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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⑩

1960년대 충무로 女帝 최은희

“인고의 한국여성? 난 그 역할이 너무나 지겨웠다”

  • 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1960년대 충무로 女帝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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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 전에 누군가가 평했듯이 그녀는 정적(靜的)이며, 정적(情的)이고, 정적(精的)인 배우였다.
  • 고운 자태에 살포시 내려앉은 학 같은 목덜미에서부터 맵시 있는 한복의 선을 닮은 몸놀림까지.
  • 결코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진정성이 빛나는 두 눈.
  • 관객은 누이처럼 어머니처럼 그녀를 사랑했다.
1960년대 충무로 女帝 최은희
그녀의 ‘차마 접근하기 어려운 단아한 신비’는, 독수공방과 이루어질 듯 말 듯한 성적 판타지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에 그녀를 놓았다. 이 ‘아슬아슬함’은 전근대적·유교적 가치관과 근대적 가치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빚어진 심리적 억압에 갇혀 있는 슬픈 여성의 자화상과 아찔한 남성 판타지의 타협점이었다. 그러나 그 성애(性愛)는 1970년대 토속 에로물들이 여배우의 육체를 다루는 방식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점에서 최은희는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영화의 최대 전성기를 구가하고 한국영화사상 가장 훌륭한 감독과 함께하는 겹경사를 누리는 와중에, 그녀는 섬세하고 절도 있으며 한없이 깊은 정적인 연기의 예증(例證)으로 영화사를 장식한다.

놀라운 점은 그녀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나 ‘벙어리 삼룡이’의 한국적 여인상에만 안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시체애호 취미마저 엿보여 변칙적 욕망의 도가니라 불러도 좋을 영화 ‘다정불심’을 보자. 앨프리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연상케 하는 이 사극에서 그녀는 공민왕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하는 팜 파탈적 평민여성과 헌신적인 아내 노국공주의 1인2역을 맡아 열연했다. ‘지옥화’에서는 놀랄 만한 관능성과 치열한 생존본능을 지닌 창녀 역을 너끈히 소화하기도 했다.

배우 최은희의 면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쌀’이나 ‘촌색씨’에서는 자연의 모습을 닮은 건강한 또순이로, ‘젊은 그들’에서는 남장미인으로, ‘어느 여대생의 고백’에서는 법과대학에 다니는 엘리트 여대생으로 분한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소금’이나 ‘탈출기’ 등에서는 가난에도 굴하지 않는 무산계급의 어머니로 변신을 거듭한다. 그녀의 연기는 모양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각으로 이루어진 다면체였다.

최은희의 이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기록은 그녀가 충무로에서 매우 희귀한 ‘여성 감독’이었다는 점이다. 1965년 그녀는 한국영화 사상 여자로는 세 번째로 메가폰을 잡는다. 데뷔작인 ‘민며느리’와 1967년작 ‘공주님의 짝사랑’, 1972년작 ‘총각선생’을 거쳐, 북한에서는 ‘약속’이라는 작품을 연출했다. 그녀 자신은 “신필름에 감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쑥스럽게 웃지만 남편이자 동료인 신상옥은 그녀의 영화에 대해 “카메라도 좋고 포인트도 좋다”고 평한다.

평론가 변인식의 말을 빌리자면, 최은희는 조미령, 노경희, 이민자, 윤인자, 문정숙, 도금봉, 김지미에 이르는 이른바 ‘비로드 시대의 여배우’ 중 하나다. 이는 아마도 1960년대라는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거친 일단의 여배우를 수식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그녀는 ‘아리랑’의 신일선, 한은진, 김소영, 김선재의 바통을 잇는 ‘완숙하고 신비로운 조선여인상’의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여배우이기도 하다.

최은희의 영광과 도전 뒤에는 당대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 있다. 어쩌면 두 사람은 누가 누구에게 공(功)을 돌리기 어려운, 흡사 암수동체 같은 동업자이자 친구이며 동지였을 것이다. 이미 남편이 있는 몸으로 세상의 비난을 무릅쓰고 결합을 택한 여배우와 당대의 감독은 영화라는 고리만으로 버티며 50년의 세월을 넘었다.

황무지에서의 새 출발

이 인터뷰는 납북된 비운의 여배우나 신상옥 감독의 아내가 아닌 ‘연기자 최은희’의 삶과 영화를 회고하기 위해 기획됐다. 인터뷰가 그녀의 집 거실에서 이루어진 덕분에 필자는 신상옥 감독과도 대화를 나누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누가 누구랄 것 없이 서로를 닮아 미움과 앙금마저도 이지러지고 녹아버린 전형적인 노부부였다. 필자가 가지고 간 ‘여성영화인사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고, 숱한 포즈를 취했을 텐데도 카메라기자 앞에서 어색하다고 미소 짓는 그녀는 얼마나 다정다감한 여성이던지. 결코 할머니라는 말이 떠오르지 않는 이 아름다운 여배우에게선 여전한 ‘소녀’의 향기가 잔잔하게 묻어났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세요?

“우리가 (북한에서) 돌아오니 예전에 갖고 있던 재산은 건물 하나 안 남은 상태였어요. 그런데 마침 안양시에서 ‘안양을 다시 영화인의 도시로 만들고 싶다’고 해서 재작년 가을에 전시회를 했어요. 아파트 사잇길을 ‘신필름로’라고 명명까지 해가면서. 그래서 우리는 ‘이왕이면 영화학교를 하자’고 제안했죠. 36년 전에 우리가 세웠던 ‘신필름 부설 안양영화예술학교’의 맥을 잇고 싶었던 거죠. 커리큘럼이나 과정을 전문대 기준으로 만들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어요. 당분간은 어떻게든 학교를 성장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신상옥 감독은 ‘신필름’을 다시 운영하는 거죠?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으니까 운영이라고 하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다시 시작하려니까 어려움이 많아요. 지금 준비하고 계신 것도 언제 시작할 수 있을지 확언할 수 없는 상태거든요. 신 감독이 벌써 20년 넘게 칭기즈칸을 그린 영화를 만들고 싶어해요. 워낙 대작이다 보니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늦어졌지만 요즘에는 한국영화도 제작비를 충분히 투입하니까 시도할 만 하죠. 영화계가 무척 달라졌어요. 예전에 1000만 관객을 어디 상상이나 했겠어요. 세월이 바뀌고 환경이 좋아지는 만큼 영화도 달라져야죠. 16mm 카메라로 촬영하던 우리 젊었을 때랑은 많이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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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심영섭 영화평론가 chinablue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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