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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철녀들 24

미첼 바첼레트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증오를 거꾸로 돌리는 데 바친 삶… “고마웠어요, 대통령”

  • 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미첼 바첼레트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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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칠레에 엄청난 규모의 강진이 일어났을 당시 퇴임을 앞둔 바첼레트 대통령은 피해 도시를 직접 돌아보며 국민을 위로하고 안심시켰다. 가톨릭교도가 많고 남성 중심적이며 여전히 보수적인 나라 칠레에서, 불가지론자이며 이혼을 두 번이나 한 여자가 대통령에 당선돼 국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행복하게 퇴임할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핍박을 이해와 사랑으로 승화시킨 덕분이다.
미첼 바첼레트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2006년 3월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군중에게 인사하고 있는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

한국의 첫 번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 네루다의 고향이며, 프랑스 못지않은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나라…. 라틴아메리카 서남부의 칠레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다. 국토가 남북으로 긴 나라 칠레가 우리에게 가깝게 다가온 것은 아무래도 ‘와인’ 덕이 클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서 대거 쏟아져 들어온 칠레 와인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은 편이어서 국내 소비자가 와인에 한결 친숙해지는 데 일조를 했다.

그런 칠레가 최근 닥친 강진으로 전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2월27일 규모 8.8의 강진이 칠레 서해 연안에서 발생한 이래 여진만 100여 차례가 넘었다. 먼 곳에서 일어난 재난이지만 와인 값이 오르고 종이, 구리 등 원자재 값이 상승해 국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자 ‘지구촌’에 살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빛을 발휘한다. 칠레에서도 지진이라는 대재난 속에 이 나라 최초이자 남미 지역 전체에서 직접선거로 선출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 미첼 바첼레트(Michelle Bachelet)의 리더십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임기 마지막 날인 지난 3월10일까지 지진현장을 돌아다니며 이재민을 위로한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국제뉴스의 주목을 받았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바첼레트 대통령이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6개 피해 도시를 돌아보며 시민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지진 발생 직후부터 매일 TV에 출연해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침착한 대응을 주문한 것도 인상적이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약탈이 발생하자 협상을 통해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이재민들에게 물품을 공짜로 공급하면 추후 정부가 보상하기로 협의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2014년에 다시 만나요”

3월11일 있었던 그녀의 퇴임식은 재난의 와중에도 국민축제를 방불케 했다.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 발코니에서 작별을 고하는 바첼레트 대통령에게 칠레 국민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대통령 고마웠어요. 2014년에 다시 만나요” 하며 환호를 보냈다. 2014년 말 대통령선거에 다시 후보로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한 것이다. 행복하게 퇴임하는 대통령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정치가 연출된 것이다.

2009년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22위에 바첼레트를 올렸고, 2008년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그를 포함시켰다.

칠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바첼레트는 남녀를 통틀어 일찍이 칠레가 배출한 몇 안 되는 정치 스타다. 라틴 아메리카 최초 여성 국방장관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부터 드라마틱한 인생으로 칠레인의 마음을 울린 사람이다. 그가 걸어온 길에는 칠레 현대사의 분열과 상흔, 희망과 비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970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인 인민연합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정권은 대규모 산업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적 급진정책을 실시하다 집권 3년 만인 1973년 9월11일 육군사령관이던 피노체트의 군사쿠데타로 무너진다.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에서 결사항전하다 사망했다.

친미 쿠데타를 일으킨 피노체트의 통치는 1990년 정권 이양 때까지 무려 17년간 이어진다. 군부독재의 장기집권은 칠레 현대사의 그늘이다. 칠레는 한국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군부독재를 딛고 경제를 일으키고 민주주의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닮았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청문회가 열리던 1980년대 말, TV에서 방영된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칠레의 피노체트 독재는 가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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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동아일보 국제부 차장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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