와 색깔의 화면을 내보내야 하므로 인치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화면의 선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97년 삼성전자가 개발한 30인치급이 그때껏 기술적 한계로 인식됐다.



    석전무가 ‘LCD/PDP 인터내셔널 2001’에서 선보인 40인치 TFT-LCD는 가로 98cm, 세로 63cm에 이르는 초대형 제품. TFT-LCD라고 하면 그저 휴대전화 액정화면이나 노트북 컴퓨터에 쓰이는 것 정도로만 알던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 포스터만한 TFT-LCD가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석전무와 자리를 함께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 ‘신화’가 ‘현실’로 이뤄진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준형 전무가 개발한 40인치 TFT-LCD는 단순히 크기에서만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다. 40인치 모니터로 방영되는 화면을 요모조모 뜯어본 여러 나라 엔지니어들은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완벽한 화상에 또 한번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했다.

    화면밝기 500CD(칸델라), 반응속도 12ms(밀리 세컨드·0.012초), 백라이트 수명 5000시간. 당시까지 세상에 나온 어떤 TFT-LCD보다 화질면에서 우수한 제품이었다. 그전까지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15인치나 17인치 TFT-LCD는 화면밝기가 450CD, 반응속도가 20ms 수준이었다. 크기는 물론 화질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의 제품이었던 것.

    특히 반응속도는 TFT-LCD의 화질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다. 2∼3년 전만 해도 TFT-LCD가 낼 수 있는 최고 반응속도는 30ms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반응속도로는 화면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모양을 깔끔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TV용 LCD’를 만드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가령 30ms 반응속도의 LCD로 만든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본다면 골키퍼가 센터서클을 향해 찬 공이 길게 꼬리를 그리면서 날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막아 말끔한 화면을 만들어내려면 98만개나 되는 화소 하나하나에서 빛이 반응하는 속도를 최대한 높여줘야 한다. 석전무가 이끄는 삼성전자 LCD개발팀은 바로 이 반응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고화질의 대형 LCD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40인치 TFT-LCD 개발에 착수할 때부터 이런 수준의 고화질을 지향한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간 지난해 초만 해도 목표로 삼은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인 40인치를 만든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개발팀장으로서야 화면 크기에서만 최고에 도달해도 ‘석준형’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계 최고를 만든 사람’으로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석전무는 더 큰 욕심을 부렸다. 기존 노트북용 LCD에 사용되는 TN(Twist Nematic)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대형 LCD에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PVA(Patterned Vertical Alignment) 방식을 사용하겠다고 나선 것. TN 방식으로는 완벽한 화질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노트북 화면을 옆에서 보면 사진이나 활자가 번져 보이는 것처럼 광시야각이 좁은 것이 TN 방식의 단점이다. 그렇지만 광시야각을 넓힐 수 있는 PVA 방식은 대형 LCD에 적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40인치 개발단계에서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개발팀 안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액정, 회로, TFT 등 TFT-LCD를 구성하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개발팀 엔지니어들이 40인치 개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나름대로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개발팀 일각에선 석전무가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가 영웅심리에 휩싸였다는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그러나 석전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조건 최고 화질의 제품을 만든다. 어정쩡하게 하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실패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평소엔 다소 우유부단하게 보일 만큼 일선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존중해온 석전무였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석전무는 “스스로 용장(勇將)이기보다는 덕장(德將)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때만큼은 ‘깡패짓’을 좀 했다”며 허허 웃었다.

    40인치 TFT-LCD 개발에 착수할 무렵의 상황을 살펴보면 석전무의 이런 고집이 얼마나 무모하게 비쳐졌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3년 전 요코하마의 ‘LCD/PDP 인터내셔널 1999’에서 40인치 개발을 공언했을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LCD 공급과잉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LCD 분야에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 때였죠. 투자는 어마어마하게 해놓고서 과잉공급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경영진에게 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우겨댔으니 참….”

    석전무가 세계 최고의 TFT-LCD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경영진을 설득해 허락을 받아내는 일이 발등의 불이었기 때문이다.

