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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②

주제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

‘스페셜 원’ 시대 연 그라운드의 미중년 독설가

  • 하정민│동아일보 DBR 기자 dew@donga.com

주제 무리뉴 레알 마드리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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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년 후보 선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축구 감독이 됐다.
  •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 고(故) 바비 롭슨 경의 통역으로 출발한 그는 지금 유럽 3개국 리그 우승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각광받고 있다.
  • 스페인 명문 클럽 레알 마드리드를 이끄는 주제 무리뉴 감독. 그를 세계적 감독으로 만든 건 ‘이기는 축구’에 대한 통찰과 선수들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었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마라. 나는 단 하나의 특별한 존재(special one)다.” 할리우드 배우의 영화 대사가 아니다. 한 축구 감독이 스스로를 평가한 말이다.

인화(人和)와 리더십을 동일시할 때가 많은 동양권에서는 오만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이런 유형의 리더를 별로 반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발언의 주인공은 스스로를 ‘스페셜 원’이라고 지칭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는 이탈리아, 영국, 포르투갈 등 유럽 3개 리그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고, 모든 축구 감독의 염원인 트레블(Treble)도 달성했다. 바로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 주제 무리뉴(Jose Mourinho)다.

스타 선수 출신도 아니며 나이도 48세에 불과한 그가 현재까지 쌓은 커리어는 그야말로 화려하다. 3배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닌 트레블은 어떤 스포츠에서 한 팀이 3개 대회를 우승했다는 말이다. 프로 축구의 트레블은 한 클럽 팀이 동일 시즌에 자국 정규 리그, 자국 축구협회(FA·Football Associations) , 유럽 축구의 왕중왕전이라 할 수 있는 유럽 축구협회(UEFA·Union of European Football Associations) 챔피언스리그 이 3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일을 말한다.

1955년 UEFA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 후 공식적으로 트레블을 달성한 클럽은 불과 6개. 셀틱, 아약스, 아인트호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FC 바르셀로나, 인테르 밀란(영어식 표현 인터 밀란)뿐이다. 무리뉴 감독은 이 6개 팀 중 가장 근래에 트레블에 성공한 지도자다. 그는 2009~10 시즌 이탈리아의 인테르 밀란을 이끌고 이탈리아 클럽 팀으로는 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달성했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은 것 또한 트레블을 달성했기 때문임을 감안하면 트레블을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세계 축구계가 트레블의 권위를 얼마나 인정해주는지 잘 알 수 있다. 스타 선수가 워낙 많아 ‘지구 방위대’ ‘은하수 군단’ 등으로 불리는 레알 마드리드조차 아직 트레블을 달성하지 못했다. 레알 마드리드가 무리뉴를 감독으로 영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화려한 언변, 영화배우 뺨치는 외모, 아르마니 슈트와 회색 머플러를 착용하는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하다. 세계 축구 감독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감독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뉴스 메이커인 셈이다.

후보 선수에서 훌륭한 지도자로

주제 무리뉴는 1963년 포르투갈 세투발의 부유한 가정에서 축구 선수인 아버지 펠릭스와 초등학교 교사인 어머니 마리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펠릭스는 세투발을 연고로 하는 비토리아 데 세투발, 벨레넨세스 등의 클럽에서 활약한 골키퍼였다. 그의 삼촌 또한 세투발 스타디움 건립에 관여한 인물이었다. 축구인 집안에서 자란 덕에 무리뉴는 어려서부터 축구 경기장을 제집 드나들 듯했고, 세투발 유스 클럽에서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하지만 선수 무리뉴는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아버지가 코치로 일했던 히우 아베, 벨레넨세스, 세심브라 등의 클럽에서 센터백과 중앙 미드필더를 맡았지만 경기에서 뛴 적은 거의 없는 만년 후보 선수였다. 아버지와 같은 팀에서 뛸 때 당시 팀의 구단주가 그의 아버지 펠릭스에게 “실력 없는 선수를 아들이라고 기용해서는 안 된다”는 면박을 주기도 했다. 무리뉴는 결국 20대 초반에 은퇴를 결정했다.

하지만 현역 선수에서 물러나는 일이 축구와의 작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무리뉴는 자신이 선수보다 지도자로 더 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경영학을 전공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을 뒤로하고 리스본의 체육학교 ISEF에 입학했다. 체육과학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지도자 인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지도자로서 그의 잠재력은 아주 오래전부터 발휘됐다. 세투발 유스 팀에서 뛰던 청소년 시절, 그는 우연한 기회에 세투발이 상대할 클럽의 전력 분석을 위해 파견됐다. 전력 분석을 위해 그가 가져온 기록지와 분석표는 당시 세투발 코칭스태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10대 때부터 성인 지도자 못지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지녔던 무리뉴는 대학 졸업 후 몇몇 학교에서 체육 교사로 활동했다. 1989년 고향 친구인 마틸드와 결혼한 그는 1990년 친정인 세투발의 유스 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1992년 포르투갈의 명문 팀 스포르팅 리스본에 통역으로 부임한 그는 지도자 인생의 출발점을 맞이했다.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적인 감독인 고 바비 롭슨 경을 만난 것이다.

롭슨 감독은 무리뉴가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카탈로니아어(스페인 바르셀로나 지방의 토착 언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한다는 점에 매료됐다. 이에 무리뉴를 개인 통역으로 삼으며 항상 곁에 뒀다. 이후 롭슨은 세계 최고 수준의 클럽 팀인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당연히 무리뉴도 데려갔다. 무리뉴는 이곳에서 보조 코치로 일하며 상대 팀의 전술을 분석하는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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