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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 릴레이 강연 |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다’ ④ 이덕일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 벗어나 대한민국 정신세계 새로 구축해야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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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한국의 역사와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왜곡된 시발점은 인조반정이다. 조선 왕은 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논리.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할 때까지 조선의 정치를 주물렀던 노론의 세계관이었다. 그것이 일제 식민사관으로 이어지면서 역사가 왜곡되고 대한민국의 주체성이 말살됐다. 이덕일 소장의 강연은 8월23일 오후 7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됐다.<편집자>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
오늘 드릴 말씀은 조선 후기 정치사의 현재적 의의입니다. 조선 후기사에서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중요한 사건입니다. 인조반정은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건입니다. 우리에게 지금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로는 인조반정이 있고 그 다음에 일제강점기가 있고, 6·25전쟁이 있다고 꼽을 수 있겠죠.

인조반정이 뭡니까? 신하들이 광해군을 내쫓은 겁니다. 그런데 이 신하들이 모두 유학자예요. 유학의 기본을 두 자로 표현하면 효(孝)와 충(忠)입니다. 충효가 아니라 효가 먼저고 다음이 충입니다. 그래서 효자 집안에 충신 난다고 말하는 겁니다. 집에서 효도하는 자세로 공직에 복무하라는 겁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사람이 나라에는 충성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겠죠. 효와 충을 목숨처럼 여겨야 할 유학자들이 국왕을 내쫓으려고 하다보니까 명분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 명분이 뭐냐? 우리의 임금은 명나라 황제라는 것입니다. 조선 왕은 신하인 제후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국왕과 우리 사대부는 같은 계급이라는 얘기입니다. 인조반정이 외교정책을 명분으로 삼은 것은 모두 여기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중원의 패권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가는데 조선에서 그 사태를 주도하지 못할 바에는 이긴 쪽과 외교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명과 청 두 나라를 연구해보면 재미있는 게 아주 많아요. 명나라는 대대로 무능한 황제가 계속 즉위합니다. 그래서 환관(宦官)정치가 득세하지요.

광해군의 중립외교에 반기

반면 인구가 한족의 100분의 1도 안되는 만주족의 청나라는 통치기술에 관한 한 대단한 노하우를 갖고 있습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말하는 열하(熱河)는 지금 허베이(河北)성 북쪽의 청더(承德)이라는 곳인데 여기에 청나라 황제들이 피서 산장을 지어놓고 매년 갔습니다. 열하에 가서 사냥을 하는데 사냥이라는 게 군사훈련입니다.

청나라는 잠시라도 방심하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후계자를 선출할 때도 태자를 미리 결정하지 않습니다. 태자밀건법입니다. 자금성의 황제 집무실에 ‘광명정대(光明正大)’라는 글귀가 쓰인 액자가 있는데 그 액자 뒤에 자기가 죽으면 황제가 될 사람의 이름을 써놓습니다. 그리고 내부에도 하나 있어서 황제가 세상 떠난 다음에 두 개를 맞춰봐서 즉위하는 겁니다. 여러 황자에게 다 기회가 있는 겁니다. 장남이라고 무조건 차기 황제가 되는 게 아니라 모든 황자에게 기회가 있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인조반정은 정권에서 소외된 율곡 이이의 제자들인 서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겁니다. 명분이 숭명반청(崇明反淸)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광해군의 중립 외교정책을 확 바꿔서 후금(청)을 적대시했습니다. 그러자 청나라에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일으킵니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다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전쟁이에요. 인조반정을 일으킨 지배층이 초래한 겁니다. 후금 입장에서는 산해관을 건너서 중원에 들어가기 전에 조선 문제를 정리해야 합니다. 그냥 들어갔다가 조선이 치고 올라오면 전선이 두 개가 되지 않습니까?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조선을 먼저 공격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과 만주족(여진족)은 원래 같은 민족이에요. 중국에서 바라볼 때 동이족이라고 불렀던 같은 민족입니다. 우리뿐 아니라 만주, 거란, 숙신 다 같은 민족이에요. 수나라가 통일하고 나서 모욕적인 국서를 보내니까 영양왕이 말갈병사 만 명을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서 수나라를 먼저 공격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중국을 선제공격하는 거예요. 말갈이 후에 이르면 여진족, 만주족이 되는데 이때 영양왕이 말갈병사 만 명을 거느리고 갈 때 통역병을 데리고 갔겠어요? 안 데리고 갔겠어요? 만주어와 우리말은 같은 언어예요. 서로 통하는 겁니다. 옛날 독립운동가들 이야기로는 만주인과 우리 민족은 같은 집에서 생활하면 6개월이나 1년 지나면 의사소통이 다 된다고 그랬어요.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들입니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유학자들이 만주족을 오랑캐로 보게 되죠.

말로만 북벌

우리를 단일민족이라고 하는데 여러분이 알고 있는 개념과는 전혀 다른 구조입니다. 우리 민족은 원래 동이족이에요. 그런데 단일민족론이 뭐냐 하면 조선 후기 유학자들이 말갈, 거란, 숙신을 전부 다 오랑캐로 내몰고 우리는 중국인이라고 주장한 겁니다. 그래서 ‘소중화(小中華)’ ‘우리는 작은 중국인이다’라는 것이 단일민족론이에요. 그 시초가 인조반정을 일으킨 사람들이 만든 개념입니다.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로 광해군을 내쫓고 나니까 정묘·병자호란이 일어나고 변변한 싸움 한 번 못해보고 항복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조선 후기의 이중성이 시작되는데, 이상으로는 망한 명나라를 섬기지만 현실적으로는 매년 청나라에 조공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북벌(北伐)을 소리 높여서 주창합니다. 문제는 실제 북벌할 마음이 있느냐는 겁니다. 효종 임금이 실제로 북벌을 하려고 하니까 이들이 반대하고 나오는 겁니다. 말로는 북벌을 주창하면서 실제로 북벌하려면 발목 잡는 겁니다. 북벌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국방비를 늘려야죠. 그런데 이들은 국방비를 줄이고 복지예산을 늘려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입으로는 북벌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북벌과는 거꾸로 가는 거죠.

제가 아까 인조반정을 주도한 사람들은 조선 임금은 자신들과 같은 사대부로 본다고 그랬죠. 사대부 중의 제일사대부로 보는 겁니다. 여기서 바로 예송논쟁이 나왔습니다. 예송논쟁이 간단한 논리가 아닙니다. 효종, 즉 국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자의대비 조씨가 상복을 3년 입어야 하느냐, 1년 입어야 하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논쟁이 발생하지요. 부모가 먼저 세상 떠나면 자식은 3년복을 입습니다.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장남일 경우에는 부모가 3년복을 입고, 차남 이하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1년복을 입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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