    개발비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억원이 넘었다. 개발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만도 줄잡아 10억원 안팎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형 사업인 만큼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없으면 뛰어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석전무는 ‘지구전(持久戰)’을 택했다. “시장점유율 세계 1위만으로는 진정한 1위라고 할 수 없다”며 경영진을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세계 시장에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최대 사이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계속됐다. 게다가 그는 미국 IBM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불과 3년 전에 삼성전자에 합류한 ‘굴러온 돌’이었다. 그러니 회사내 우호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도 어려웠을 법하다.

    하지만 석전무는 기자의 집요한 ‘추궁’에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삼성은 한번 하겠다고 하면 제대로 하지 않습니까?”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한마디로는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개발과정에서 겪은 험난한 시련에 더 큰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40인치 제품에 처음 도전한 만큼 개발과정은 실수와 사고의 연속이었을 듯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TFT-LCD 제조공정은 유리기판 두 장을 미세한 간격으로 붙인 뒤 그 안에 액정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정한 형태로 액정을 붓기 위해 유리판의 사방을 에폭시로 접착한 다음 진공실에 넣어 기압차를 이용한다. 진공실에 들어갈 때는 수십장의 실험용 LCD를 배치(batch)에 실어 들여보낸다. 제과점에서 대형 리어카에다 겹겹이 빵을 넣어서 구워내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가슴을 졸이며 기다린 끝에 진공실에서 쏟아져 나온 LCD들은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유리판을 이어붙인 에폭시 접착제가 터져나간 것이 대부분이었고, 아예 액정이 터져버린 것도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40인치짜리를 만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찌보면 당연한 시행착오였다.

    “40인치 LCD는 액정을 붓는 데만도 닷새가 걸리는 대역사(大役事)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든 제품이 빛을 보기가 무섭게 쓰레기통으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을 힘을 다해 구워낸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자리에서 깨버리는 도공들의 심정과 다를 게 없겠지요.”

    즉석에서 양산(量産) 결정

    천신만고 끝에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와도 그 앞을 가로막고 선 장벽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전원을 넣어보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화질에 결함이 생겨 속을 태웠고, 그럭저럭 꼴을 갖춘 제품을 만들고도 적당한 수송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일본의 학술토론회나 유럽의 LCD 박람회에 선을 보일 때는 그때마다 옮기는 과정에서 행여 제품에 영향이 있을까봐 특수제작한 가방을 사용했다. 무게가 15kg이 넘는 제품이라 혹시라도 항공수송 과정에서 기압차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어린아이 안 듯 감싸안고 안절부절못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경영진도 석전무의 욕심이 막상 현실로 나타난 뒤에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석전무는 지난해 8월 기자들을 불러 40인치 TFT-LCD 개발 성공 사실을 알린 뒤 제품을 들고 곧장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석전무는 진사장이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40인치 LCD를 텔레비전 세트로 조립해 시장에 내다 팔아줄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찾았다. 그래서 석전무는 진사장을 ‘퓨처 커스터머(future customer)’라고 불렀다.

    마침 석전무가 찾아가기 1주일 전에 진대제 사장은 PDP TV 세계시장 선점 전략 발표회를 열고 삼성전자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디지털 TV의 총아인 PDP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진사장은 석전무가 들고온 40인치 TFT-LCD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LCD로는 대형 TV를 만들 수 없다고 알고 있던 진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자리에서 바로 양산(量産) 결정을 내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세계 최초로 40인치 TFT-LCD를 개발한 석전무도 PDP를 생산, 판매하는 다른 계열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TFT-LCD와 PDP는 둘 다 기존의 브라운관 TV를 교체할 차세대 영상 미디어로 꼽힌다. TFT-LCD는 액정을 이용해 문자와 숫자, 그래픽 등의 영상을 표시하는 장치. 이에 비해 PDP는 플라즈마라는 고압 방전방식을 이용해 가시광선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 신개념 영상매체다.

