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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19)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임맥과 독맥이 뚫리니 한민족 기운이 북방으로 뻗친다”

  • 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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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을 알아맞히고,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한국이 8강 이상에 들어간다고 주장해 화제가 된 예언가 한바다 선생. 일류대를 나왔지만 그는 평생 단 한 번도 직장생활을 한 적이 없다.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며 명상에만 몰두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오랫동안 한반도의 기운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이젠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 될 때가 왔다고.
한반도 기운을 읽어내는 예언가 한바다

영적인 파워 중 예언 능력을 지닌 한바다 선생은 “남북한과 동서 지역의 에너지가 합해져 한민족의 대운이 상승할 때가 왔다”고 예언했다.

비전(vision)이 있어야 한다. 비전은 곧 희망이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비전을 갖고 있을 때 활기가 넘친다. 희망이 있어야 한번 살아볼 만한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비전이 없다. 도대체 살맛이 나지 않는다. 불경기가 계속되고 실업자는 늘어난다. 어렵게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할 자리가 없다. 북핵 문제는 좀체 풀리지 않아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위기감을 조성한다. 그런데다 ‘저출산’ 현상이 심각하다. 먹고살기도 힘든데 아이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불경기, 청년실업, 북핵, 저출산은 한국이 앓고 있는 우울증의 4대 요인이다.

상식에 의존하는 범부는 이런 상황에서 희망을 갖기 어렵다. 이럴 때는 상식을 뛰어넘는, 비상한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평화로울 때에는 상식이 필요하지만, 비상시에는 초상식(超常識)에도 귀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한바다(46) 선생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지만 단 한 번도 월급을 받아본 적이 없다. 20여 년 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전국의 이 산, 저 산을 옮겨다니면서 명상에 몰두한 것뿐이다.

그에게 연락했더니 “지리산에서 만나자”는 대답이 왔다. 지리산 피아골의 어느 산장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계룡산 동학사 입구에서 지내다가 잠시 거처를 옮겼다고 한다. 계룡산에서 지리산으로, 지리산에서 계룡산으로, 노마드(nomad)란 바로 이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주머니가 가벼워야 하고, 마음이 가벼워야 하고, 인생에 대한 집착이 없어야 가능한 삶이다. 그간의 경험에 비춰보면 무거운 사람은 결코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이동할 수 없다.

명상은 근원의 마음 찾기

지리산 피아골 계곡에 들어섰더니 주변이 온통 푸르렀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바위를 돌아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붙잡는다. 물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가벼워진다. 연곡사를 지나 길 양 옆으로 녹음이 우거져 터널을 연상케 한다. 나무와 풀 향기가 막힌 코를 뚫어준다.

1km쯤 더 가니 우측에 조그만 산장이 하나 나온다. 이름은 ‘산골산장’이다. 2층 벽돌집으로 외양은 평범하다. 한바다 선생은 이곳의 방 하나를 빌려 며칠 머무르고 있었다. 노마드에게는 암자도, 등기부 등본도 필요없다. 임시로 빌려 쓰는 산장이면 충분하다. 2층 방으로 올라가보니 책 몇 권과 덮고 자는 이불밖에 없다. 하지만 실내에는 평화롭고 안정된 기운이 꽉 차 있었다. 필자의 마음도 저절로 편안해졌다. 방에 들어갈 때 불안한 마음이 들면 주인은 하수에 해당하고, 편안한 느낌이 오면 고수라 진단해도 거의 틀리지 않다. 방에 머무는 사람의 염파(念波)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한 선생의 키는 170cm도 되지 않는다. 조그맣고 단단해 보이지 않는 체격에 동안이다. 상대방을 긴장시키지 않는다. 이런 얼굴이라면 ‘안시(顔施)’라고 해야 맞다. 얼굴 표정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니, 얼굴 하나로 상대방에게 보시하는 셈이다. 항상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를 보고 ‘미소의 근원은 어디일까’를 생각하며 운을 떼었다.

-명상을 한다고 들었다. 명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몇 년 전에 어떤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선(禪)을 오래 한 스님으로 나이도 어느 정도 드셨다. 불교신자 몇 명과 이 스님을 찾아뵙게 됐는데, 같이 간 사람들이 모두 큰절로 스님께 인사를 드렸다. 큰절로 인사하는 것이 불가의 예법이다. 하지만 나는 절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나의 불손한 태도가 스님에게는 거슬렸던 모양인지 내게 이렇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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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江湖東洋學연구소 소장,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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