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멘토 & 멘티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문상주 한국학원총연합회장

‘세계의 師父’ 꿈꾸는 한국 교육계 두 원로

  •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문상주 한국학원총연합회장

2/2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문상주 한국학원총연합회장

두 사람은 청소년 교육과 평생교육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덴마크 유스호스텔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청소년 교육이 덴마크 국가 발전에 기여해 황폐한 덴마크 땅을 기름지게 바꿔놓는 원동력이 됐다고 들었어요. 그때 참 부러워서 고국에 돌아가면 그런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문 회장을 만나 단순히 청소년을 선도하는 데서 더 나아가 청소년을 지도해 국가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고 했지요.”

문 회장은 권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국 순례를 하기 얼마 전, 미국과 일본, 동남아시아를 여행한 그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 유흥가에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한국 여성이 많은 걸 목격하고는 가슴이 아팠어요. 우리나라도 하루빨리 선진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권 교수가 청소년 교육에 기여할 만한 일을 해보자고 하기에 무릎을 쳤지요.”

문 회장은 즉각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1982년 일본 컴퓨터 전문학교와 계약을 하고, 국내에서 지원자 10명을 뽑아 학비와 일본에서의 생활비를 지원했다. 주변에서 “나라가 할 일을 뭣 하러 사교육 하는 사람이 떠맡느냐”고도 했지만, 그는 ‘앞으로 세상은 컴퓨터가 지배할 것’이라는 확신으로 밀어붙였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얻은 깨달음이었다. 문 회장은 한국의 빌 게이츠를 길러내는 것을 꿈꿨다. 그는 유학생 10명을 이끌고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영친왕이 살던 곳을 찾았다.

“영친왕이 이곳에서 사시게 된 것도 우리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니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공부에 매진하라고 일장 연설을 했더니 학생들이 공감하더군요. 임진왜란 때 끌려온 조선인들이 살던 곳도 보여주며 정신교육을 시켰어요.”



유학생들은 1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2년제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일본 생활에 적응하는 데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한국 학생들이 컴퓨터 시험에 대거 합격했다’는 소식이 일본 신문에 크게 실렸다.

아들 중매와 딸 주례

문 회장은 1994년부터 대통령직속 교육개혁위원회 위원으로 일할 때도 컴퓨터 교육을 강조했다. ‘미스터 컴퓨터’라는 별명을 얻었을 정도다. 이후 문 회장은 우체국 공중전화에 남겨진 동전을 수거해 전국의 학교에 컴퓨터를 마련해주는 ‘우체국 낙전 사업’을 추진했고, ‘주부 100만 인터넷 교실’도 그의 작품이다.

1997년 문 회장이 중국에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학(중화고려대학)을 설립한 것도 한국 선진화의 초석을 다진다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이 더 성장하려면 미국과 일본 외에 새로운 경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데, 한국 자본으로 대학을 지어 중국인을 가르치면 친한파(親韓派)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중국에 한국 상품을 팔려면 우선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야 했다.

문 회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도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월드컵 공동 개최국으로서 일본에 뒤질 수 없다는 일념으로 전국 서포터즈를 만들고 회장을 맡았다.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러 온 관광객, 선수, 관계자들에게 모든 면에서 ‘일본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고 싶었다”는 그는 한국직능단체 회장으로서 택시기사, 호텔 및 음식점 종업원 등 각 분야의 인력이 각자 맡은 바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했다.

이렇듯 문 회장이 큰일을 벌일 때마다 권 교수는 쌍수를 들어 돕는다.

“문 회장은 번뜩이는 총명함으로 한 번 결정하면 뒤 돌아보지 않고 무섭게 추진해요. 그래서 반대파를 만들기도 하고, 주위 사람을 지치게도 하기 때문에 저는 늘 ‘서두르지 말고 여유 있게 추진해라’ ‘가슴으로 사람들을 포용해라’고 말하죠. 사람들이 문 회장을 ‘냉철한 리더’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참 다정해요.”

문 회장과 권 교수는 집안 대소사까지 상의한다. 문 회장은 권 교수에게 아들 중매를 부탁했고, 권 교수는 문 회장에게 딸 결혼식 주례를 부탁했을 정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

권 교수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파독 광부 2기’에 지원해 독일로 떠났다. 소 팔아 여비를 마련해준 가족에게 보답하고자 연장 근무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공부했다.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온 성실한 젊은이에게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박사까지 마치는 행운을 누렸다. 1979년에 귀국해서는 전북대 교수가 됐고, 1985년부터 한국교원대에 재직하다 지난해 정년퇴직했다.

“퇴직하는 날 문 회장이 찾아왔어요. ‘형님 이제부터 뭘 하실 겁니까’ 하고 묻기에 ‘퇴직했으니 이제부터 쉬어야지’ 했더니 을지로 3가에 사무실을 얻어놨다면서 청소년 육성에 대한 연구를 해보라는 거예요. 1980년대 초반에도 수입 골프채를 소포로 덜렁 보내고는, ‘교수 체면도 있으니 연습장에 등록하라’고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이번에도 그렇게 절 감동시켰지요.”

그러나 문 교수는 권 교수가 자신에게 베푼 것에 비하면 약소하다고 손사래를 친다.

“제가 장남이라 형이 없어서, 친형처럼 26년을 한결같이 지냈어요. 특히 교수님의 긍정적인 사고는 제가 많은 일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이 됐지요.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때도 교육 개방화가 우리 교육현실에 미칠 영향에 대해 여러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했는데, 오직 권 교수님만 ‘돈 워리(Don’t worry)’라고 했어요. 우리는 저력 있는 민족이라서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다고요.”

두 사람은 지금 같은 꿈을 꾸고 있다. 남을 도울 능력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교육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소득이 5만달러가 되고, 우리 국민이 ‘세계의 사부(師父)’가 되게끔 청소년 및 평생교육에 매진하는 것이다.

신동아 2007년 6월호

2/2
권주리애 전기작가, 크리에이티브 이브 대표 evejurie@hanmail.net
목록 닫기

권이종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문상주 한국학원총연합회장

댓글 창 닫기

2019/06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