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천부적인 슛의 달인

  • 장원재 축구평론가|drjang12@gmail.com

    입력2012-04-20 11: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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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선수가 얼마나 대단했느냐면 말야, 코너킥을 차고 나서 공이 날아오는 동안에 막 뛰어와 가지고 그걸 자기가 헤딩으로 골도 넣고 그랬다니까. 아 진짜야. 이 사람아, 내가 그 경기를 직접 뛰었는데…. 아 내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 그러네…. 1954년 월드컵에 참가했던 한 원로 축구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신생국 한국은 사상 처음 진출한 월드컵 본선 첫 경기에서 세계 최강 헝가리에 0-9로 참패했다. ‘그 선수’란 1950년대 당대 제일의 공격수 푸스카스를 말한다. 헝가리는 당시 자타공인 우승후보 0순위였고, 1954년 월드컵 결승 대 서독전 2-3 패배가 3년 반 만에 당한 첫 번째 패전이었을 만큼 무적의 팀이었다. 14일 전 벌어진 예선에서는 헝가리가 서독을 8-3으로 꺾었었다.
    2012년 봄,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가 누구냐를 두고 전 세계 축구팬들 사이에서 논쟁이 한창이다. 메시냐, 호날두냐. 어떤 이들은 이 둘이 당대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이들이 수많은 영웅을 확실히 넘어섰을까? 올드팬들은 푸스카스와 펠레, 베켄바우어와 마라도나를 당대 최고로 기억한다. 간혹 야신이나 보비 찰턴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연령대를 낮추면 플라티니나 호마리우, 지단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그렇다면 진정한 황제는 과연 누굴까?

    기억은 편집이다. 자신이 객관적 사실이라고 믿는 주관적 선택의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사건 혹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에 대해 섬세하게 반응한다. 축구팬들도 마찬가지다. 각자 자신이 젊은 시절 보고 듣고 응원했던 선수들에게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눈앞에서 보고 있는 당대의 선수가 늘 가산점을 받는다. 평가의 왜곡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다. 메시와 호날두가 위대한 선수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역대 최고라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를 선정하는 종합적 역사적 판단이 어려운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1960년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영상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이 사람들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옛 선수들의 플레이는 사실의 영역에서 신화와 전설의 영역으로 진화한다. 심지어는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특별한 무언가를 자기 눈으로 직접 보았다며 회고담을 펼쳐놓는 팬들도 있다. 하기야 나폴리 시절의 마라도나에게 바치는 응원가 제목이 오 비스토 마라도나(나는 마라도나 봤다)가 아니었던가. 가사 내용도 ‘나는 봤다, 나는 봤다, 마라도나 봤다, 내 눈으로 봤다, 내 두 눈으로 봤다’ 였다.

    공 움직임 예측 불가능한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2012년 4월 현재, 메시는 2011~12 시즌 49경기에 출전해서 58골을 넣었다. 호날두도 메시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스페인리그 프리메라 리가 득점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 중이다. 경기당 한 골 이상을 득점하는 경이로운 결정력은 게임 속 가상현실인 위닝일레븐이나 피파 2011에서라면 몰라도 현실 세계에서는 어떤 경우에든 실현 불가능한 꿈같은 일이었다. 단 한 번, 브라질의 호나우두가 극성기 스페인리그에서 거두었던 근접성적을 제외하면. 메시와 호날두의 득점왕 경쟁은 말하자면 타격왕 타이틀을 놓고 그것도 두 선수가 타율 0.450 언저리에서 경쟁을 펼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지금 우리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펼쳐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메시의 드리블은 특별하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메시는 달려가면서 스피드를 줄이지 않고 발목을 이용해 공의 방향을 바꾼다. 그래서 수시로 예측이 불가능한 움직임이 나온다. 막으려야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라고 평했다. 뛰어가는 방향과 상관없이 공중에서 발목을 비틀어 공을 제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동작인지는 독자 여러분께서 직접 실험해보시기를. 그건 마치 한 손으로는 탁구를 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배드민턴 셔틀콕을 날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비수들이 잔뜩 모여 있는 우거진 밀림, 슛은 고사하고 패스하기도 여의치 않은 지점에서 메시가 빠른 슛을 날리고 득점에 성공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발목과 부드러운 허벅지 근육. 아주 미세한 틈만 보이면 메시는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공간을 창조한다. 백스윙 없이도 공에 엄청난 힘을 실어 보내는 건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테크닉이 아니다.

