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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독자들이 바보냐? 좋은 글은 귀신처럼 알아본다”|장영희

  • 글: 장영희 서강대 교수 · 영문학

“독자들이 바보냐? 좋은 글은 귀신처럼 알아본다”|장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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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들어서는 순간 휠체어에 타거나 목발을 짚은 수십 개의 눈이 일제히 내게 쏠렸고, 어머니는 나를 내려 휠체어에 앉혔다. 어머니가 천천히 손수건에 싼 삶은 달걀들을 꺼내어 내 무릎에 놓는 동안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고, 아버지는 나의 눈을 피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그 순간 내가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숙사 생활과 단체 생활이 필수 조건으로 되어 있는 그곳에서는 식구들의 면회도 한 달에 한 번만 허용되었고 집으로 갈 수 있는 기회도 겨우 일년에 몇 차례만 주어졌던 것이다. 순간 나는 필사적으로 악을 쓰며 울기 시작했고, 결국 부모님은 차마 나를 떼어놓지 못하고 다시 집으로 가는 택시에 태우셨다.

“아버지, 아까 그 닥터 로스라는 사람 구두 봤어?”

택시 안에서 어머니가 까주시는 삶은 달걀을 먹으면서 나는 물었다.

“아니, 왜?”



“구두가 얼마나 큰지 물에 띄우면 내가 탈 수 있는 보트만 해.”

그때 아버지는 크게 소리내어 웃으시면서 어머니께 말씀하셨다.

“여보, 우리 영희는 문학 공부를 시켜야겠어. 이런 아이는 특수학교 말고 일반학교에 넣어 여러 아이들과 함께 경쟁시켜야 해. 더 큰 세상을 보여줘야 해. 그래서 크면 내 뒤를 잇게 해야지.”

혼잣말처럼 하신 그 말씀은 그 후로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고, 아버지는 그때부터 나를 일반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쏟으셨다. 당시만 해도 학교에서는 원칙적으로 장애 학생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상급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아버지는 교장실을 찾아가 간청해야 했다. 다른 학교에서는 다 거절당했지만, 아버지가 당시 서울사범대학 교수로 재직하신 덕분에 서울사대 부속중학교 교장선생님을 설득, 가까스로 서울사대 부속중학교에 이어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신체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미미하던 1970년대 초반, 내가 대학에 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도(아니 아이러니컬하게도) 내 학교성적은 좋았고, 나는 꼭 대학에 가고 싶었다. 내가 고3이 되자 아버지는 여러 대학을 찾아다니시며 입학시험을 치르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학교측은 어차피 합격해도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했다.

당시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서울대학교 총장은 “장 선생 딸이면 내 딸과도 마찬가지지만, 입학시험을 쳐서 설령 합격한다 할지라도 어차피 신체검사에서 떨어질 것이고, 직원들이나 다른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하니 어쩔 수가 없다”며 내가 서울대 입학시험을 보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아버지가 오실 때쯤 되어 문간에서 초조하게 기다리시던 어머니,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들어오셔서 내 눈을 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꿈에 본 아버지

이렇게 몇 번씩 거절당하고 난 후 아버지는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과장이던 브루닉 신부님을 찾아가셨다. 그리고 제발 입학시험만이라도 치르게 해 달라고, 입학 여부는 일단 합격한 후에 얘기하자고 간절하게 부탁하셨다. 그러자 신부님은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 눈을 크게 뜨시고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하고 반문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때 일을 말씀하셨다. “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쁜 바보가 어디 있겠냐”시며.

결국 아버지는 나를 ‘더 큰 세상’으로 안내하셨고,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더욱 다양한 삶을 보고, 더욱 큰 꿈을 성취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의 영원한 방파제가 되셨다. 그 후 아버지와 나는 부녀간이라는 혈연관계 외에도 스승과 제자, 같은 전공과 직업을 가진 동료이자 공저자, 공역자라는 사회적 관계도 아울러 갖게 되었다. 서울사대 부속중고등학교와 서강대를 거쳐 유학을 마칠 때까지, 아니 사실은 지금까지도 나는 ‘개인 장영희’보다는 ‘장왕록의 딸’로 소개되는 경우가 더 많다. 학교 다닐 때는 그것이 든든한 ‘빽’인 동시에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버거운 짐이 되기도 했다.

유학을 가면서 해방감에 들뜨기도 했는데 당시 뉴욕주립대학 영문과 과장 거버 박사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너 혹시 서울대학교 장왕록 교수 아니?” 하고 물어서 나를 아연실색케 했다(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아버지가 아이오와대 다니실 당시 스승이셨고, 아버지가 영어영문학회 회장으로 재직하실 때 아버지의 초대로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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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희 서강대 교수 ·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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