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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괴짜들 ⑨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내 작업 공간은 염력(念力)과 영감으로 이뤄지는 4차원 세계”

  • 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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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 기라”

신들린 사진가 장국현

20여 년간 우리 산과 소나무를 찍어온 사진 작가 장국현씨

그는 1989년 백두산에 올랐다가 처음 영감의 세계를 접했다. 21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어제 일인 양 또렷이 떠올릴 수 있다. 대구에서 약사로 일하며 한창 사진의 재미에 빠져 있던 시절이다. 동호인 몇 명과 천지 사진을 찍으러 나선 참인데 안개가 자욱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홍콩을 거쳐 어렵게 온 길이 헛걸음 될까 싶어 하늘에 대고 기도를 했다.‘제발 천지 좀 보여주십시오’ 한마음뿐이었다.

“돌아보면 그게 바로 일념이었던 기라. 그게 얼마나 놀라운지 압니까. 산속을 몇 시간을 걸어도 계속 안개밭이었는데, 정상에 올라 내가 천지에 손을 딱 담그니까 하늘이 확 열리는 거예요.”

거짓말 같은 변화였다. 그의 오른쪽에 있던 미륵불상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왼편 천문봉 너머로 구름이 휘감겨 올라가는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천지, 그 푸른 물이 눈앞에 있었다. 장씨는 자신도 모르는 새 백두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살면서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강렬한 열망이 온몸을 타고 지나갔다. 이 순간을, 극치의 아름다움을 영원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거기 선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사진만 찍었습니다. 그러다 해가 져서 정신을 차리니 8시간이 지났다 카대요. 그 사이 안개가 끼었다 사라지고, 구름이 뭉쳤다 걷혔다 했지요. 한 장면이라도 놓칠까 싶어 숨도 크게 못 쉬었습니다.”



숙소에 돌아와선 밤새 울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눈물이 쏟아지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 여기서 죽어버리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었다. 이 여행 이후 오래지 않아 그는 약국 문을 닫았다. 스스로는 전문 사진작가, 남들 눈에는 천지에 미치고 산 사진에 미친 사람이 된 것이다.

영감과 몰입

“그때 이후로 묘한 현상이 나타났어요. 아침에 해 뜨는 걸 보고 있으면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깁니다. 백두산 천지가 생각나고 몸에서 뜨끈뜨끈 열이 나요. 내 피가 뜨거운 걸, 그게 온몸을 타고 돌아다니는 걸 생생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 집 둘째 놈이 고3이었는데, 차 태워서 학교 데려다주다 해 뜨는 거 보고 울어버린 게 여러 번입니다. 그러니 그놈이 나 보고 뭐라 했겠습니까. 아버지 이상하다 하지 않았겠어요.”

장씨가 사진에 입문한 건 1970년 무렵. 대구지역 일간지인 매일신문 사진부장을 스승 삼아 취미로 시작했다. 이듬해 바로 전국사진촬영대회에서 최고상을 받고 1980년과 81년, 홍콩사진작가협회가 주최한 국제콘테스트에서 연달아 최고상을 받을 만큼 소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저 취미일 뿐이었다. 일하다 틈나면 인물이나 생활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곤 했다. 백두산에 오르기 전까지, 그는 단 한 번도 자신 안에 이만큼의 열정과 광기가 있을 거라고 상상한 적이 없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을 때 가족들은 놀라고 주위 사람들도 당황했다. 오직 그만 행복했다.

“그때부터 17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백두산에 갔어요. 짧게는 20일, 길게는 2개월씩 먹고 자고 하면서 사진을 찍었지요.”

한국에 돌아오면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을 찾았다. 20㎏이 넘는 린호프 테크니카 카메라와 트라이포드, 후지 퀵로드 벨비아 필름 수십통을 배낭 가득 짊어진 채였다. 한번 산에 들어가면 필름이 떨어지기 전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았다.

▼ 요즘은 사진작가들도 디지털 카메라(디카)로 작업하지 않나요?

“저는 한 번도 디카를 쓴 적이 없어요. 인물 사진은 몰라도, 풍경 사진은 질감이나 표현력 면에서 확실히 떨어집니다. 무겁고 불편해도 정식으로 해야 깊은 사진이 나옵니다.”

그가 안방 장롱을 열어 카메라를 꺼내 보였다. 육중한 직사각형 몸체는 손으로 렌즈를 돌리고, 주름상자를 펼치거나 오므려 초점을 맞추게 돼 있다. 험한 촬영을 따라다니느라 그 사이 두 대가 고장 나고 이건 세 번째라고 했다. 이 카메라를 들고 심산유곡을 헤매기 위해 그는 다른 짐을 줄였다. 하루 세끼 식사는 청국장가루와 호두가루, 송홧가루를 물에 타서 훌훌 마시는 걸로 대신했다. 깊은 산중에서는 마실 물을 아끼느라 씻지도 않았다. ‘산짐승’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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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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