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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⑭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조직관리의 새 이정표 제시한 ‘아름다운 축구’의 창시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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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유명 클럽 아스날에 과묵한 프랑스인 감독이 등장했다. 그는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전략 수립에 골몰하는 대신 선수들의 식단에서 적색 육류부터 없앴다. 선수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찐 생선과 삶은 채소 위주의 식단을 밀어붙이고 커피의 설탕 양까지 일일이 점검했다. 또 경쟁 구단이 엄청난 돈을 들여 다른 팀의 비싼 선수들을 영입할 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유망주들을 발굴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다. 이 감독은 100년이 넘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전대미문의 ‘49연승’은 물론 ‘시즌 무패 우승’까지 달성하며 아스날을 세계 축구계의 대표 구단으로 만들었다. 바로 아르센 벵거 감독이다.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주변국과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가 어디 있으랴만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사에서도 유례가 없는 앙숙이다. 각각 섬(영국)과 대륙(프랑스)을 대표하는 두 나라는 환경, 기후, 역사, 국민성, 행동 양식, 생활 습관이 확연하게 다르다. 영국인은 프랑스인이 옷과 음식만 중시한다고 비판하고, 프랑스인은 영국 음식과 날씨는 세계 최악이라며 조롱한다. 이런 상황에서 1996년 영국 프리미어리그(EPL)의 명문 구단 아스날에 과묵한 프랑스인 아르센 벵거(63)가 감독으로 부임했다. 1886년 창단한 아스날이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 건 110년 만으로 최초였지만 그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축구의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영국 축구계는 그를 대놓고 무시했다. 벵거가 무명 선수 출신인데다 세계 3대 프로 축구 리그인 영국 프리미어리그,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이탈리아 세리에리가 등에서 유명 구단의 감독을 지내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과 달리 EPL 내에 외국인 감독 자체가 거의 없었던 터라 아스날 선수들도 팬들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영국 언론은 거의 매일 “아르센이 누구?(Arsene Who?)”라는 제목을 단 기사를 내보냈다. 아스날의 감독이 되기 직전 벵거는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의 감독을 지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1990년대 중반 당시 영국 축구계가 아시아 축구계를 보는 시선은 미국 메이저리그의 유명 야구팀 감독이 마이너리그의 싱글A 팀 감독을 보는 시선과 비슷했다. “당신은 우리가 노는 물에 낄 자격조차 안 된다”는 싸늘한 시선 말이다. 그때도 지금도 EPL의 최고 구단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고 있는 독설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벵거를 대놓고 비웃었다. “일본에서 온 사람이 영국 축구에 대해 무엇을 안단 말인가?” 팀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벵거가 오기 전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조지 그레이엄 전 감독은 9년간 7개의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불명예 사퇴했다. 이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일부 선수의 술과 코카인 중독, 체계적인 선수관리 실종, 구단의 엄격하지 못한 대처 등으로 인해 선수단 전체의 기강이 극도로 해이해져 있었다. 당연히 성적도 나빴다. 이런 상황에서 부임한 풋내기 감독의 행보는 다소 야릇했다. 영국인이 보기에 프랑스리그는 프리미어리그보다 몇 단계 낮은 리그였지만 그는 AS 모나코 감독으로 일하던 시절부터 “영국 축구는 훈련 방식에 문제가 있다. 그래서 진화 속도가 더딘 것 같다. 경기가 끝난 후 감독은 선수들이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냥 쉬게 내버려둔다”라며 영국 축구의 우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벵거는 선수단을 파악하고 전략 및 전술 훈련을 하기도 바쁜 시간에 선수단의 식단까지 직접 짰다. 영국인들이 보기에 이는 영양사가 할 일이지 감독이 할 일이 아니었다. 벵거는 개의치 않았다. “영국 사람들은 고기를 너무 많이 먹고 채소는 지나치게 조금 먹는다”라는 말과 함께. 영국 축구계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하지만 벵거는 우수한 성적으로 이 모든 비판과 우려를 잠재웠다. 부임 첫해인 1996∼97년 시즌에 그는 아스날을 리그 3위 팀으로 올려놨다. 1997∼98년 시즌에는 강력한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2003~04년에는 아직까지 깨지지 않은 기록인 ‘49경기 무패’도 이뤄냈다. 벵거가 누구냐며 무시하던 영국 언론들은 그가 ‘프랑스발(發) 혁명(French Revolution)’을 이뤄냈다며 그를 영국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앉혀야 한다고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정부까지 동참했다. 2003년 영국 정부는 그에게 외국인 대상 명예 훈장인 OBE 훈장을 수여했다. 아스날이 2004~05년 시즌 FA컵 우승 이후 6시즌 넘게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하면서 “벵거의 리더십이 한물간 것 아니냐”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특히 프랑스리그에서 주전으로 뛰던 박주영을 영입한 후 벤치에만 앉혀두는 바람에 한국 축구팬들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차갑다. 하지만 최근의 이런저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벵거가 위대한 축구 지도자이며,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그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명문 구단을 만들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아르센 벵거는 누구인가

아르센 벵거 아스날 감독
아르센 벵거는 1949년 프랑스 알자스 지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에서 자동차 부품업과 요식업을 겸업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알자스 지방은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에 있다. 교과서에 등장해 한국인이 너무나 잘 아는 소설 ‘마지막 수업’에도 나오듯 이곳은 한때 독일 영토였다. 이 때문에 알자스 사람들은 프랑스 프로축구는 물론 독일 프로축구(분데스리가)에도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소년 벵거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시절 벵거는 프랑스 프로축구 클럽보다 바이에른 뮌헨, 보르시아 도르트문트 등 분데스리가 클럽을 더 좋아했다. 그가 분데스리가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속도감 있는 경기 전개와 선수들의 왕성한 운동량 때문이었다. 당시 그가 흠모한 축구 영웅도 독일의 축구황제 프란츠 베켄바우어였다. 벵거의 부모는 그가 가업을 이어받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부모의 레스토랑 및 바에서 술꾼들을 자주 접한 벵거는 술이라면 질색하는 성격이었다. 이는 그가 아스날에 부임하자마자 당시 EPL의 관행을 깨고 선수들에게 맥주 금지령을 내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벵거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AZ 뮈치크의 감독 맥스 힐트다. 당시 더틀렌하임에서 뛰고 있던 10대 소년 벵거는 더틀렌하임과 AZ 뮈치크의 경기에서 맥스 힐트의 눈에 들었다. 영민한 플레이를 하는 벵거를 눈여겨본 힐트 감독은 그에게 자신의 밑으로 오라고 제의했고 다음해 벵거는 AZ 뮈치크의 선수가 됐다.

힐트 감독 밑에서 벵거의 축구 실력은 꾸준한 향상을 보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벵거는 다른 축구 선수들과 여러 면에서 다른 행보를 보였다. 벵거는 축구장 안에 자신의 인생을 올인하지 않았다. 지금과 달리 당시 유소년 축구 선수들은 축구와 학업을 병행하지 않았다. 반면 벵거는 유달리 학구열이 높았고 외국어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독일어와 영어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수준으로 유창하게 구사했고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도 상당한 실력을 뽐냈다.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도 땄다. 벵거의 별명이 ‘교수’인 이유다. 그러나 축구 선수 벵거의 재능은 곧 한계를 드러냈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 눈은 탁월했지만 스피드와 파워가 부족했다. 주 포지션인 스위퍼를 지키지 못하고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거나 벤치를 지키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선수 생활을 이어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고민하던 시점에 힐트 감독이 그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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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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