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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선생님

고전 통해 억압의 숨통 틔워준 스승

“해학과 운치로 금기 풍자한 선조들의 지혜를 배우라”

  • 이재만 변호사 ljmad52@hanmail.net

고전 통해 억압의 숨통 틔워준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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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와 규율만이 강요되던 숨막히는 1960년대 고교시절, 고전을 가르치신 최상덕 선생님은 재미있는 강의와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로 우리의 숨통을 틔워주셨다. 변호사 생활을 하는 지금도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고전의 지혜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고전 통해 억압의 숨통 틔워준 스승

최상덕 선생(오른쪽)과 모교를 찾은 이재만 변호사가 학창시절을 소회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생들에게 공부와 규율만이 강요되었다. 교사들의 체벌은 물론 선배들의 ‘군기잡기’도 여간한 게 아니었다. 교사들은 성적이 안 오르면 안 오른다는 이유로, 오르면 기대만큼 안 올랐다는 이유로 매를 들곤 했다. 주로 손바닥이나 엉덩이(속칭 ‘빠따’)를 때렸는데, 한 대 맞을 때마다 아프다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했다.

선배들은 주로 ‘버릇없다’는 이유로 군기를 잡았다. 머리카락이 길다, 복장이 불량하다, 태도가 불량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일제 강점기 때 만세학교(배재학교=반자이학교)라 불릴 만큼 반일(反日)기운이 강했던 학교인지라 일본 학생들과 대항하기 위해 강한 학생으로 훈육(訓育)하던 전통이 남아 있어 선배들의 권위도 대단했다.

당시는 질서, 규율, 근검, 절약 등의 가치관이 강조되던 시대였고, 더구나 내가 다닌 배재고등학교는 분위기가 매우 엄격한 전통 사학(私學)이었다. 학교에는 이야깃거리도 많았다. 교정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의 북쪽으로 뻗친 큰 가지가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 번개에 맞아 부러졌다. 이 일은 내가 입학하기 2년 전인 1965년에 있었는데, 이 대통령이 배재학당 출신인 탓에 ‘이 박사가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한이 깊어서 모교 교정에 있는 거목의 북쪽 큰 가지가 번개에 부러진 것’이라고들 했다.

교정 동관 옆에 있는 수령 500년이 넘은 향나무의 10여 m 높이에 커다란 못 같은 것이 박혀 있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말을 묶어놓던 것이라고도 했고, 교실 지하실은 독립신문을 인쇄하던 곳이라고도 했다.

또한 그 무렵엔 매일 아침 국가적 캠페인이던 새마을운동을 독려하는 노랫소리가 흘러넘쳤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당시 학생들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 뇌리에 인이 박일 만큼 들었다. ‘조국 근대화’라는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국가적 시책이 방송 뉴스나 드라마에서 수시로 방영되곤 했다.

학생들은 조국 근대화를 위한 미래의 역군으로서 오직 ‘규율 속의 공부’만이 중요한 일이었고, 다른 과외 활동을 할 자유는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다들 까까머리에 목을 꽉 감싸는 호크가 달린 검정 교복에 검정 모자를 쓰고 학교와 집을 오갔다. 빵집도 자유롭게 들락거리지 못했다. 극장 출입이 불허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교회 아니면 학원에나 가야 여학생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고교생 미팅 같은 문화도 우리 시대에는 없었다. 남녀간의 내외도 심했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의 가치관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던 탓이다.

우리 세대에게 특히 말 한마디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 외사랑의 기억이 절절한 예가 많은데, 이는 이성교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죄악시되기도 했는데 고등학생들에게는 더 심했다. 나는 항상 이 점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마침 배재고 주변에는 이화여고, 경기여고 등 명문 여학교들이 있었다. 곱고 아리따운 여학생들을 등하굣길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행운이었다. 그만큼 이성 교제에 호기심이 많고 어리숙한 시절이었다. 짝사랑하는 여학생이 멀리서 나타나면 수줍어서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곤 하던 때였다. 우리들은 대부분 혈기는 방자했으나 어디 제대로 발산할 곳이 없어 헤맸고, 애써 의연한 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파격적인 ‘성인등급’ 수업

어찌 보면 가장 자유분방하고 창의적이어야 할 인생의 황금기인 고교 시절이 오히려 더 암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청춘이 장밋빛이기는커녕 우울한 잿빛이었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억울하고 아쉬운 시절이라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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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변호사 ljmad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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