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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19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내가 차갑고 거친 건 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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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의 실제 모델 애나 윈투어. 영화가 보여주듯 그녀는 세계적인 패션지의 수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패션업계를 긴장시키는 인물이다. 그녀의 성공 뒤에는 갖가지 혹평과 추문이 따르지만, 변변치 않은 학벌로 여러 잡지사를 전전한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보그’ 편집장이었다. 목표를 성취하고 20년 넘게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삶은 지독한 프로페셔널리즘의 발현이 분명하다.
패션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과 테니스 경기를 관람 중인 애나 윈투어.

톱모델 김다울(20)씨가 프랑스 파리 집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2006년 프랑스 파리 컬렉션을 시작으로 샤넬, DKNY 등 유명 브랜드 패션쇼 무대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던 그녀는 2008년 세계 패션모델 랭킹을 소개하는 ‘모델스닷컴’ 사이트 ‘세계 여성 모델 톱 50’에 오르기도 했다. 미국 유명 잡지인 ‘뉴욕 매거진’은 ‘주목해야 할 모델 톱 10’에 그녀를 포함시킨 바 있다.

그녀는 죽기 한 달 전 10월17일 미국 뉴욕 패션쇼 현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특별한 감성을 가진 날 받아준 유일한 곳이 패션계였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지만 자신의 미니홈피에는 우울한 감정이 많이 담겨 있다. 제목이 아예 ‘나를 찌르고 싶다(I like to fork myself)’이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산 자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것은 부질없다. 하지만 스무 살 시퍼런 청춘이, 그것도 매혹적인 여인이 남 보기에 그토록 화려한 무대에서 쓸쓸함을 느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문외한들에게 패션쇼나 패션업(業)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말라비틀어진 모델들이 시체에나 맞을 법한 옷을 입고’ 무대를 걷는 모습은 현혹적이긴 하지만 저속해 보인다. 그러나 패션업계란 옷을 만들고 스타를 만들고 일자리를 만드는 자본주의의 엄연한 산업이다. 우리에겐 아직 패션업계의 스타가 그 업계를 아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도이지만 미국엔 연예인처럼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도 있다. 다름 아닌 패션 잡지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보그’를 21년째 이끌고 있는 애나 윈투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애나의 삶에는 ‘패션 잡지 편집장’이라는 외피를 쓰고 성취를 위해 달려온 한 일하는 여자의 고뇌와 치열함이 담겨 있다.

‘엘르’‘바자’‘W’‘인스타일’‘마리끌레르’ 등 세계적으로 수많은 패션전문 잡지가 있지만 그중에 최고라는 평을 듣는 보그는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미드(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가 애지중지하는 잡지다. 편집장 애나 윈투어(66)는 패션 디자이너와 패션업체의 생사여탈권을 쥔 막강한 여제(女帝)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막강 여제(女帝)

미국에서 2006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라는 소설이 나왔을 때, 보그는 물론 이 잡지를 발행하는 콘데 나스트 출판사의 모든 잡지가 이 소설과 관련해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저자가 애나 윈투어의 개인비서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썼으며, ‘악마’와 다름없는 캐릭터로 그린 소설 속 ‘런 웨이’ 편집장 미란다가 실제 보그 편집장과 흡사한 점이 많다는 뒷이야기가 돌아다녔다. 소설 속 미란다는 최고급 디자이너 브랜드로 온몸을 감싸고 다니며 우아하기 이를 데 없지만, 부하직원 등 다른 사람들을 정신적, 때론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고전적인 ‘악마 같은’ 보스로 그려진다.

보그(VOGUE)는 1892년 뉴욕 상류층을 대상으로 창간된 패션 잡지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등 13개국에서 발간된다. 지난 2세기 동안 많은 세계적인 사진작가와 스타일리스트를 탄생시킨 이 잡지에 대해 ‘뉴욕타임스’ 출판전문가 캐롤린 웨버는 “마치 볼테르 시대 신의 이상과 같은 의미를 지닌 존재”라고까지 치켜세웠다. 보그는 대중성과 상업성을 중시하는 다른 패션지에 비해 보수적이다 싶을 정도로 자존심과 스타일을 지키고 있다. 지금은 ‘웨딩드레스 디자인의 여왕’이 된 베라 왕을 발굴해 주목 받게 한 것도 보그이며, 마크 제이콥스(루이비통 수석 디자이너) 역시 편집장 애나 윈투어가 주목하면서 명성을 떨친다.

1988년부터 미국판 보그 편집장을 맡고 있는 애나는 차갑고 까칠하며 독선적인 성격 때문에 별명이 ‘핵폭탄 겨울(Nuclear Winter)’이다. 그러나 그녀가 패션쇼장 뒷무대인 백 스테이지라도 방문하면 그 쇼장은 ‘난리’가 난다고 한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으면 패션쇼를 시작도 하지 않으며, 잘 웃지 않는 그녀가 쇼가 끝난 뒤 박수를 치면 성공을 보장받았다고 할 정도다. 그녀의 입김으로 런던-밀라노-파리-뉴욕 순으로 진행되던 컬렉션 일정표가 뉴욕-런던-밀라노-파리 순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전설 중 하나다. 덕분에 “뉴욕 패션은 파리를 따라간다”는 오명을 벗었다.

애나 윈투어는 수십 년 동안 똑같은 머리 스타일에 어두운 패션쇼장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기인적 풍모에 샤넬, 프라다에 대한 집착이 남다른 ‘명품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거수일투족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고 고액연봉(20억원)에 업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게 되기까지는 새로운 유행과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독자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천부적인 능력과 ‘일에 목숨을 걸겠다’는 투지가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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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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