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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18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메두사 vs 메데이아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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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망은 나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고
  • 이성은 나더러 저렇게 하라고 하니
  • 이 일을 어쩌지?
  •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나는 알고 있다.
  •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 나는 옳지 않은 길을 따르려 하고 있다.
  •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이야기’, 민음사, 2004, 284쪽.
1 남성의 지배에 길들지 않는 여인들

자아를 찾는 여성, 마녀가 되다

콜키스의 국보 황금양피를 얻기 위해 용을 잠재우는 이아손. 실제로는 이아손과 사랑에 빠진 메데이아가 용을 잠재우고 이아손을 돕는다.

남성의 가장 흔한 불평 중의 하나. “도대체 여자들이 원하는 게 뭐야?” 꾸밈없는 솔직함이 여성의 매력이 된 것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은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품고 있다. 에둘러 말하고, 넘겨짚고, 온갖 완곡어법을 동원하는 것은 여성의 주특기다. 프랑스의 여성학자 엘렌 식수는 말한다. 할 수 있다, 원한다, 말한다, 즐긴다! 이런 식의 모든 ‘향유’는 여성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여성에게 투표권도 발언권도 상속권도 없던 시대에,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고 싶어한 여성은 어떻게 되었을까. 원하는 것을 원한다 말하고, 싫은 것은 단호히 거부했던 여성의 삶은 평탄했을까.

조국을 배신하고 남편을 도왔다가 남편이 배신하자 자식까지 죽인 것으로 알려진 ‘희대의 악녀’ 메데이아, 눈만 쳐다봐도 모든 사람을 돌로 만들 수 있었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악한’ 존재 메두사. 팜 파탈의 대명사이자 악녀나 요부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 두 여성은 사실 그리스 신화에서 영웅이나 신들의 사랑을 받았던 다른 여성들 못지않게 매력만점인 아름다운 여성들이었다. 메두사가 아직 ‘인간’이었을 때 그녀는 너무 많은 남성의 구애를 받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고, 포세이돈과의 ‘세기의 로맨스’로 미네르바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메데이아는 주술과 마술을 총괄하는 강력한 여신 헤카테를 숭배하는 마법사로 명성을 떨쳤다. 단지 ‘제우스의 사랑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녀와는 차원이 다른 독자적인 매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두 여인. 그들은 어떻게 위협적인 마녀, 음란한 요부, 위험한 팜 파탈의 대명사로 굳어지게 되었을까.

너는 왜 이방인에 대한 사랑에 불타고 있는가? 왜 이방인과의 결혼을 꿈꾸고 있는가? 이 땅에도 사랑할 만한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데.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변신이야기’, 민음사, 284쪽.

황금양피를 찾으러 콜키스에 온 영웅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 메데이아. 그녀는 수많은 구혼자를 물리치고 낯선 이방인 이아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마법사인 메데이아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아손은 결코 아르고 원정대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메데이아는 그녀가 가진 모든 마법과 주술의 힘을 동원해 이아손을 돕고, 마침내 함께 조국을 떠난다. 메데이아가 부리는 각종 마술의 효험을 톡톡히 본 이아손은 이번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또 하나의 미션을 아예 대놓고 요구한다. 아버지의 생명을 연장해달라는 것이다. 메데이아는 군말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제의를 주관하고 마법을 동원해 죽음을 앞둔 시아버지를 무려 40년 전의 젊은 모습으로 되돌려놓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이아손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는’ 아내의 헌신적인 사랑에 권태를 느낀 것일까. 그녀를 배신하고 코린토스의 공주 글라우케와 결혼하고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이 누려온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온 메데이아는 광기와 복수심에 가득 차 두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메데이아의 라이프 스토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테세우스의 아버지인 아테네왕 아이게우스 1세와 결혼하기도 했고, 마침내 고향에 돌아와 빼앗긴 왕위를 되찾는 데 성공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그녀를 사랑에 눈이 멀어 광기 어린 복수를 자행한 여인으로 그렸지만, 이후 작가들의 수많은 패러디 속에서 메데이아는 주로 ‘남성의 지배에 길들지 않는, 최고로 다루기 힘든 악녀’로 자리 잡는다.

한편 포세이돈과 사랑에 빠진 아름다운 여인 메두사는 인간으로서 가장 끔찍한 형벌인 ‘신의 증오’를 받았다. 포세이돈을 짝사랑한 아테나의 질투를 받은 것이다. 아테네 신전에서 사랑을 나누던 포세이돈과 메두사의 모습을 발견한 아테나는 진노한다. 메두사는 특히 탐스럽고 아름다운 머릿결로 유명했는데, 아테나는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끔찍한 뱀으로 둔갑시키고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는 모든 사물은 돌이 되도록 하는 저주를 건다. 아테나의 사주를 받은 페르세우스는 메두사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거울이 달린 방패로 그의 동태를 엿보는 전략으로 메두사를 ‘처치’한다. 아테나는 방패에 메두사의 얼굴을 달아 연적(戀敵)의 얼굴을 적들을 죽이기 위한 ‘무기’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신화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수많은 작품 중 가장 익숙한 메두사의 모습은 바로 목이 잘린 참혹하고 괴기스러운 모습, 절멸해가는 악녀의 비참한 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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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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