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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낙죽장도장 한상봉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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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녀와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누구나 칼을 지니던 전통 사회에서 선비들이 가장 아끼던 칼은 대나무에 인두로 글자를 새긴 낙죽장도(烙竹粧刀)였다. 소박하면서도 문서향 가득한 품위 있는 낙죽장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칼로서 선비들과 함께 사라졌다가 전라도 곡성의 한병문 장인이 새로이 되살려냈다. 그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그 아들 한상봉(韓相鳳·53)은 낙죽장도는 물론 사인검과 사진검을 직접 제작할 정도로 대나무와 쇠를 다루는 데 뛰어나다.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대나무에 매화, 난, 국화를 표현한 사군자도.

書爲白髮劒斜陽 글하며 백발 되고 검으로 해 기울었다

天地無窮一恨長 천지는 무궁한데 한 가닥 한은 길어라

痛飮長安紅十斗 서울 홍주 열 말을 심하게 마시고

秋風?笠入金剛 가을바람에 삿갓 쓰고 금강으로 들어선다

‘김삿갓’으로 불리는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의 ‘금강산으로 들어가다(入金剛)’라는 시다. 몰락한 양반이기에 어쩌면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했을 김병연이 자신의 평생을 압축해 내세운 것이 글과 검, 두 가지다. 옛 선비는 글만 읽는 맹꽁이가 아니라 글과 함께 칼이나 활을 다룰 줄 알아야 했다.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우기 위해, 그리고 모름지기 꼿꼿한 선비라면 학문과 함께 기개가 있어야 하므로 선비에게는 글과 함께 칼도 중요했다. 물론 선비가 지니는 칼은 무인의 환도(環刀)와는 달랐다. 그렇다면 선비는 어떤 칼을 지녔던가? 부녀자가 세련된 은장도를 가슴에 품었다면 선비가 아끼며 늘 몸에 지니던 칼은 바로 대나무로 만든 낙죽장도였다.

여자의 칼과 선비의 칼

장도(粧刀)란 아름답게 꾸민 칼을 뜻한다. 흔히 여성이 노리개로 가슴에 차는 은장도를 떠올리지만 크기와 상관없이 장식이 들어간 칼은 모두 장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위와 권위를 나타냈으므로 죄다 멋지고 아름답다. 특히 우리 칼은 실전용 칼조차 매우 섬세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무기로 쓰기에 아까울 지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 지형상 실전에서 가장 유용한 무기는 활이었고, 칼은 늘 차고 다니지만 마지막 육박전에서나 쓰는 호신용에 가까웠기에 실용성보다 장식성이 더 돋보이는 특징이 있다. 어쩌면 조선시대 초반의 긴 태평성대로 실전보다 위엄을 과시하는 의장용 칼이 더 발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임금의 어도(御刀)에는 칼집조차 나무가 아닌 귀한 대모(거북 등딱지를 얇게 저민 것)로만 만든 것이 있고, 임금을 곁에서 시위(侍衛)하던 운검과 별운검이 들었던 칼에도 어피로 감싸고 은이나 옥 등으로 장식한 고급스러운 것이 많다. 이런 칼은 장중함과 위엄이라는 보이지 않는 덕목이 한낱 기물에서 얼마나 멋지게 구현됐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런 반면 임진왜란 당시 군기감의 칼은 거의 녹슬고 손질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예의에 치중했던 문치의 나라 조선의 특징이 칼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무인의 환도조차 아름답고 멋지므로 장도라 불러도 어긋나지 않지만 장도로 불리는 칼은 그만큼 장식성이 뛰어난 칼을 말한다. 다같이 장식한 칼이라 하더라도 환도라 함은 칼을 찰 수 있도록 칼집에 단 고리(環)를 강조해 ‘차는 칼’임을 내세운 것이고, 장도라고 일컫는 것은 비록 차는 고리가 있어도 아름다움을 강조한 이름이다. 장도는 그만큼 장인이 솜씨를 한껏 부린 칼이다. 실제로 고려시대 은장도는 보기에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한상봉 장인은 고려 장인의 솜씨에 감탄하며 설명한다.

“이 잔잔한 무늬는 안에서 밖으로 찍어내고 위에서 다시 눌러주는 타출기법을 썼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바깥에서 문양대로 파내는 기법을 쓰지요. 타출기법은 재현하기도 어렵거니와 이 정도 솜씨를 내기는 힘들다 합니다.”

타출기법으로 완성한 은장도의 무늬는 번쩍이지 않고 부드럽게 순은색으로 빛나며 신비한 기운마저 내뿜는다. 인간의 솜씨와 미의식의 극치를 보여주는 고려 은장도를 보다 문득 고개 돌려 낙죽장도를 보면 그 당당한 소박함에 한순간 머릿속이 서늘해지는 것 같다. 대나무의 본래 마디가 고스란히 드러난 몸체에 장식이라고는 낙(烙), 즉 인두로 지진 글자뿐이다. 그것도 욕심을 경계하고 풍류를 즐기며 학문을 권하는 문장을 새겼으니, 이만큼 기술과는 멀고 정신적으로 무장한 칼은 없을 듯싶다. 물론 낙죽장도도 쇠뼈와 쇠뿔로 마감하고 먹감나무로 잇고 칼날에 금은으로 글자를 새기기도 하니, 사람의 솜씨가 아주 들어가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장인의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겸손한 손길이다.

“예전 선비는 아마 손수 만들었을 겁니다. 칼날이야 대장간에서 가져왔겠지만, 글자를 낙하는 일은 선비가 직접 했겠지요. 글자를 쓸 줄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칼날도 작은 화덕이 있으면 직접 만들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솜씨 있는 선비라면 집에서 혼자 다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상봉 장인은 추측한다. 실제로 낙죽장도 기술을 전수해준 조상 한기동 어른 역시 농사짓고 글 가르치던 훈장이었다.

선비가 사랑한 사군자 칼 삿됨을 물리치고 자신을 닦다

낙죽장도전수관 전시실에서 칼을 살펴보는 한상봉 장인. 벽에 걸린 사진은 부친 한병문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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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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