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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in Sports 19

토미 아마커 하버드대 농구팀 감독

꼴찌 하버드 최고팀 만든 뚝심의 지도자

  • 하정민│동아일보 경제부 기자 dew@donga.com

토미 아마커 하버드대 농구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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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 대학농구에서 만년 하위 팀이던 하버드대 농구팀이 올해 3월 그간 꿈으로만 여기던 미국 대학농구(NCAA) 챔피언십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지난 66년간 한번도 이루지 못하던 NCAA 챔피언십 토너먼트 진출을 이끈 이는 3년 전 사령탑을 맡은 흑인 감독 토미 아마커다. 농구 명문으로 유명한 미국 듀크대의 포인트가드 출신인 그는 하버드대 농구팀을 맡아 원칙주의와 고강도 훈련으로 꼴찌 팀의 체질을 싹 바꿔놓았다. 아마커 감독은 올해 미국 프로농구(NBA)에 황색 돌풍을 일으킨 대만계 미국인 제레미 린을 휘하에 두고 그의 소질을 계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토미 아마커 하버드대 농구팀 감독

만년 약체였던 하버드대 농구팀의 돌풍을 이끌고 있는 토미 아마커(왼쪽) 감독이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하버드대와 꼴찌라는 단어만큼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뭐래도 하버드대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대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 세계에서는 다르다. 스탠퍼드대, 듀크대 등 미국 내 다른 명문대와 달리 하버드대에는 스포츠 장학금이 없다. 당연히 스포츠팀 선수들의 기량도 다른 대학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일부 운동 유망주가 바늘귀보다 좁은 입학 관문을 뚫고 하버드대에 들어가더라도 하버드대의 까다로운 학사 과정을 밟아가며 엘리트 운동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하버드대는 오랫동안 미국 대학농구(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에서 꼴찌 팀이라는 오명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올해 3월 세계 농구계를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소식이 전해졌다. 하버드대가 1946년 이후 무려 66년 만에 ‘3월의 광란’으로 불리는 미국 대학농구 ‘NCAA 챔피언십’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NCAA에는 65개 팀이 출전할 수 있다. 언뜻 대단치 않아 보이는 성과지만 다른 대학의 농구 팀이 사실상 프로 입단을 앞둔 선수로 이뤄져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아마추어가 프로팀과 겨루는 무대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골프로 치자면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하지도 못한 아마추어 골퍼가 PGA 투어 대회에서 톱10의 성적을 낸 것과 마찬가지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버드대는 올해 미국 동부지역의 8개 명문대학을 지칭하는 ‘아이비리그’ 농구팀 대전에서 지난해 공동 우승에 이어 올해는 단독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2연패까지 달성했다. 하버드대가 남자농구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하버드의 34개 운동종목 중 유일하게 남자농구팀만 아이비리그 우승을 하지 못했다. 운동선수 장학금제도가 없어 사실상 아마추어 팀이나 다름없는 하버드대에서 이런 기적이 일어난 이유가 뭘까. 바로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들이 코트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한 명장이자 이 학교 최초의 흑인 감독인 토미 아마커(48)가 있기 때문이다.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아이비리그에서 흑인 감독인 그가 일궈낸 성공 비결을 분석해보자.

어릴 때부터 농구 재능이 남달랐던 토미 아마커는 1965년 미국의 행정수도 워싱턴 DC와 가까운 버지니아 주의 폴스처치에서 태어났다. 이 지역 고등학교의 영어교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농구에 두각을 나타낸 아들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아마커는 1988년 듀크대 졸업 후 프로 진출 대신 곧바로 지도자 생활을 택했다. 그는 모교인 듀크대에서 자신을 키운 은사(恩師) 마이크 슈셉스키(Mike Krzyzewski) 듀크대 감독 밑에서 코치를 맡기로 했다. 슈셉스키 감독은 1980년부터 무려 32년간 듀크대 감독으로 재임하며 듀크대를 미국 대학농구의 최고봉으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슈셉스키 밑에서 차근차근 지도자 수업을 받은 그는 1997년 뉴저지 주 시튼홀대학의 감독으로 본격적인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튼홀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아마커는 2001년 농구 명문인 미시간대 감독으로 뽑혀 미국 농구계의 명장으로 도약할 채비를 갖췄다. 하지만 성적 부진으로 2007년 경질되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제의한 곳이 바로 하버드대였다.

공부와 농구, 두 마리 토끼 잡기

아마커가 처음 하버드대로 가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이 모두 말렸다. 앞서 언급한 대로 듀크대나 미시간대와 달리 하버드대 농구팀은 아마추어 수준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친구들은 “하버드대에도 농구팀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실상은 더 나빴다. 아마커가 하버드대에 부임했을 때 선수들의 실력은 들쑥날쑥했고 고참 선수들은 사실상 태업에 가까운 불성실한 훈련 태도를 보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실력 있는 유망주가 들어온다 해도 주전으로 뽑히기가 어려웠다. 아마커는 오직 실력으로만 선수를 기용하는 원칙주의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꼈다. 그는 농구팀을 대대적으로 쇄신하기 위해 고학년 대신 저학년 중심으로 팀을 꾸렸다. 고학년 선수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버드대 학생들은 농구를 못한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유례없이 강도 높은 훈련 프로그램도 실행했다. 훈련시간을 2배로 늘려 선수들의 입에서 저절로 단내가 나도록 했다. 가능성 있는 선수를 찾아나서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스포츠 장학금이 없는 하버드대에서 그가 홀로 유망주를 발굴하려고 몸을 사리지 않다보니 문제까지 발생했다. 아마커는 2008년 NCAA의 선수 스카우트 관련 규칙 위반으로 구설에 휘말렸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는 곤욕도 치렀다. 부임 초 학업 부담을 느끼며 반발했던 선수들도 ‘공부와 농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며 독려하는 아마커 감독의 말에 자신감을 얻으며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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