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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를 만드는 사람들 (1)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어정쩡하게 만들 바엔 시작하지도 않는다”

  • 성기영 < 동아일보 주간동아 기자 > sky3203@donga.com

세계 최대 TFT-LCD 개발한 삼성전자 석준형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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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다소 우유부단하게 보일 만큼 일선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존중해온 석전무였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치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석전무는 “스스로 용장(勇將)이기보다는 덕장(德將)이라고 생각해왔지만 그때만큼은 ‘깡패짓’을 좀 했다”며 허허 웃었다.

40인치 TFT-LCD 개발에 착수할 무렵의 상황을 살펴보면 석전무의 이런 고집이 얼마나 무모하게 비쳐졌을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3년 전 요코하마의 ‘LCD/PDP 인터내셔널 1999’에서 40인치 개발을 공언했을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LCD 공급과잉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LCD 분야에서 엄청난 적자를 기록하고 있을 때였죠. 투자는 어마어마하게 해놓고서 과잉공급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는 경영진에게 또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겠다고 우겨댔으니 참….”

석전무가 세계 최고의 TFT-LCD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장벽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었다. 경영진을 설득해 허락을 받아내는 일이 발등의 불이었기 때문이다.

개발비는 최소한으로 잡아도 100억원이 넘었다. 개발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초기 비용만도 줄잡아 10억원 안팎을 쏟아부어야 하는 대형 사업인 만큼 최고경영진의 결단이 없으면 뛰어들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석전무는 ‘지구전(持久戰)’을 택했다. “시장점유율 세계 1위만으로는 진정한 1위라고 할 수 없다”며 경영진을 집요하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세계 시장에 일대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최대 사이즈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경영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 계속됐다. 게다가 그는 미국 IBM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다 불과 3년 전에 삼성전자에 합류한 ‘굴러온 돌’이었다. 그러니 회사내 우호세력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경영진을 ‘압박’하는 것도 어려웠을 법하다.

하지만 석전무는 기자의 집요한 ‘추궁’에도 이 대목에서만큼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삼성은 한번 하겠다고 하면 제대로 하지 않습니까?”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끈질기게 설득했다”는 한마디로는 궁금증을 풀 길이 없었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개발과정에서 겪은 험난한 시련에 더 큰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아무도 시도해보지 않은 40인치 제품에 처음 도전한 만큼 개발과정은 실수와 사고의 연속이었을 듯했다. 실제로 그러했다.

TFT-LCD 제조공정은 유리기판 두 장을 미세한 간격으로 붙인 뒤 그 안에 액정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정한 형태로 액정을 붓기 위해 유리판의 사방을 에폭시로 접착한 다음 진공실에 넣어 기압차를 이용한다. 진공실에 들어갈 때는 수십장의 실험용 LCD를 배치(batch)에 실어 들여보낸다. 제과점에서 대형 리어카에다 겹겹이 빵을 넣어서 구워내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가슴을 졸이며 기다린 끝에 진공실에서 쏟아져 나온 LCD들은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유리판을 이어붙인 에폭시 접착제가 터져나간 것이 대부분이었고, 아예 액정이 터져버린 것도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40인치짜리를 만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찌보면 당연한 시행착오였다.

“40인치 LCD는 액정을 붓는 데만도 닷새가 걸리는 대역사(大役事)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을 들여 만든 제품이 빛을 보기가 무섭게 쓰레기통으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죽을 힘을 다해 구워낸 도자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자리에서 깨버리는 도공들의 심정과 다를 게 없겠지요.”

즉석에서 양산(量産) 결정

천신만고 끝에 제대로 된 제품이 나와도 그 앞을 가로막고 선 장벽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전원을 넣어보면 어디에 문제가 생겼는지 화질에 결함이 생겨 속을 태웠고, 그럭저럭 꼴을 갖춘 제품을 만들고도 적당한 수송방법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일본의 학술토론회나 유럽의 LCD 박람회에 선을 보일 때는 그때마다 옮기는 과정에서 행여 제품에 영향이 있을까봐 특수제작한 가방을 사용했다. 무게가 15kg이 넘는 제품이라 혹시라도 항공수송 과정에서 기압차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해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동안 내내 어린아이 안 듯 감싸안고 안절부절못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던 경영진도 석전무의 욕심이 막상 현실로 나타난 뒤에는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석전무는 지난해 8월 기자들을 불러 40인치 TFT-LCD 개발 성공 사실을 알린 뒤 제품을 들고 곧장 삼성전자 진대제 사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석전무는 진사장이 최고경영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개발한 40인치 LCD를 텔레비전 세트로 조립해 시장에 내다 팔아줄 ‘고객’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찾았다. 그래서 석전무는 진사장을 ‘퓨처 커스터머(future customer)’라고 불렀다.

마침 석전무가 찾아가기 1주일 전에 진대제 사장은 PDP TV 세계시장 선점 전략 발표회를 열고 삼성전자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디지털 TV의 총아인 PDP를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진사장은 석전무가 들고온 40인치 TFT-LCD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LCD로는 대형 TV를 만들 수 없다고 알고 있던 진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자리에서 바로 양산(量産) 결정을 내렸다.

이런 사정 때문에 세계 최초로 40인치 TFT-LCD를 개발한 석전무도 PDP를 생산, 판매하는 다른 계열사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TFT-LCD와 PDP는 둘 다 기존의 브라운관 TV를 교체할 차세대 영상 미디어로 꼽힌다. TFT-LCD는 액정을 이용해 문자와 숫자, 그래픽 등의 영상을 표시하는 장치. 이에 비해 PDP는 플라즈마라는 고압 방전방식을 이용해 가시광선을 만든 뒤 이를 이용해 영상을 만드는 신개념 영상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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