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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창간 80주년 기념 릴레이 강연 | ‘한국 지성에게 미래를 묻다’ ⑥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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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명박 정부의 역사적 소명은 사회 민주화다. 사회 민주화는 곧 사회정의 실현이다. 그래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넘어갈 수 있다. 선진국에선 1만달러 시대에 겪었던 사회 민주화의 진통을 우리는 뒤늦게 치르고 있다. 초인주의와 같은 안철수 현상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사회정의가 실현되려면 개인의 의무와 시민적 미덕, 공공선이라는 공공철학이 정립돼야 한다. 한국 사회학계의 거두 송호근 교수의 강연은 10월28일 오후 7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편집자>
한국의 공공철학과 사회정의
엊그제(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일) 여러분께서 경험을 하셨겠지만, 마음속에서 ‘정의가 과연 뭘까. 내가 표를 찍어서 사회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참 고민하다가 오후 6시쯤에 연구실을 나설 때까지도 결심을 못 했습니다. 참 고민이 많았습니다. 앞으로 누가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게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딜레마에 빠졌어요. 다 장단점이 있고. 그래서 7시50분에 투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문을 닫는 순간 제가 찍고 나왔는데 젊은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판세는 짐작했습니다. 대강 이렇게 되겠구나 하고.

저는 사실은요, 개인적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어요. 제가 베이비붐 세대의 초입에 있는데요. 베이비붐 세대가 한국 사회의 권력과 재산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젊은 세대에 여유 공간을 주지 못할까. 여유 있는 삶을 주지 못할까. 상당히 괴로웠습니다.

유신시대가 막 시작될 때 제가 대학에 들어갔거든요. 그때 박원순 시장도 같이 들어갔어요, 사회계열에. 박 시장은 그해 5월에 제적됐는데, 왜 제적이 됐는지도 모를 거예요. 전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모행렬 맨 뒤에 있었거든요, 제가. 이 데모를 따라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친구하고 토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토론하는 사이에 데모대가 다 나가버렸어요. 박 시장은 그때 아마 사진이 찍혔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적된 겁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냈고 1980년대 초에는 대한민국을 위해 청춘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나의 미래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 내가 뭘 해야 될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직업을 택할 것인가. 또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아니었어요. 내가 강남에 가서 땅을 살까 말까. 이게 아니었거든요. 먹는 거에도 관심이 없었고요, 이른바 출세하는 것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한국 사회를 위해서 내 청춘을 바치겠다. 그렇게 1980년대, 90년대를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7시50분에 투표하면서 누구를 찍을 건지 망설였는데 뒤에서 젊은이 눈길이 느껴지더라고요. 빨리 좀 비켜 달라. 내가 응징하기 위해 투표장에 왔는데 왜 당신이 앞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이런 느낌이 막 들더라고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내가 베이비붐 세대를 이끄는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젊은 사람들한테 왜 길을 못 내줬는지 참 괴로웠습니다. 바로 이 문제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핵심 문제이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 문제를 포함해서 제가 지금 얘기하고자 하는 사회정의는 포괄적 개념이죠. 같이 가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가치를 공유할 것인가.

지금까지 보건대 이 공유의 가치를 저희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내지 못한 게 사실이에요. 서로 다툼이 일어날 때 되돌아 서서 여기서 다시 출발합시다, 우리 이건 합의했으니까 여기부터 다시 출발합시다, 라고 했을 때 우리 베이비붐 세대 안에서도 상당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조선은 세계 최고의 문의 나라

우리나라는 문(文)의 전통이 세계적으로 강한 나라입니다. 조선은 세계 최고의 문의 나라입니다. 문은 무시무시한 인격이고 존재고 명분이고 정통성이에요. 지식과 권력이, 학문과 권력이 하나 된 나라로서, 그걸 지식 국가라고 하면 이런 지식국가가 세계 역사에 없어요. 이건 조선의 독자적인 특성입니다.

그래서 사대부(士大夫)의 나라라고 얘기하잖아요. 사(士)는 들어가는 사죠. 들어가면 사고 나오면 대부(大夫)다. 나오라는 말은 벼슬하라는 얘기예요. 들어가서 공부하고 나와서 벼슬하고 통치하고 통치하다가 모자란 게 있으면 다시 들어가서 공부하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서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다고 하잖아요. 83%까지 됩니다. 이런 현상은 일어날 수가 없거든요. 설명해봐라, 이거 어떻게 된 거냐? 우리나라 사람 DNA 속에 그냥 배우고자 하는 욕심이 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틀리진 않아요. 그런데 배우고자 하는 DNA를 생물학적으로 찾을 수 없잖아요. 사실은 역사적으로 유증(遺贈)된 겁니다. 문과 권력, 지식의 통치가 되는 나라기 때문에 저절로 우리는 교육에 투자를 하죠. 스스로 배우고자 노력을 많이 합니다. 그런 부분은 자기 자신에 대한 통치이기도 하고 사회에 대한 통치이기도 하죠.

사는 양반이라는 뜻이 아니고 조선의 정신 속에 저런 인격체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얘기입니다. 사는 그래서 항상 정의를 말해요. 이게 이제 고통스럽죠. 예전부터 사회정의를 찾는 사의 노력, 지식인의 노력 또는 시민의 노력이 줄곧 있어왔음에도 왜 우리에게는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적은지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분, 아마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책을 보셨을 겁니다. 그 책에 결론이 없어요. 왜냐하면 해야 될 얘기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래요. 사회정의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논의되는 개념이에요. 논쟁이 되고 있는 개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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