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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여의사 정혜신의 남성 탐구

‘의리파’ 장세동 ‘멋대로’ 전유성

그 양극단의 인기비결

‘의리파’ 장세동 ‘멋대로’ 전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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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동이 전두환을 처음 만난 건 1966년 그가 월남전에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유럽 출장 길에 병원에 들렀던 당시 전두환 중령은 장세동 대위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1967년 11월에 그가 월남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자신이 대대장으로 있는 수경사 30경비 대대 작전장교로 명령을 내놓았다. 상관과 부하관계로서 둘 사이에 최초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후로 두 사람은 파월 백마부대의 일원으로, 공수특전단장과 대대장으로, 대통령 경호실의 상관과 부하로, 무려 7년8개월을 동고동락하게 된다. 그는 전두환과 가장 오랫동안 직접 상관과 부하관계를 유지하며 같은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장세동은 지금도 전두환을 ‘어른’이라고 지칭한다. ‘어른’이라는 말 속에는 상대적으로 자신을 미성숙한 ‘어린 아이’로 규정하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전두환과 장세동은 육사 11기와 16기의 선후배로 실제 나이는 5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그가 ‘어른’을 대하는 태도는 엄격한 부자지간이나 봉건적인 군신 관계를 연상케 한다. 큰절을 올리는 것은 다반사고 자신의 생각이 어른에게 알려지는 일 자체를 ‘외람되게’ 생각한다.

그는 어른을 정성으로 모셨다고 말하면서 그런 면에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토로한다. 훌륭한 분을 오랫동안 모실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가 ‘어른’에게 바치는 정성과 충성심은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을 거치면서 절정에 달한다. 대통령이 산책로에서 돌부리에 걸려 비틀거리면 심기가 불안해지고, 그렇게 되면 의사결정에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도로의 정지작업 정도로는 성이 안 차 길에 새똥이 쌓여 굳은 것을 녹이는 약품까지 개발하게 했단다. 대통령의 심기 안정이 경호실장과 안기부장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른바 ‘심기경호’다.



그는 경호실장 시절에 ‘어른’이 찾으면 늘 3분 이내에 출두했으며 연락 받는 즉시 머리 손질을 하고 ‘어른’이 쓰는 것과 똑같은 향수를 뿌리고, 권총을 찬 뒤 윗옷의 양 호주머니에 지도를, 그리고 메모용 수첩을 반드시 윗옷 안호주머니에 넣고 갔다고 한다. 지도는 수행 도중에 대통령이 산의 높이나 낯선 건물에 대해서 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하기 위해서다.

그는 또 술자리에서도 각하의 말씀 하나라도 놓칠까봐 바로 옆자리에 앉아서 메모를 했다고 한다. 각하가 술맛이 떨어지겠다고 핀잔을 주었을 정도라니 기가 질릴 만하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행동에 붙이는 이유가 자못 숙연하기까지 하다. 사석에서라도 대통령께서 공무에 관계되는 말씀을 하시면 적어 두었다가 관계 부서장에게 통보해주려고 그랬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입속에 혀가 따로 없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본능에 반하는 한결같은 충성심

그러나 사람들이 장세동에게 환호를 보내는 건 주군에 대한 의리나 충성심이 직업적, 객관적 관계가 종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었기 때문인 듯 싶다. 5공이 끝난 뒤 경호실장이나 안기부장으로서 객관적인 책임감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어른을 보호하기 위해서 기울인 노력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도 많이 남겼다.

“사나이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 “어른을 구속하려 들 경우에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고, 그러지 못한다면 나도 어른의 뒤를 따라 가겠다” “가만히 있어라. 내가 링에 올라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용팔이 사건에는 나 이상의 배후가 없다” “신고합니다,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등등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에게 의리의 사나이 돌쇠니, 그림자 인생이니 하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사람이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속성을 가졌기 때문에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타인을 먼저 생각해서 자기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장세동의 ‘본능에 반하는’ 한결같은 충성심은 대중을 감동시킨다.

강준만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장세동 같은 인물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바꾸어 정당화시키는 일에 거리낌이 없다. 그는 누가 그런 현실을 비판하면 ‘개새끼’라고 소리치는데, 그 소리는 확신과 신념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몇 가지 물건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 오랜 생각 끝에 하나를 선택했다고 가정하자. 선택 후 사람의 반응은 선택 전과는 달라진다. 자기가 선택한 것은 확실히 좋은 것이었다고 확신하며,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때론 자기가 선택한 것에 대해 적극적인 선전자로 변하기도 한다. 상표 충성도(Brand Royalty)가 생기는 심리적 이유다.

