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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장 ⑫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전통 비례미와 사대부 정신 담는 小木匠 박명배

  • 한경심│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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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내 가구와 기물을 만드는 소목장 박명배(朴明培·61)의 출발은 서양 목공예였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전통 가구의 정신을 충실히 잇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다. 그가 말하는 우리 전통 가구의 정수는 지나친 장식을 배제하고 나무 자체의 자연미를 최대한 살린 조선시대 사랑방 가구다. 사랑방의 주인이었던 사대부의 고고한 기품과 풍류를 담은 가구를 만들어내는 박명배 명장의 세 번째 전시회가 최근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 그는 자연과 장인의 솜씨가 어우러진 예술작품을 선보였다.
“자연 닮고자 했던 사랑방 주인의 마음으로 우리 가구 만듭니다”
박명배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하나같이 ‘현대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가 만든 전통 가구는 현대 이탈리아 가구처럼 간결하고 세련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소름 끼칠 정도로 정갈한 그의 사방탁자를 본 사람이라면 미니멀리즘을 동양적으로 해석한 ‘젠(禪)’스타일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그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조선시대 사대부’ 스타일이다.

“우리 전통 가구의 정신을 가장 잘 담은 가구를 고르라면, 역시 사랑방 가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으니까요. 우리 가구에는 안방 가구든 사랑방 가구든 모두 소박하되 초라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은 품격 있는 삶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아름다운 목리(木理)와 간결한 선의 조화

그가 만든 가구가 단순하고 절제된 선과 형태를 보인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단순하고 엄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화장판(가구 앞면을 차지하는 장식면)으로 고른 나무의 재질을 보면 다른 어떤 소목의 작품보다 화려하고 아름답다. 목수들은 모두 무늬가 아름다운 나무를 사랑하지만 특히 그는 오묘한 문양을 지닌 귀한 느티나무 용목을 많이 쓴다. ‘목수에게 용목이 없으면 속 빈 강정’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만큼 화려한 무늬의 용목을 그는 사랑하고, 꼭 용목이 아니어도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아름다운 나뭇결(목리·木理)이 잘 살아 있다.

“왜 목리에 집착하느냐고요? 목리는 자연 그대로잖습니까.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보다 싫증이 안 나겠지요. 특히 우리 가구는 조각이나 장식도 하지 않고 목리 자체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때문에, 목리를 잘 살리는 것이 아주 중요하지요.”

그러므로 목리를 어떻게 아름답게 표현하느냐 하는 것이 목수의 안목이요 솜씨가 된다. 전통 가구의 틀이 비록 정해져 있다 해도 이 목리는 하나도 같은 것이 없기에, 그 목리를 선택하고 표현하는 데 따라 오히려 목수의 개성이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전통 가구다.

그의 개성은 화사하고 아름다운 목리와 간결한 선에 있는 것 같다. 그의 가구는 유독 밝고 환한 색이고, 화장판의 무늬는 모두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잔잔하며 때로 무척 화려하다. 그런데 그 화려함은 아주 단정한 선 안에 들어 있다. 절제된 선(線) 속에 담긴 화려함. 사람들이 그의 작품에 감탄하고 때로 신비감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화려함과 절제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졌기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은 화려해서 절제미가 더 돋보이고, 절제되어 있어 화려함이 더욱 빛나는 역설(逆說)을 담고 있다. 그 역설이 주는 오묘한 아름다움의 원천은 무엇일까.

“바로 자연이죠.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인위적인 것을 멀리하고 늘 자연을 닮으려고 했잖습니까. 사람의 기술과 치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자연을 따라가지 못하듯 가구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살리려다보니 이런 형태가 된 것이지요.”

그렇다. 그의 작품은 꼬장꼬장한 기골에 가슴으로는 풍류를 사랑했던 조선의 선비와 닮았다.

미대 교수 공방서 목공 기초 닦아

목수로서 그의 출발은 여느 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할 형편이 못 되었던 그는 마을 서당에도 좀 다니고 비정규 학교에도 기웃거리면서 집에서 농사를 돕고 지냈다.

“열여덟 살쯤 되고 보니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서울에 올라와 삼촌 댁에 머물다 목수인 인척 형의 권유와 소개로 공방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 대목부터 그의 목공 인생은 여느 목수와는 조금 다른 경로를 거치는데, 그때 들어간 곳은 가구점이 아니라 당시 서라벌예대 최희권 교수의 개인 공방이었던 ‘오뉘(오누이) 아틀리에’였다. 그는 이곳에서 최 교수와 대학생들의 작품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게 된다. 상업적으로 제작해 파는 가구가 아니라 목공예 ‘작품’을 먼저 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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