    그리고 칩 슛. 골키퍼의 머리 위를 넘겨 부드럽게 날아가는 칩 슛은 축구의 역설이다. ‘빠르고 강한 것이 우월한 것이다’라는 일반론을 넘어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들이대는 우아한 비수. 그래서 팬들은 칩 슛이 포물선을 그리며 둥실 떠오를 때마다 숨이 멎는다. 메시가 날리는 칩 슛은 그가 쏘아대는 전체 슛 가운데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어쩌면 메시는 축구 역사상 칩 슛의 구사빈도가 가장 높은 선수일는지 모른다. 그래서 골키퍼가 괴로운 것이다. 좌우뿐 아니라 머리 위도 방어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의력은 분산되고 빈틈은 더 커진다.

    하나가 더 있다. 메시의 칩 슛은 품질이 다르다. 일반적인 경우 다른 선수들의 칩 슛 포물선이 그리는 정점은 골키퍼의 뒤쪽 상공이다. 골키퍼의 키를 넘은 뒤 낙하 각도를 그다지 꺾지 않고 골로 향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메시의 칩 슛은 정점을 골키퍼의 머리 위 90도 지점에 둔다. 그래서 메시의 칩 슛은 골대 앞에서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폭포수처럼 직각에 가깝게 낙하하던 전성기 시절 최동원의 드롭커브! 그것은 정말로 독특한 재능이다. 그래서 말한다. 극한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발목을 이용해 공을 감아올려 손으로 던져 넣는 듯한 구질의 칩 슛을 구사한 사람은 지구상에서 단둘, 메시와 마라도나뿐이라고.

    스피드와 순발력의 귀재 호날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VS  리오넬 메시
    호날두의 드리블은 화려하다. 빠르다. 거침이 없다. 앞을 막아선 수비수를 상대로 헛다리 짚기를 할 때도 그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위풍당당한 풍모를 유지한다. 메시가 아무도 모르는 지점으로 소리 없이 다가와 골을 성공시킨다면 호날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곳에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할 구질과 스피드의 슛으로 고지를 함락한다. 메시에게 발목이 있다면 호날두에겐 스피드와 순발력이 있다. 페널티 박스 바로 바깥, 수비가 공을 처리할 공간을 압박하며 들어온다. 이제는 패스할 시공간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할 즈음 호날두는 전후좌우를 살피고 발바닥으로 공을 50㎝ 정도 밀어놓는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 만든 공간을 활용해 슛을 날리거나 패스를 연결한다. 그 연결동작은 전광석화처럼 빠르다. 깃털 옷을 입고 달리는 신선의 형상이 저러했을까. 그리고 그의 발명품 무회전 프리킥. 직선강타나 회전구 슛이 더 멀리, 더 빨리 나간다는 정설을 배반한 축구사의 작은 혁명. 1982년 OB베어스의 박철순이 이 땅에 처음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던 무회전 너클볼의 원리가 축구로 건너간 동화 같은 얘기다. 빨랫줄처럼 날아가던 축구공이 골키퍼 앞에서 예측불허 무정형의 움직임을 보이며 마구 흔들리는 불가사의한 경험.

    바둑으로 보자면 호날두는 조훈현, 메시는 이창호다. 권투로 치면 메시는 김태식이고 호날두는 박찬희다. 그러나 이 둘이 정말 역대 최고일는지는 한번 숨을 고르고 찬찬히 하나하나 살펴보아야 할 일이다. 이 둘은 프리메라 리가(호날두의 경우는 EPL까지)에서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유럽선수권 대회나 월드컵에서 아직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또 다른 지적도 있다. 스페인 리그가 세계 최고 수준의 리그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구조적 취약점이 있다. 잉글랜드나 이탈리아에 비해 상위 팀들과 하위 팀들 간의 실력차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세대 간 논쟁이 붙으면 올드팬들은 펠레와 마라도나의 신기(神技)를 극찬하면서, “거기에 비하면 메시와 호날두는 평범함을 좀 멀리 벗어난 수준이지 시대를 뛰어넘는 천재는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젊은 팬들은 바로 반격에 나선다. “펠레와 마라도나 시대는 공격수와 수비수들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플레이하던 목가주의 시대이며 그만큼 선수들 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묘기에 가까운 플레이가 요즘보다 더 자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현대 축구는 콤팩트 축구이며 예전에 비해 더 빠르고 격렬하고 몸싸움이 심하다”고 역공한다. 경기 스타일상 현대 축구가 공격수에게 더 불리한 상황인 것은 맞다. 하지만 현대의 축구선수들은 보다 나은 의료진과 장비의 도움을 받는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도 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는 건 30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혼자서 열 명 몫 해낸 마라도나