    PDP도 TFT-LCD처럼 두 장의 얇은 유리기판을 붙여서 만드는 것은 같지만, 유리판 사이에 액정이 아니라 혼합가스를 주입하고 이온가스를 방전시켜 화면을 구성하기 때문에 대형 디스플레이 패널을 만드는 데는 LCD보다 유리하다. PDP TV는 동급의 브라운관 TV보다 두께는 10분의1, 무게는 3분의1 수준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초대형 TV로는 안성맞춤이다. 삼성전자가 PDP를 기존의 TV를 대체할 전략사업으로 내세운 것도 이처럼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PDP는 삼성 계열사 중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SDI에서 주로 생산한다. 삼성이 영상 분야의 차세대 주력사업을 PDP로 하느냐 TFT-LCD로 하느냐를 놓고 계열사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게 된 것은 당연하다.

    화질 면에서는 LCD TV가 PDP와는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우위를 점한다. 지난해 개발에 성공한 40인치 LCD도 현재 시판중인 42인치 VGA급 PDP 제품에 비하면 화소의 수가 두 배나 더 많다. 그러나 LCD TV가 가격이나 시장성 면에서는 PDP에 한참 뒤진다는 것을 석전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복잡한 부품과 회로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벽걸이형 PDP TV와는 달리 LCD TV는 뒷면이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어 두께를 줄이는 데 훨씬 유리하다. 또한 LCD는 PDP와 달리 2∼3년 단위로 백라이트만 교체하면 계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따라서 디스플레이 화면의 크기만 PDP만큼 키울 수 있다면 PDP를 한꺼번에 대체해버릴 수도 있는 ‘신무기’로 꼽힌다.

    그러나 LCD TV의 수요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올해 LCD TV 생산규모가 180만대 수준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LCD 모니터가 2900만대인 점을 감안하면 LCD를 TV에 채용하는 작업은 걸음마 단계에 불과한 형편이다.

    “솔직히 올해는 별로 기대하지 않습니다. ‘40인치 LCD를 삼성이 만들었다’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만 집중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내년 이후에는 한번 승부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세계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어볼 테니 두고 보십시오.”

    석준형 전무의 ‘최고’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오는 9월을 목표로 또 하나의 ‘세계 최고’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로 TFT-LCD의 5세대 라인을 가동시키기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5세대 라인 세계정복 도전

    석전무가 추진하고 있는 5세대 라인은 ‘마더 글래스(mother glass)’라고 불리는 LCD 제조용 기판 유리의 크기를 1100×1250mm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의 경우 미세회로 기술을 향상해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LCD는 유리 패널을 대형화함으로써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

    5세대 라인이 가동되기 시작하면 하나의 유리기판에서 42인치짜리 유리판 2개를 만들어낼 수 있다. 79×920mm 크기의 기존 4세대 라인에서 40인치 1개만을 만들어낼 수 없는 데 비하면 비용을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는 획기적 기술이다. 비용을 절반으로 줄이면 이익도 두 배로 늘어나게 마련. 또한 외국의 디스플레이 제조업체들이 삼성전자의 5세대 제품을 표준으로 선택한다면 그 시너지 효과 또한 엄청날 전망이다.

    따라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세계적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마더 글래스’를 국제 표준으로 만들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칠 수밖에 없다. 석전무가 이끄는 삼성전자 LCD개발팀은 이 경쟁에서도 이미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5세대 라인 가동을 준비중인 천안공장과 기흥공장을 발이 부르트도록 오가는 석준형 전무에게 또 하나의 ‘최고’ 작위(爵位)가 주어질 날이 머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세계 최고 기록 경신을 위해 칼을 갈고 있는 석전무는 정작 ‘최고’라는 찬사에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의 말 어디에서도 엘리트의식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초우량기업 IBM에서만 20년 가까이 연구해 온 엘리트 엔지니어는 더 이상 자기 앞에서 ‘세계 최고’라는 말을 꺼내지 말아달라고 했다.

    “세계 최고요? 그거 골치 아파요. 다음엔 또 뭘 만들어야 하나 하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고…. 내 본분은 뭐니뭐니해도 15인치와 17인치 LCD생산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캐시 카우(cash cow), 다시 말해 돈 버는 겁니다. 당장은 회사 먹여살리고 나라 먹여살리는 게 중요한 것 아녜요?”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