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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신의 남성탐구

이회창의 ‘칼과 저울’ 강박관념과 균형감각

  • 정혜신

이회창의 ‘칼과 저울’ 강박관념과 균형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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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저울과 칼’로 비유할 수 있다. 타고난 성향과 고도의 훈련으로 거의 완벽한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저울의 모습은 그의 빛에 해당한다. ‘그러나 또한’ 극단의 분노와 폭력적 언행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에 휩싸이게 하는 칼의 모습은 그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입천하지정위(立天下之正位) 행천하지대도(行天下之大道)’.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좌우명이다. 항상 하늘 아래 올바른 위치에 서 있어야 하며 큰 길을 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중에서 ‘올바른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는 말은 이총재에게 거의 절대적인 가치관으로, 그는 평생을 이 기준에 맞춰 살아왔다.

스물세살의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평생 ‘원칙’만을 소신으로 법정신을 지켜왔고,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를 역임한 관료 시절에도 원칙주의자라는 면모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96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는, 정치인이면 누구나 당연히(?) 받는 비판에다 이총재가 개인적으로 가슴아파할 만큼 인간성에 관한 비난까지 듣고 있다.

그 절정은 아마도 지난해 한나라당의 공천파동일 것이다. ‘이회창은 무서운 사람’ ‘이회창은 가차없이 보복하고 인간적 신의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비난이 난무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는 논외로 하더라도 단 한마디의 인간적 양해나 설명도 없이 허주를 비롯한 그의 동지들을 제거한 일은 한나라당 출입기자들조차 분노할 정도였다는 평가다. 그 과정이 비열했다는 것이다.

단아한 선비 스타일의 이총재와는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이전에도 종종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반인들이 이총재에 대해 ‘대쪽’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그를 표리부동한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97년 대선 기간에 약속을 깨고 DJ의 병역기피 의혹을 얘기하고, ‘DJ 비자금’까지 폭로했다는 것이 그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원래 여야 영수회담은 실무선에서 타결되지 않는 정치현안을 풀기 위해 개최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김대통령은 발표문안까지 사전에 합의토록 지시한 적도 있는데 이게 다 이총재의 표리부동을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총재는 또 가끔 예상할 수 없는 폭력적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드는 때가 있다. 언젠가 한나라당 총재단 회의 중에 생긴 일이다. 회의 참석자들 간에 이견이 생겨 약간의 말다툼이 생겼다. 짜증이 난 이총재는 그만하라면서 탁자에 있던 물컵을 높이 쳐들었다가 탁자 위로 세게 내리쳤다. 컵 속의 물이 자신의 얼굴에 튈 정도였다. 두 번 연속으로 컵을 내리쳐서 결국 컵은 박살이 나버렸다. 이총재의 이런 행동을 간간이 보아온 한나라당의 어느 부총재는 그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총재를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정계에 입문한 지 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부끄러워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한다. 회식 때 식탁에 오른 산낙지를 보고 “허참, 잔인하구먼…”하며 입에도 대지 못하는 사람이 이회창이다. 주위 사람들은 극단적이기까지 한 이총재의 두 얼굴에 혼란스러워 한다.

저울과 칼

필자는 이회창이라는 한 남자의 성향을 살펴보다가 문득 ‘저울과 칼’을 연상했다. 법의 상징인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는 한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서서 법의 엄정성과 공정성을 보여주는데,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저울과 칼’은 유스티치아의 그것과는 좀 다른 개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에 관한 명저 ‘국화와 칼’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개념과 더 유사하다. 국화의 온화함과 칼의 잔혹함, 이렇게 극단적인 양면성(빛과 그림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국민이 일본인이라는 게 루스 베네딕트의 해석인데 그 시각을 좀 차용해 보자. 이총재의 심리적 특성은 우리가 흔히 일본인의 국민성이라고 일컫는 결벽증 혹은 강박증적 특성과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인의 심성과 이총재의 심리적 특성을 비교해보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루스 베네딕트에 의하면 서양사람들이 일본인에 대해 기술한 글에는 ‘그러나 또한’ 이라는 표현이 연발되고 있다 한다.

“일본인은 유례없이 예의바른 국민이다. ‘그러나 또한’ 불손하며 건방지다. 일본인은 용감하다. ‘그러나 또한’ 겁쟁이다. 그들은 유순하다. ‘그러나 또한’ 분개하길 잘한다. 그들은 철저히 복종적이다. ‘그러나 또한’ 무섭게 반항적이다.”

‘그러나 또한’ 이란 말은 일본인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상징적인 단어다. 세계 최고의 친절을 자랑하는 서비스 국가지만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는, 이렇게 양 극단을 시계추처럼 왕복하는 일본인의 심성을 상징하는 말이 ‘국화와 칼’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필자는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저울과 칼’로 비유해 보는 것이다. 이총재는 타고난 성향과 고도의 훈련으로 거의 완벽한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이다. 이것이 필자가 말하는 ‘저울’이며 인간 이회창의 빛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또한’ 이총재는 극단의 분노와 폭력적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에 휩싸이게 한다. 이것이 ‘칼’이며 인간 이회창의 그림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는 모순된 양 극단을 동시에 보여준다. 마치 손은 하루에 열번 씻으면서 발은 열흘에 한 번 씻는 사람 같다.

이 글은 ‘인간 이회창’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호불호(好不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이총재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한 글이라는 뜻이다. 행여 필자의 세련되지 못한 전달 솜씨로 인해 뜻하지 않게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부분이 없었으면 한다. 이총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민감한 위치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성향을 분리해서 설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겠으나 ‘칼의 이회창’과 ‘저울의 이회창’으로 나누어서 인간 이회창을 살펴보자. 먼저 ‘칼의 이회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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