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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변화의 달인 김윤환 딸각발이 선비 김윤식

  • 정혜신

변화의 달인 김윤환 딸각발이 선비 김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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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해야 살아남는다’고 숨가쁘게 외치는 이 시대에 ‘변화와 적응의 달인’으로 통하는 노(老)정객 김윤환과 ‘딸각발이 선비’의 전형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노학자 김윤식에게서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김윤환 민국당 대표는 1932년생, 김윤식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는 1936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다. 지금도 각자의 영역에서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왕성히 활동하지만, 노(老)정객이나 노(老)학자라는 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시대의 원로들이다.

김윤환대표는 여러 이질적인 정권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양지의 정치인’이고, 김윤식교수는 소설가의 꿈을 접고 문학평론가가 되어 평생을 ‘쓰고 읽는’ 일에만 전념해온 전형적인 학자다.

하는 일이 달라서도 그렇겠지만 두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나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필자는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두 원로의 성향을 유추해보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성향에 맞는 직업을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좀 실없는 짓이긴 하지만 이렇게 한번 생각해 보자. 김윤환대표가 평생 학자로서의 길을 걸었고 김윤식교수가 정치를 직업으로 삼았다면 어떠했을까. 정치인 김윤식과 노학자 김윤환. 실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역사에서 ‘만일’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허망함과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떨쳐버려야 하는 혼란스러움에 대부분의 원인이 있겠으나, 필자는 그 어색함의 이유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성향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두 분의 원로가 정치인 김윤식과 학자 김윤환으로 진로를 변경했어도 그 세계에서 나름의 독특한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성향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사람의 성향이나 적성이란 다분히 다면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메이저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실제로 김윤식이 1962년 ‘현대문학’에 ‘조연현론’을 발표, 문단에 등단해 평론 뿐 아니라 시와 소설을 함께 쓰고 있을 바로 그때, 김윤환은 시인 허만하씨와 ‘시와 비평’이라는 시 전문 계간지를 발행하고 있었다. 심심풀이가 아니라 문단에 정식으로 데뷔한 시인으로서였다. 시인 조병화씨는 당시 신문 월평에서 김윤환의 시를 가리켜 ‘낭만풍의 지적인 시’라고 평했다. 그러나 김윤환은 시인이 되지 않고 정치인이 되었으며 김윤식은 소설가가 되지 않고 평론을 하는 학자의 길을 걸었다.

김윤환이 명분을 중시하는 스타일리스트라면 김윤식은 인간의 내면에 천착하는 애널리스트다. 김윤환은 그의 시 ‘광장에서’처럼 넓게 열린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과 수없이 많은 악수를 나누는 반면, 김윤식은 등단 소감에 쓴 대로 ‘노예선의 벤허처럼’ 자신만의 공간에서 눈에 불을 켜며 산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다른 부분은 김윤환이 ‘유목민 스타일’이라면 김윤식은 ‘농경민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김윤환이 ‘변화와 적응의 달인’이라면 김윤식은 전형적인 ‘딸각발이 선비’다. 이 대목이 ‘변해야 살아 남는다’고 숨가쁘게 외치는 이 시대에 필자가 하필이면 두 원로에 주목하는 결정적인 이유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윤환은 3공화국의 유정회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5공과 6공 그리고 문민정부의 핵심요직을 두루 거쳐 현재 민국당 대표로 있는 정치인이다. 물리적 시간으로만 따져도 20년이 넘는 세월이었고 그와 영욕을 함께 한 최고통치권자들만 해도 4명이나 된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그의 정계입문을 도운 사람이었고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은 그의 친구들이었으며, YS는 킹메이커 김윤환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되었다. 정치부 기자들에 따르면 김대중대통령과도 관계가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변화의 시대를 사는 두 원로

변화에 적응하는 특별한 비결이 있지 않고서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놀라운 행적이다.

반면 김윤식은 1959년 서울대 사범대 국문과를 졸업한 이후 1년 정도 도쿄대에서 수학한 기간을 제외하면 현재까지 서울대 한 곳에서, 평생 써본 감투라곤 순번제로 맡는 국문과 학과장이 유일할 정도로 30년 가까이 문학비평의 외길을 걷고 있다.

대학자로서 김윤식이 가지고 있는 업적과 경외심을 잠시 접어놓는다면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대부분 김윤식과 비슷한 삶을 추구했거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남자들은 변화가 대세인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서 지금까지의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 좋다는 강박관념을 갖기에 이르렀다. 변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세계 100대 기업 중 한 세기 이상 수성(守成)에 성공한 기업은 17개에 불과하며 그 생존과 쇠퇴를 가른 조건이 바로 ‘자기변혁’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년간 30대 재벌 중 대우를 포함한 14개 재벌이 망하거나 오너가 바뀌었는데 이 또한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란다.

이런 사실이 수많은 직장인들을 압박한다. 올 한해 ‘동아일보’가 내건 슬로건도 ‘변해야 한다’이다. 원래는 ‘나부터 변하자’는 표어였는데 일방적인 변화만을 강요받아온 일반 시민에게 또 다시 변하라는 주문은 짜증만 나게 할 뿐 호소력이 없다는 외부 전문가 그룹의 자문을 수용한 결과란다. 주제넘은 얘기지만 언론사의 독선적이지 않고 겸허한 심정적 배려가 더없이 고맙다.

사회의 한쪽에서는 분사를 비롯한 슬림화가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쪽에서는 기업합병의 시너지효과를 주장하며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거대 공룡기업으로의 변화가 한창이다. 모순이 따로 없다. ‘변화’라는 화두에도 이러한 양면성은 그대로 존재한다.

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겠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식의 맹목적인 주문은 인간적이지도 않고 너무 극단적이다.

김윤식은 외견상으론 답답할 정도로 변화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글쓰기나 비평작업의 접근 방법에서 놀랄 만큼 다양한 변화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김윤환과 김윤식은 소위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인물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삶에서의 ‘변화’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를 천천히 음미해 보자. 먼저 김윤환에 대해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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