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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알리의 전쟁 ③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팍스 아메리카나의 실상을 관통하는 대서사

  • 안병찬│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언론인권센터명예이사장 ann-bc@daum.net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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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인 챔피언인 떠버리 클레이는 왜 흑인 인권조직 ‘이슬람민족’에 가담하는가. 그가 정체성을 자각한 동기는 무엇인가. 양심적 입대 거부로 사나운 백인 독수리 엉클 샘, 곧 아메리카를 상대로 전면 전쟁을 시작한 무하마드 알리. 그는 왜 같은 검둥이인 ‘엉클 톰’을 경멸하는가. “나는 흑인이 자랑스럽다”고 포효하는 알리.
3장/ 엉클 샘과 엉클 톰

1. 흑인 인권조직 ‘이슬람 민족’

“베트콩은 날 검둥이라고 안 불렀소!”
1961년 캐시어스 클레이는 마이애미에 있는 회교사원(모스크)을 처음으로 방문해 ‘이슬람 민족’ 대변인 말콤 엑스(X)를 만난다. 클레이는 “사원에서 생전 처음으로 진정한 정신적 영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말콤 엑스는 그 후 한동안 알리의 고문 역할을 맡았다.

1962년 클레이는 ‘이슬람 민족’의 교주 엘리야 무하마드가 연설하는 것을 들었다. ‘이슬람 민족(원명 네이션 오브 이슬람)’은 이슬람교에 입각한 미국 내의 흑인해방조직이다. 흑인민족주의, 흑백분리주의를 기반으로 뭉쳐 종교운동과 동시에 사회운동을 폈다. 이슬람 민족운동, 또는 블랙 무슬림운동이라고도 불렀다.

1930년에 월러스 파드 무하마드(1877~1934)가 미국 흑인의 영혼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조건을 회복한다는 목적을 내세워 이 운동을 조직했다. 클레이가 가입한 1962년은 ‘이슬람 민족’이 제2대 교주 엘리야 무하마드(1897~1975)를 중심으로 크게 영향력을 떨칠 때였다.

영국 작가 마이크 마커시는 저서 ‘보상의 노래-알리와 60년대 정신’(번역서 제목: 알리, 아메리카를 쏘다)에서 ‘이슬람 민족’ 조직은 미국식 소수 종교집단의 전형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단은 미국 문화의 산물이면서 미국을 사악한 존재라고 규탄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상징은 초승달로서 이슬람·자유·평등·평화를 숭상한다고 했다.

훗날 무하마드 알리는 흑백 인종 간의 결혼에 대해 자기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지성이 있고 올바른 정신을 가진 흑인이라면 자기 흑인 아들이나 딸이 백인 소년 소녀와 결혼하려는 것을 어느 누가 원하겠는가.”

알리는 ‘인종차별 폐지론’을 두고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우리는 엘리야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따른다. 따라서 우리는 인종차별을 폐지한다는 말에 찬성할 수 없다. 인종차별 폐지론은 틀린 것이다. 우리는 백인과 함께 살고 싶지 않고 따로 살고 싶다. 차별 폐지론은 필요가 없다.”

/ “백인은 사탄이다” /

흑인 민권운동 진영은 아프리카 흑인의 문화적 유산에 대한 자각과 자부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인종차별 폐지를 흑인 포섭의 수단으로 보았다.

미국은 인종차별이 심했다. 남북전쟁 때 남군이 사용한 남부연합기의 상징은 남십자성 문양이다. 미시시피 주는 미국에서 ‘깊은 남부(딥 사우스)’라고 부르는 곳으로, 2001년에 주기(州旗)에서 남십자성 문양을 제거하자는 제안을 부결하며 흑백차별을 고수했다. 남북전쟁을 치르고 150년이 지났어도 흑백차별 문제는 미국 땅에 뿌리 깊게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슬람 민족’에 가입한 1964년, 그는 태어났을 때 받은 노예의 이름 캐시어스 클레이를 버리고 이슬람식 이름인 무하마드 알리로 바꾼다. 그가 정통 이슬람교도가 된 것은 킨샤사에서 ‘정글의 혈전’을 치른 이듬해인 1975년이다. 알리는 “백인은 사탄이고 정의롭지 않다”는 종교적 믿음을 가졌다. 그는 백인이 흑인을 증오한다고 생각했다.

2. “덤벼 아메리카! 덤벼 흰 가면 검둥이!”

앞 장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무패 기록으로 승승장구하던 클레이는 1964년 2월25일 황소 투사인 챔피언 소니 리스튼과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격돌한다. 세계권투협회(WBA)와 세계권투평의회(WBC)의 통합 선수권을 건 첫 대결이었다. 클레이가 소니 리스튼을 이길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리스튼이 7대1의 비율로 우세하다고 점쳤다.

경기를 앞두고 클레이는 리스튼을 향해 “덩치만 큰 못난 곰”이라고 조롱했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유명한 말을 던진 것도 이때였다. 그는 리스튼을 랩으로 야유했다.

소니 리스튼은 빈탕이야. 그자는 말할 줄도 몰라. 그자는 싸울 줄도 몰라. 그자는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해. 그자는 복싱 실습을 받아야 해. 그자는 나와 싸우기로 했으니까 쓰러지는 법을 배워야 해.

리스튼은 클레이를 허풍쟁이라고 여기고 클레이의 실력을 과소평가했다. 계체량 때 클레이의 맥박수가 평소의 54보다 두 배가 넘는 120으로 나온 것을 보고, 클레이가 겁쟁이라고 여겨 단 한 방에 넉 아웃시킬 수 있다고 지나치게 자신했다.

대전이 시작되자 클레이는 빠른 발과 긴 팔을 이용해 리스튼의 강력한 주먹을 피했다. 3라운드에서 리스튼은 눈 밑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6라운드에서 클레이는 번개같이 빠른 주먹으로 리스튼을 압도했다. 결국 리스튼은 7라운드 벨 소리를 듣고도 일어나지 못한 채 티케이오(TKO) 패를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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