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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⑥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버지니아 울프와 황진이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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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또 남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그리고 영원히 나 자신의 주인이다.
  • -버지니아 울프, ‘어느 작가의 일기’ 중에서
희대의 독학자들, 길 위에 방을 만들다

영화‘황진이’

고등학교 시절 몹시 따분한 시간 중 하나가 고전문학 시간이었다. 텍스트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거의 모든 시조의 주제를 ‘군주에 대한 충성’ 혹은 ‘자연합일’로 단순화하는 놀라운 교육 프로그램의 결과였다. 이제 와 다시 보면 윤선도의 시조가 얼마나 흥미진진하며, 바리데기 신화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교육지침 없이 자유롭게 요모조모 뜯어보는 고전 읽기가 얼마나 매력적인 지적 모험인지 알 수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없는 고전문학 시간에도, 정말 눈이 번쩍 뜨였던 때가 있었으니 바로 황진이의 시조를 배울 때였다. 황진이에 대해선 정확한 생몰연도조차 알 수 없다지만, 그런 자료의 빈곤함이 별로 아쉽지 않았다. 황진이의 시조는 400여 년의 시차를 가뿐히 뛰어넘어 철없는 여고생의 변덕스러운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冬至ㅅ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철부지 여고생의 눈에 비친 남성들의 시조는 하나같이 어떤 ‘꿍꿍이’를 숨기고 있었다. 그들의 시조는 부귀영화나 임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속내를 감추기 위한 우아한 연기력으로 보였다. 말하자면 그 시조 자체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짐작하기는 좀 어려운, 매우 의뭉스러운 시조투성이였다. 안빈낙도(安貧樂道), 군주에 대한 충성, 자연합일(自然合一)… 아, 이런 따분한 주제들을 외우느라 졸음이 쏟아지던 고전문학 시간에 황진이의 시조는 얼마나 상큼했던지 가뭄의 단비 같았다. 그녀는 단 석 줄의 시로 자신의 아름다운 삶의 누드를 기탄없이 펼쳐 보였다. 숨기지도 꾸미지도 새침 떨지도 않으면서. 나는 이 한 작품으로 ‘시조의 힘’ 뿐 아니라 문학의 힘을 확인했고, 더불어 사랑과 예술의 힘에 대한 최고의 강의를 선물 받은 듯 오랫동안 뿌듯했다.

한자어 없이는 ‘시공’ 자체가 불가능한 남성들의 시조와 달리 황진이는 아롱다롱한 우리말의 어감을 최대치로 길어올렸다. 시간과 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현대 독자의 심장을 향해 곧바로 메다꽂는 엄청난 모던함으로 여고생들의 심금을 울렸다. 학생들뿐 아니라 시조시인들 사이에서도 곧잘 애송시 1위로 뽑히는 황진이의 이 시조로 인해 ‘고전문학사에는 왜 이렇게 여성 작가가 없나?’ 하는 불만이 일거에 날아갔다. 여성 작가가 거의 없다고 해도 전혀 기죽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황진이 덕분이었다. 황진이라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들이 한꺼번에 덤벼들어 ‘시조 배틀’을 벌여도 능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욱이 남자는 이런 시를 쓸 수 없다는 본능적 확신이 들었다. 그건 내 안의 ‘여성성’을 폄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황진이는 학문과 예술과 사랑의 삼위일체를 실천하는 전방위적 자기계발의 여왕이었다. 유서 깊은 가문에서 나고 자란 남성 문인들처럼 어엿한 문집 하나 남기지 않았고, 그녀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한 일대기도 없다. 하지만 그녀의 영향력이 곳곳에 살아남아 현대인에게 강력한 문화적 파장을 뿜어내고 있다. 드라마와 소설과 영화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것만 봐도 황진이의 문화적 위력을 짐작할 수 있다.

지식인 황진이

그런데 혹시 황진이가 ‘우리 시대의 입맛’에 맞게 변형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화한 황진이의 텍스트들은 황진이의 ‘로맨스’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황진이를 일편단심 순정파로 그리는가 하면 팜파탈의 흥취가 물씬 풍기는 요부로 단순화하기도 한다. 철저히 시각예술 중심적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황진이의 ‘문학’을, 그녀의 ‘소리’와 ‘글씨’를, 그리고 내면 풍경을 그려내기가 어려운 탓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경향은 황진이의 ‘신분’에 초점을 맞추거나 그녀의 ‘불행’을 부각시키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탐구한 학문 세계나 예술 세계에 대한 조명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극복의 스토리로 황진이의 삶을 이해하다보면 그녀의 작품에 대한 해석 또한 영웅 신화적 틀로 재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 예술가로서의 황진이, 지식인으로서의 황진이는 더 많은 조명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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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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