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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1)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어정쩡하게 만들 바엔 시작하지도 않는다”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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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동아’는 이번 호부터 세계 최일류 제품을 만들어내는 자랑스런 한국인들을 소개한다. 시장점유율과 품질에서 세계 최고를 달리는 각 분야의 명장(明匠)들을 만나 그들이 뿌린 땀의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이 가슴 가득 품은 꿈을 들어본다. 그 첫번째로 세계 최대 크기와 최고 품질의 TFT-LCD를 개발해 세계시장을 경악케 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를 만났다.<편집자>
지난해 11월 일본 요코하마의 한 호텔. 전세계에서 초박막액정표시장치(TFT-LCD)와 벽걸이형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 분야의 최고 엔지니어들이 모이는 ‘LCD/PDP 인터내셔널 2001’이 열렸다. ‘LCD/PDP 인터내셔널’은 이 분야의 ‘세계 신기술 잔치’와도 같은 마당.

삼성전자 AMLCD 사업부 석준형(昔俊亨·53) 전무는 이날 세계적 전문가들 앞에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2년 전 이 자리에서 삼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LCD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2년 전 여러분 앞에서 약속한, 세계에서 가장 큰 40인치짜리 TFT-LCD입니다.”

영화 포스터만한 화면

단상 아래 객석이 잠시 술렁거렸다. 당시만 해도 LCD 업계에서 30인치 이상의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여겼다. TFT-LCD는 수십만개의 화소를 이용해 일정한 밝기와 색깔의 화면을 내보내야 하므로 인치수가 커지면 커질수록 화면의 선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1997년 삼성전자가 개발한 30인치급이 그때껏 기술적 한계로 인식됐다.

석전무가 ‘LCD/PDP 인터내셔널 2001’에서 선보인 40인치 TFT-LCD는 가로 98cm, 세로 63cm에 이르는 초대형 제품. TFT-LCD라고 하면 그저 휴대전화 액정화면이나 노트북 컴퓨터에 쓰이는 것 정도로만 알던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 포스터만한 TFT-LCD가 나왔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석전무와 자리를 함께한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조차 ‘신화’가 ‘현실’로 이뤄진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보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석준형 전무가 개발한 40인치 TFT-LCD는 단순히 크기에서만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 아니다. 40인치 모니터로 방영되는 화면을 요모조모 뜯어본 여러 나라 엔지니어들은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완벽한 화상에 또 한번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했다.

화면밝기 500CD(칸델라), 반응속도 12ms(밀리 세컨드·0.012초), 백라이트 수명 5000시간. 당시까지 세상에 나온 어떤 TFT-LCD보다 화질면에서 우수한 제품이었다. 그전까지 삼성전자에서 출시한 15인치나 17인치 TFT-LCD는 화면밝기가 450CD, 반응속도가 20ms 수준이었다. 크기는 물론 화질에서도 단연 세계 최고의 제품이었던 것.

특히 반응속도는 TFT-LCD의 화질을 결정짓는 핵심요소다. 2∼3년 전만 해도 TFT-LCD가 낼 수 있는 최고 반응속도는 30ms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반응속도로는 화면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의 모양을 깔끔하게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TV용 LCD’를 만드는 것은 상상하지 못했다. 가령 30ms 반응속도의 LCD로 만든 텔레비전으로 축구 경기를 본다면 골키퍼가 센터서클을 향해 찬 공이 길게 꼬리를 그리면서 날아가게 마련이다.

이런 현상을 막아 말끔한 화면을 만들어내려면 98만개나 되는 화소 하나하나에서 빛이 반응하는 속도를 최대한 높여줘야 한다. 석전무가 이끄는 삼성전자 LCD개발팀은 바로 이 반응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고화질의 대형 LCD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40인치 TFT-LCD 개발에 착수할 때부터 이런 수준의 고화질을 지향한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간 지난해 초만 해도 목표로 삼은 것은 ‘세계 최대 규모인 40인치를 만든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개발팀장으로서야 화면 크기에서만 최고에 도달해도 ‘석준형’이라는 이름 석자를 ‘세계 최고를 만든 사람’으로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석전무는 더 큰 욕심을 부렸다. 기존 노트북용 LCD에 사용되는 TN(Twist Nematic) 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대형 LCD에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PVA(Patterned Vertical Alignment) 방식을 사용하겠다고 나선 것. TN 방식으로는 완벽한 화질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노트북 화면을 옆에서 보면 사진이나 활자가 번져 보이는 것처럼 광시야각이 좁은 것이 TN 방식의 단점이다. 그렇지만 광시야각을 넓힐 수 있는 PVA 방식은 대형 LCD에 적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40인치 개발단계에서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았다.

당연히 개발팀 안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액정, 회로, TFT 등 TFT-LCD를 구성하는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삼성전자 개발팀 엔지니어들이 40인치 개발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을 나름대로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개발팀 일각에선 석전무가 지나치게 욕심을 내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가 영웅심리에 휩싸였다는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그러나 석전무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조건 최고 화질의 제품을 만든다. 어정쩡하게 하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마라. 실패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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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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