    미세한 신체 기능 저하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동능력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의료기술의 발전은 축구에서 정신력의 비중을 줄이고 과학의 중요성을 증대시켰다. 1950년대는(펠레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우승 멤버다) 축구화 무게가 거의 1㎏에 육박하던 시절이다. 지금 기준으로는 양 발에 족쇄를 달고 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기복이나 정강이 보호대까지를 포함하면, 장비가 선수들에게 가하는 물리적 제약은 지금 선수들이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이었을 터이다. 그래서 말한다. 목가적 스타일의 축구는 콤팩트 축구를 구사할 능력이 떨어졌기에 출현했던 축구가 아니다. 여건과 상황에 맞춰 진화하고 성장했던 당대 최신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심판도 그렇다. 1966년 월드컵까지는 선수교체 제도가 없었다. 다리가 부러지든 코뼈가 주저앉든,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거나 끝까지 뛰거나 이 둘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당대의 관념을 기준으로 하면, 축구 선수들은 전장에 나간 병사와 같았기에 어떻게든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관중도 선수 자신도 굳게 믿던 시대다. 앞서 말한 1954년 결승전, 푸스카스는 발목과 종아리 부상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의 기용을 두고 헝가리 감독은 당일 아침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교체선수 제도가 있어 푸스카스를 벤치에서 쉬게 하고 마지막 15분에 투입하는 작전을 짰더라면 그날의 승부는 달라졌을 것이다.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친 신화도 마찬가지다. 전반 34분 백태클을 시도하던 이탈리아 수비수 불가렐리가 무릎 골절로 실려 나가 상당시간을 11명 대 10명으로 경기한 것이 북한 승리의 원동력이다. (물론 이 상황은 백태클을 시도한 불가렐리의 파울이다. 상대방의 무릎 위로 넘어진 북한 선수에게는 고의성이 없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떠나 당시 북한은 세계 정상급의 경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심판들도 어지간한 파울에는 휘슬을 불지 않았다. 지금이야 웬만한 경기에 수십 대의 카메라가 따라붙고, 심판들이 미처 잡아내지 못한 파울도 사후에 발각돼 징계위에 회부되는 시대지만 과거의 선수들은 제도로부터도 심판으로부터도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했다. ‘선수보호’라는 관념이 그만큼 희박했다.

    사람들은 흔히 디에고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를 비교한다. 둘 다 단신이며 아르헨티나 사람이고 바르셀로나 선수로 활약한 적이 있으며 2010년 월드컵에서 감독과 선수로 한 팀을 이뤘으니까. 하지만 메시는 단언컨대 아직은 마라도나의 업적을 넘어서지 못했다. 메시는 늘 지구방위대 바르셀로나의 뛰어난 동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마라도나는 약간의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축구는 열한 명이 하는 운동이지만 때로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아직까지는 유일한 축구선수다. 마라도나는 20대 초반 보카 주니어스에서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그리고 요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친 태클-백태클에 두 발 당상 플라잉 태클까지를 포함한-이 난무하는 속에서도 바르셀로나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시즌의 상당 부분을 부상 때문에 벤치에서 보내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의 마라도나가 의료진의 양 어깨에 매달려 두 발을 들어올린 채 경기장 밖으로 실려 나가는 광경은 스페인 리그의 일상적 풍경이었다. 마라도나에 대한 악의적 태클은 월드컵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1982년 스페인 월드컵 브라질과의 2차 리그 두 번째 경기, 스코어는 0-3, 상대의 반칙성 밀착마크를 견디다 못한 마라도나는 무릎을 들어 수비수 바티스타의 허벅지를 찍어 레드카드를 받는다. 21세 떠오르는 스타의 첫 번째 월드컵은 이토록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4년 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마라도나는 이제껏 어느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공전절후의 공연을 선보였다. 매 순간이 그야말로 묘기 대행진이었다. 모두들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그가 보여준, 경기장의 절반을 가로지르며 무려 8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집어넣은 환상의 단독드리블 골을 이야기하지만, 준결승 벨기에 전 페널티 박스 안에서만 다섯 명의 수비수를 제치며 우겨 넣었던 또 다른 인디비주얼 골과 예선리그 불가리아 전에서 발다노를 향해 날린 크로스 어시스트도 잊지 못한다. 옆에서 잡은 카메라는 정상적으로 비행하다 문전으로 쇄도하는 발다노의 머리를 향해 자석처럼 정확하게 휘어지는, 마라도나가 올려준 크로스의 거짓말 같은 궤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마라도나 일인(一人)에 의한, 일인을 위한 월드컵이었다.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한 수 위?

