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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⑫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버락 오바마보다 더 강하고 매력적인 여성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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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두 딸 말리아, 샤샤와 함께한 오바마 부부.

남에게 베풀며 사는 법을 가르쳐준 것도 부모였다. 아버지는 병마와 싸우며 일을 하면서도 정치 자원봉사를 했고 어머니도 틈만 나면 학교 자원봉사를 했다. 이런 성장 배경은 그녀가 나중에 시카고의 일류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사회봉사직으로 옮겨 사적인 삶보다 공적인 삶에 관심이 많던 버락 오바마를 남편으로 선택하는 바탕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는 1980년대 후반, 결혼 전 미셸 집을 방문했을 때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것처럼 완벽한 가정이었다”고 말했다. 일과 양육에 헌신하는 쾌활한 아버지, 과자를 굽고 아이들 학교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는 어머니, 친구 같은 오빠. 친척들도 와서 몇 시간씩 농담을 하고 식사하며 음악을 듣는 모습은 단란한 가족의 전형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없이 유년시절을 보내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낯선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란 버락으로서는 충분히 충격받을 만한 모습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가정에도 그늘이 있었다. 아버지의 병은 곧 어머니에게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부담이었다. 평범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것저것 꼼꼼하게 조정하는 데 들인 노력이 만만치 않았다. 미셸은 선거기간 중 여러 인터뷰를 통해 굉장한 현실감각을 드러내보였는데, 아마도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치러야 할 희생을 어릴 적 부모를 통해 봐왔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프린스턴의 이방인

미셸은 1981년 가을 프린스턴대에 입학하면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알았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에 접어들었음을 깨닫는다. 프린스턴은 겨우 몇십년 전에야 남녀공학이 됐고, 흑인을 입학시킨 것은 채 20년이 되지 않은 때였다. 그녀는 우리로 치면 81학번인데 당시 총 1141명의 프린스턴 신입생 가운데 94명이었던 흑인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사실 미셸이 태어난 시카고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도시다. 외할아버지는 목수였는데 피부색 때문에 목수조합에 가입할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건축 일자리도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셸이 성장하던 시절에는 세상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인권운동으로 1964년에는 민권법이, 1965년에는 투표권법이 제정됐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맬컴 엑스 같은 걸출한 흑인지도자가 등장했다. 미셸이 살던 도시 태생인 제시 잭슨 목사는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는 최초의 흑인이 될 것으로 점쳐지기도 했다.

그런 환경에서 미셸 부모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꿈은 원대하게 품고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하지만 대학은 달랐다. 미셸은 프린스턴대 학보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몇 안 되는 흑인 학생 가운데 하나였던 나는 생각했던 것만큼 기회가 많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부유하고 근심 걱정 없는 학생들의 모습은 그녀에게 낯설었다. BMW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BMW를 타는 학부모조차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텔레그래프’ 인터뷰)

일부 백인 교수와 친구들이 아무리 진보적이고 편견 없는 태도로 자신을 대해도 때때로 방문자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문화적 충격은 자칫 부자에 대한 질시와 미움, 혹은 그들의 삶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작용하기 쉬운데 미셸은 ‘봉사활동’을 택한다. 그녀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소수자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역 아동들을 돕는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센터 일을 시작한 것이다. 우리로 치면 공부방 자원봉사나 야학 같은 일이다. 또 ‘프린스턴’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다종다양한 지역 흑인 학생들을 위한 지도와 상담지원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흑인연합조직에서도 활동했다.

이런 환경에서도 미셸은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계획을 세우고 지켰으며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 전부터 공부했다. 그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고 한다. 하버드 로스쿨 지도교수였던 데이비드 윌킨스는 “일반적으로 학생들은 어떤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논리적 기교를 부리기도 하는데 미셸은 언제나 입장을 뚜렷하게 표명했다”고 회고한다.

흑인 엘리트의 진로

‘공부’라는 현실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고민을 놓지 않았던 미셸의 선택은 대학졸업논문에 그대로 반영된다. 사회학을 전공한 그녀는 1985년 졸업논문 제목으로 ‘프린스턴에서 교육받은 흑인과 흑인사회’를 택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학에서 나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을 또렷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게 집필 동기였다. (버락 오바마 선거운동본부는 처음엔 대통령선거 때까지 미셸의 이 논문 공개금지를 요청했지만 투명성을 지키겠다는 애초의 방침을 의식하면서 2008년 2월에 공개했다.)

미셸은 논문작성을 위해 흑인 졸업생 4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그들 중 다수가 흑인에게 경제적 교육적 직업적 기회를 제공한 소수계 우대정책이 시행되던 1970년대에 프린스턴대를 다녔다. 그녀는 설문조사 결과 학생들이 졸업 후 교육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 지위가 향상되면서 흑인이라는 정체성을 완전히 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들 대학시절 초기에는 흑인사회의 일원으로 내가 받은 혜택을 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되돌려줄 의무가 있고 현재와 미래의 능력을 이 사회에 도움이 되도록 써야 한다는 생각에 전혀 의심이 없지만, 졸업이 가까워지면 하나같이 명문대학원 혹은 전문대학원 입학이나 성공적인 기업에 고액 연봉자로 취업하는 것 등 백인 학생들과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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