자기가 선택한 상품에 대해서 불안감이 큰 사람일수록 선택후의 합리화 경향이 심해진다고 한다. 그가 지금까지도 전두환이라는 상표에 지나치게 충성하는 정도도 혹시 그의 내적 불안감의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장세동의 의리나 충성심 전체를 깎아내리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에게 혹시 이런 속마음도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는 일조차 금지된 것은 아니잖은가.

“나도 한두번쯤은 내 행동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나도 생각이 있고, 똑똑하다면 똑똑한 놈 아닙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전두환에 대한 충성심이나 의리를 계속 외쳐대는 것 외에는 사실 대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내 의리를 그토록 칭찬해주었는데 이젠 너무 지쳤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아요? 지금 와서 등을 돌려 나에게 득이 될 게 뭐 하나라도 있어야지요. 그러니 참아야지요. 갈 때까지 이대로 가는 수밖엔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어른’은 늘 전력투구형 충성심에 익숙해 있는지도 모른다. 아나운서 김동건이 기자와 인터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전두환 전대통령이 신기합니다. 어떻게 한 인간을 그 많은 사람들이 추종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때문이죠. 장세동, 안현태 등 수없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느날 우연히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 물어 봤어요. ‘장세동, 안현태 이런 분들이 왜 그렇게 충성합니까?’그랬더니 뭐라 대답한 줄 아십니까? ‘그 사람뿐이 아니여. 그런 사람 말고도 많아요’라며 웃더군요.”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남자들

한 순진한 처녀가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으로 그 사내는 플레이보이였다. 처녀는 남자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밤새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달콤하게 추억하지만 바람둥이 사내는 그 시간에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다. 순진한 처녀에겐 그 남자가 유일한 대상이지만 플레이보이에게 그 처녀는 여러 여자 중 하나일 뿐이다. 장세동은 순진한 처녀일 수도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은 자신의 끈끈한 인간 관계를 바탕으로 정상의 권좌를 차지한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그의 가장 큰 능력은 동기생이나 부하들로 하여금 ‘저 사람은 누구보다도 나를 제일 신뢰한다’고 믿게 만드는 힘이라고 한다.

거기에 덧붙여서 받는 사람의 예상보다 늘 ‘0’이 하나 더 붙어 있곤 하는 촌지 액수도 그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하는 데 한몫을 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장세동이 감옥을 다녀와 “휴가 다녀왔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전두환 전대통령은 물경 18억원을 그에게 위로금으로 주었고 그 후에도 8차례에 걸쳐 모두 30억원을 하사했단다. 아무리 대가를 바라고 바치는 충성이 아니라고 주장해도, 주군이 이 정도의 배려를 하면 감읍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배,배, 배신이야. 배신.”

한동안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유행어다. ‘넘버3’라는 한국 영화에서 얼치기 두목 조필(송강호)이 졸개들의 절대적인 충성심을 강요하면서 더듬거리던 대사다. 남자들은 배신자로 낙인찍히는 것을 죽기보다 두려워한다. 신의가 없는 남자는 남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10·26 때 김재규의 명령 한마디에 대통령 경호원들을 사살하고 거사에 가담했다가 사형을 당한 박선호 당시 의전과장의 고백은 충성이나 신의에 집착하는 남자들의 안쓰러운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수사할 때 수사관이 나보고 바보라고 했다. 김부장을 쏘거나 밀고했으면 되는데 그러지 않아서 이렇게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배신했으면 김부장은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신의가 중요하다. 신의가 없는 상관은 죽은 상관이다.”

사람들, 특히 남자들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듯하다. 남자들의 삶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살벌한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충성이나 의리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은 그 뿌리가 놀랄 만큼 깊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진돗개를 명견으로 꼽는 첫번째 이유도 진돗개의 충성심 때문이다. 진돗개는 주인에게 절대 복종하는 성질이 있어 한번 정해진 주인은 몇년이 지나도 잊지 않고, 주인과 한번 맺은 인연은 죽음으로까지 지켜나간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진돗개에게 경의(?)를 표하기까지 한다.

사람들이 장세동에 열광하고 호감을 거두지 않는 것은 그가 남자들의 마음속에 있는 배신에 대한 잠재적 불안감을 해소해 주는 인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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