    월드컵이 끝나고 마라도나는 이탈리아의 남부도시 나폴리로 날아갔다. 그리고 1986~87 시즌, 그곳에서 나폴리 최초인 78년 만의 리그 우승을 견인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이탈리아 수비수들의 경기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들은 상대방 공격수를 그야말로 물리적으로 봉쇄했고, 때로는 신체적 상해까지 야기하던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브라질 대표 카레카나, 훗날 이탈리아 국가대표가 되는 사르데냐의 왕자 장 프랑코 졸라의 도움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메시를 보좌하는 조연들에 비하면 마라도나 주변에는 인재들이 없었다. 불과 열두 척의 배로 거대한 왜적의 선단에 맞서야 했던 충무공의 심정이 그렇지 않았을까. 마라도나가 입단했던 1984년 당시의 나폴리는 강등권 언저리의 팀이었다. 마라도나는 나폴리를 이탈리아 리그 2연패, UEFA컵 우승 팀으로 만들었다. 마라도나 이후, 나폴리는 단 한 번도 우승을 기록한 적이 없다. 팀의 역사가 마라도나 이전과 마라도나 시대, 그리고 마라도나 이후로 확연히 갈리는 것이다. 이것이 필자가 ‘아직까지는’ 마라도나가 메시보다 위대한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이것이 필자 혼자만의 견해는 아니리라. K리그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영국인 축구 칼럼니스트 존 듀어든도 비슷한 말을 했다.

    “메시는 바르셀로나라는 기계 속에서 움직인다. 정교한 기계 속에서 가끔씩 예술적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마라도나는 오합지졸 속에서도 환상적인 축구를 했다. 만약 메시가 더 약한 팀으로 가서 소속 팀을 국내외 대회에서 정상으로 이끌 수 있다면 그는 위대한 선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팀으로 가서 계속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돕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 물론,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소속 팀을 한 단계 위로 올려놓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다. 그게 바로 마라도나가 해냈던 일이다.”

    메시와 호날두 모두 늙지 않는 영웅으로 남길…

    자, 논쟁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여기서 필자의 변명을 한 자락 깔아놓기로 하자. 기억은 편집이며, 바로 그러한 까닭에 나의 소년시대와 청년시대를 관통했던 마라도나에게 아무래도 가산점을 더 줄 수밖에 없다고.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정말로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움직임이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마약과 방종으로 그의 선수생활 말년이 이지러진 건 크나큰 유감이다. 어린 시절 마약퇴치 홍보대사로 공익광고까지 찍었던 마라도나가 마약 상습 복용자로 수년간 병원을 들락거린 건 그를 위해서나 축구를 위해서나 안타까운 일이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상대팀 감독석에 앉은, 전성기보다 몸이 세 배쯤 불어난 마라도나를 보며 온갖 복합적인 감정이 솟구쳤던 건 필자 혼자만의 감상이었을까. 그래서 말한다. 메시와 호날두는 젊다. 시간은 언제나 젊은 세대의 편이다. 그들의 재능이 더 길게 더 넓게 피어나고 뻗어나기를. 그리고 필자의 ‘선택되고 편집된 기억’을 뛰어넘어, 두 사람 모두 역대 세계 최고 축구선수가 되어주기를. 그만한 재능을 실시간으로 감상하는 건 축구 팬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 가운데 하나다.

    끝으로 사족 하나. 자기가 찬 코너킥을 자기가 헤딩으로 넣으면 노 골이다. 프리킥이든 페널티킥이든 코너킥이든 리터치는 반칙이다. 그래서 골키퍼가 막은 페널티킥을 키커가 다시 차 넣으면 득점이지만, 골대 맞고 나온 공을 차면 그 자체로 반칙이 된다. 그런데 축구선수 출신의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느냐고? 문자 그대로 ‘직접 겪으신 일’이 아닐 것이다. 말했잖은가, 기억은 선택이자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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