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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⑪

세속에서 道 탐구하는 ‘의사 居士’ 이동호

“마음의 본체는 자잘한 일상사와 번뇌망상 속에 있는 것”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세속에서 道 탐구하는 ‘의사 居士’ 이동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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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식 직함은 내과의사지만 그에게 의사는 생계를 위한 부업에 불과하다. 세속에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도를 탐구해온 월담 이동호 거사. 20대 초 짝사랑의 열병을 앓으며 처음 인간의 본질에 의문을 던졌다는 월담은 화두를 잡고 돈오를 체험하며 보림(保任) 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사람은 결국 사주팔자대로 사는 것”이라는 그는 “세속에서 도를 추구한 인생 역시 사주팔자가 아니겠느냐”며 허허 웃었다.
세속에서 道 탐구하는 ‘의사 居士’ 이동호

이동호 거사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피부가 맑고 자세나 화법에 흐트러짐이 없다.

불교에 ‘거사(居士)’라 불리는 계층이 있다. 출가하지 않고 집에서 도 닦는 사람을 말한다. 사바세계의 희로애락을 겪으면서도 고준한 정신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도를 갈고 닦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어지간한 근기(根機·중생의 교법을 받을 만한 성능)가 아니고서는 행할 수 없는 일이다. 근기가 있다 해도 전생에 쌓은 복이 없으면 감히 시도할 수 없는 것이 양수겸장의 노선이요 거사의 길이다. 수도에 신경 쓰다 보면 돈이 없어 고통받기 쉽고, 돈 버는 일에 관심을 갖다 보면 수도는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야말로 복혜구족(福慧具足·복과 지혜를 아울러 갖춤)이어야만 갈 수 있는 것이 거사의 길이다.

불교사를 보면 유명한 거사가 종종 등장한다. 인도에는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있다. ‘유마경’의 주인공이다. ‘중생이 아프므로 나도 아플 수밖에 없다’는 대승불교의 메시지를 남긴 인물이다. 중국에는 방거사(龐居士)가 있다. 당나라 때 활동한 인물로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의 법을 이었다고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 변산의 월명암(月明庵)에서 경론을 연구하며 수도한 부설거사(浮雪居士)가 유명하다. 부설거사는 이른바 ‘패밀리 도통’으로, 부인 묘화(妙花), 아들 등운(登雲), 딸 월명(月明)이 모두 도통했다고 한다. 고려시대에는 이자현(李資玄) 거사가 유명하다. 높은 벼슬자리에 있다가 부인이 죽자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춘천의 청평사(淸平寺)로 들어가서 ‘능엄경(楞嚴經)’의 이근원통(耳根圓通·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을 깊이 연구했다. 조선시대에는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꼽을 수 있다. 외형적으론 명문가에서 태어난 유학자였지만 그는 내면적으로 불교에 심취했다. 주머니에 ‘금강경’을 휴대하고 다녔으며 초의(草衣)선사를 비롯한 당대의 고승들과도 교류가 깊었다.

선풍도골(仙風道骨)의 老거사

근래에 들어 거사의 맥을 이어가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월담(月潭) 이동호(李東豪·66) 거사다. 불교계에 명함을 내미는 사람이면 대부분 그를 안다. 공식 직함은 내과의사. 전주 시내에서 ‘이동호 내과’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사는 부업일 뿐, 도학(道學)에 대한 탐구가 그의 주업이다. ‘주도부의(主道副醫)’라고나 할까.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의 피부는 맑고 자세나 화법에 흐트러짐이 없다. 처음 보는 사람은 50대 중반으로 여길 정도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풍모를 갖췄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말이 길어진다. 중언부언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월담은 오로지 묻는 말에만 대답한다. 상대가 알아들을 정도만 이야기하고 멈춘다. 목소리 톤도 일정하다.

‘주도부의’라고는 하지만 그가 의업에 소홀한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진 전문의 자격증만 해도 내과전문의, 결핵과전문의, 가정의학과전문의, 심장내과분과전문의, 소화기내시경분과전문의 등 여러 개다. 방사성동위원소특수취급자 면허도 가지고 있다. 전북대 의대 내과 외래교수이기도 하다. 1975년에는 경희대 동서의학연구소 연구교수로서 ‘한의학으로 노벨상에 도전한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한 경력도 있다. 양방의사지만 일찍부터 한의학도 깊이 연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역시 부업일 뿐, 그가 일생 추구한 목표는 도통(道通) 한 가지다. 그는 평생 ‘어떻게 하면 도통할 것인가?’라는 화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요즘 시대에 ‘도통’이라는 말을 들먹이면 금세 귀신이 출몰하는 ‘전설의 고향’ 분위기가 난다. 그만큼 ‘도를 통한다’는 목표는 신화의 세계로 넘어가 버렸다.

까마득한 신화의 세계에나 어울릴 법한 주제를 가지고 60대 후반의 노거사(老居士)와 인터뷰한다고 생각하니 여러 가지 감회가 밀려왔다. 설악산 어딘가 바위동굴에서 솔잎차를 마주 놓고 하면 좋을 테지만, 대담은 전주 시내 병원 1층에 있는 서재에서 이뤄졌다. 태극권에 관한 서적 수백 권과 태극권 고수들의 시연모습을 찍은 비디오테이프가 사방 벽을 가득 채운 ‘태극권 룸’에서였다.

짝사랑 열병이 道로 이끌다

-언제부터 도학에 관심을 가졌나.

“열아홉 살부터다. 내 고향은 전남 보성읍 주봉리(珠峰里)라는 곳이다. 당시 우리 동네에 부잣집이 두 집 있었는데, 위에 있는 기와집이 우리 집이었고 아래 기와집이 최가네 집이었다. 최가네 집에는 미모가 빼어난 23세의 처녀가 있었는데, 중학교 교편을 잡고 있던 어머니의 제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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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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