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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악기와 함께한 60년 나라의 음악을 완성하다

편종·편경 복원한 악기장 김현곤

  • 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악기와 함께한 60년 나라의 음악을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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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는 세종대왕이 우리의 독창성을 곁들여 종묘제례악을 완성한 이래 수백 년 동안 연주해온 전통이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제례악에 꼭 필요한 편종과 편경 제작법을 잃고 조잡한 복원에 만족해야 했다. 김현곤 악기장은 뛰어난 음감과 평생 악기를 수리하고 개량하고 만들어온 실력으로 제대로 된 편종과 편경을 복원해 중요무형문화재가 됐다.
악기와 함께한 60년 나라의 음악을 완성하다

소리 나는 옥돌을 매단 편경. 암소 뿔로 만든 각퇴로 치면 맑은 소리가 난다.

우리 민족의 창세 설화에 의하면, 태초에 소리(율려·律呂)가 있었다. 율은 양(陽)의 소리, 려는 음(陰)의 소리를 말하니, 율려는 바로 천지개벽의 소리였다. 율려는 별을 낳고 마고를 낳아, 마고의 후손이 만물을 다스리게 된다.

세상의 조물주가 왜 하필 소리였을까. 소리는 파장과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니 창조의 역동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어울림, 만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동양의 악기는 단지 예쁜 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료를 골고루 쓰는 것이 중요했다. 나무와 쇠, 돌, 흙(도자기), 가죽, 바가지, 대나무, 실(섬유)로 만든 악기 소리를 기본 여덟 가지 소리(八音)로 삼아 온 세상의 소리를 대표했다.

각기 다른 세상의 소리가 어울려 화음을 이루는 것이 음악이고, 음악은 곧 아름다운 대동(大同)사회, 태평성대를 말하는 것이었다. “시로 일어나 예로 서며 악으로 완성한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한 공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개개의 자연스러운 감성(詩)은 서로 간에 예의로 조절되며(禮) 마침내 만물이 조화로 완성되는 것, 그것이 바로 악(樂)이다. 그래서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예악이 일어나지 않는다(事不成則禮樂不興)”고 한 것은 세상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예악도 존재할 수 없음을 지적한 말이다. 흔히 옛 왕조의 예악 정치를 음악으로 백성을 교화하는 것으로 이해하지만, 사실 예악은 교화 수단이기에 앞서 온 세상이 잘 이루어졌다는 증표이자 임금이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어나가겠다는 무언의 약속과도 같았다. 음악으로 공표하는 정치 공약, 그것이 바로 왕조의 음악이었다.

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과 경

음악과 수학, 법칙은 한가지다. 그래서 동양에서 음을 정하는 일은 법도를 정하는 일이고, 달력과 도량형을 결정하는 일이며, 이는 별의 운행과도 관계있는 일이었다. 아름다움은 바로 그런 법칙(예)이 조화(악)를 이룰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므로 예악사상을 표방하는 아악에는 팔음의 모든 악기가 다 들어간다. 대관현악곡인 셈이다. 팔음 중 나무와 쇠, 대나무는 가장 널리 쓰이는 악기 재료다. 그런데 돌로 만든 악기는 딱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편경(編磬)이다. 소리 나는 옥돌 열여섯 개를 매단 편경은 타악기이되 음의 높낮이가 있는 유율(有律) 타악기다. 종 열여섯 개를 매단 편종 역시 유율 타악기다.

편종과 편경은 특히 아악(제례음악)에 꼭 필요한 격조 높은 악기다. 옛사람들에게 ‘예는 교사(郊祀·성 밖에서 지내는 야외 제사)보다 중대한 것이 없고, 악은 아악보다 성대한 것이 없으니,’ 제사음악에 쓰는 편경과 편종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아악의 최고봉인 종묘제례악은 처음 종소리로 연주를 시작해 마지막에 경 소리로 마무리한다. 웅장한 합주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경은 그래서 엄숙한 악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악기가 식민지 시대를 거치면서 제작법이 끊기고 말았다.

“종묘제례악 무형문화재였던 김천흥 선생이 이왕직아악부원양성소 학생이던 일제 강점기, 일본이 만주국의 기념식에 쓰려고 이왕직아악부에 편경과 편종 제작을 맡겨 만든 게 마지막이라고 합니다. 김 선생이 소리굽쇠를 들고 조율을 도왔다고 하더군요. 일본 애들은 서양 평균율로 조율하도록 했나 봅니다.”

전후 서울에서 만난 악기와 음악인

편경과 편종을 제대로 복원해내 중요무형문화재가 된 김현곤(金賢坤·77)은 여느 장인처럼 한 길을 걸어오지 않았다. 물론 그의 평생은 악기에 사로잡힌 인생이었지만 특정 악기 하나에 전념한 것이 아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악기, 아니 소리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을 쏟아왔다.

“무엇이든 두드려보는 습관이 있어요. 섬유 빼고 모든 사물은 공명을 하거든요. 저는 사물의 울림, 거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톡톡 탁탁 툭툭…실제로 그는 걸어가며 거리의 난간, 돌기둥 등을 두드려본다. 그를 보노라니 세상은 꼭 모양으로만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소리로 자신을 더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실제로 두드리는 동작은 손에 닿는 촉감과 울리는 소리, 시각이 동시에 만족되니 중독성 강한 그의 습관이 이해된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관심을 갖고 있는 김현곤이 악기와 연을 맺은 것은 우연처럼 보인다. 고향 순창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학할 요량으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몸을 의탁한 사진 가게가 악기사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꼭 서울 경기중학교에 가겠다는 꿈을 꿨지요. 그런데 6학년 때 사변(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뒤늦게 순창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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