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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진의 스포츠 언더그라운드 1

위기의 한국 프로복싱

헝그리와 무대뽀로 르네상스 꿈꾼다

  • 이형진 < 임바디 대표 > embody@embody.co.kr

위기의 한국 프로복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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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2년 비운의 복서 김득구가 떠나간 지 20년, 그때 그 시절을 복원한 영화 ‘챔피언’이 개봉됐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 동안 한국 프로복싱은 끝없이 추락했다. 이젠 세계챔피언을 한 명도 보유하지 못하는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모두가 절망하는 이 순간에도,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한국 프로복싱은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
”끝까지요” 행선지를 묻는 버스 안내양에게 소년 김득구가 말한다. 삶에는 목표가 필요하다. 정처 없는 나그네길에 인생을 비유한 노랫말도 있지만, 인생은 뚜렷한 목적에 따라 길이 갈린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2002년 6월, 한국축구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세기의 신화를 남길 수 있었다.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책이 있다. 저자는 애매성, 우연, 포기 등 인생의 비전과 실천을 가로막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숫자로 목표를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한다. 적절한 예가 이번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거둔 성과다. 그 동안 한국축구에는 ‘16’이라는 숫자만 있는 줄 알았다.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6강을 뛰어넘어 4강 신화를 만들어냈다. 뚜렷한 길을 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4’는 덤으로 얻은 행운이다.

그렇다면 김득구가 말한 “끝까지요”는 불확실한 행로의 의미였을까. 아니다. 그건 복싱의 불확실성과 복서의 권투 인생을 내포하는 말이다. 레이 맨시니와 처절한 사투를 벌여 14회로 끝난 그의 마지막 시합은 비록 목숨을 제물로 요구했지만, 한 청년의 삶을 모두 내던진 링 위의 전쟁이었다.

랭킹도 못 매기는 한국 복싱

김득구는 목표를 가진 사나이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챔피언’에서 김득구는 자취방과 호텔 방에 승리를 다짐하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복싱은 실존의 스포츠다. 구체적으로 존재해야 이기는 스포츠다. 실존은 반드시 삶을 얘기하지만 죽음을 떠나서는 삶이 있을 수 없다. 승리도 마찬가지다. 패배를 모르는 승리는 없다. 권투가 실존에 더욱 가까이 가는 건 역설적으로 죽음에 가까이 가는 불온한(?) 위험성을 항상 동반하기 때문이다.

세계챔피언이 한 명도 없는 한국 프로복싱은 이미 죽음에 이른 것일까. 위기에 빠진 프로복싱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국권투위원회 이세춘(58) 사무총장은 한국 프로복싱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프로복싱의 위기는 시대 흐름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올라갈수록 권투라는 극기 스포츠는 팬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하나의 원인이라기보다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현재 한국권투위원회에 등록된 전국의 복싱 체육관은 116개다. 1990년대 초반에는 더 많았지만, 중반부터 감소했다. 2000년 이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지만, 내용을 보면 반가운 현상만은 아니다. 선수가 되려는 사람보다는 취미로 권투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프로복싱 선수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등록선수가 많을 때는 800여 명이었는데, 현재는 500~600명 수준이다. 심지어 어떤 체급에서는 한국 랭킹 10위 리스트를 작성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사무총장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일본도 10~15년 전에 우리와 같은 침체기를 겪었지만 요즘 부흥기를 맞았다. 한 달에 24일이나 시합이 잡혀 있다. 따라서 일본에서 경기를 하려면 3개월 전에 스케줄을 잡아야 한다. 일본은 현재 세계 챔피언도 4명이나 된다.”

이사무총장은 국민들이 좀더 애정을 갖고 프로복싱을 봐달라고 당부한다. 그는 한국 프로복싱이 현재 심한 몸살을 겪고 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의 말대로 한국 프로복싱의 르네상스는 가능할 것인가. 먼저 화려했던 시절로 돌아가보자.

1966년 6월25일 서울 장충체육관. 그곳에서 WBA(세계복싱협회) 주니어미들급 타이틀전이 열렸다. 챔피언은 이탈리아의 니노 벤베누티였고, 도전자는 한국의 김기수. 15회전 경기가 모두 끝났다. 장충체육관을 직접 찾은 박정희 대통령과 국민들은 링 아나운서의 채점 결과를 숨죽인 채 기다렸다. 두 명의 부심은 엇갈린 판정을 내놓았고, 이제 챔피언 벨트의 향방은 주심 리처드 포프에 달려 있다.

“벤베누티 68, 김기수 74.” 밤 9시, 한국 최초의 프로복싱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신문들은 호외까지 뿌려가며 김선수의 승전보를 알렸고, 6월27일에는 서울시내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카퍼레이드가 벌어졌다. 2002년 6월의 함성 못지않은 흥분과 감격이 대한민국을 뒤덮었다. 이렇게 한국 프로복싱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김기수 개인도 마찬가지다. 신문과 담배를 팔던 소년이 가난에 찌든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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