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호

페블비치를 두 번이나 갔어도…

  • 고은아 서울극장 대표

    입력2006-07-21 1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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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블비치를 두 번이나 갔어도…
    ‘이더운 날에 이게 무슨 고생이람.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내내 투덜거림이 그치지 않는 하루였다. 여성경영인모임의 회장이 되는 바람에 어영부영 따라 나서기는 했지만, 남들은 게임을 즐기는 18홀을 걷기만 해야 하는 골프 문외한 신세는 참 처량맞았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재미있을까. 거리가 얼마냐는 둥, 바람이 어떻냐는 둥 물어대는 동료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대충 치면 되겠구만, 뭘 그리 난리야’ 한 가지였다.

    그게 1997년이었다. 물론 이전에 골프장에 가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남편을 따라 연습장에 나간 것까지 따지면 1960년대 후반부터니까 4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 그때는 연습장이 기계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이 직접 공을 놓아야 했다. 가끔 연습장에 따라 나가면 쭈그리고 앉아서 남편의 공을 대주곤 했지만, 남편이 내 몫이라고 갖다놓은 골프클럽은 지퍼 한 번 안 열어본 채 고스란히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가 골프를 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거니와, 영화 찍느라 한창 바쁘다 보니 짬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는 체력이 문제였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은 이유도 ‘그 체구로 무슨 드라이버를 때리겠나’ 싶어서였단다. 오랜 시간 즐겨온 수영은 마음 내키면, 언제든, 큰 힘 들이지 않고 할 수 있지만, 미리 사람들을 ‘조직’해서 먼 곳에까지 나가 하루 종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골프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가끔 남편이나 친구들을 따라 필드에 나가도 클럽하우스에서 놀거나 산책 삼아 걷는 게 전부였다. 그 유명하다는 미국 페블비치 골프장에도 두 차례나 갔지만 매번 밥만 먹고 그냥 왔다. 남들은 세계에서 몇 번째 가는 골프장이니 하며 법석을 떨었지만, 호텔 레스토랑만도 못해 보이는데 뭐가 그리 좋다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주변에 항상 골프가 있었지만 골프를 몰랐던 세월의 종지부를 찍은 것은 2000년 무렵. 내가 사는 집 근처로 이사 온 친구가 내게 골프를 가르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다. 아예 선생님을 구해다놓고 퇴근하는 나를 끌고 연습장에 나갔다. 집에 돌아와서도 동네 간이 연습장으로 불러내어 감독하는 식이었다. 정성이 고마워서라도 안 배울 수가 없었다.

    두 달쯤 연습하고는 마침내 골프채를 들고 남편의 라운드에 동참했다. 다른 분들이야 모두 수십년씩 골프를 친 남자들이니 나와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공이 엇나가도 그냥 그러려니, 퍼팅을 몇 번 해도 그냥 그러려니, 흐름 따라 넘어가는 골프다 보니 열심히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골프실력이 늘 리가 없었다.

    그러나 친구들과 하는 골프는 달랐다. 아무래도 여자들끼리 치는 골프는 티박스 분위기부터 색달랐다. 골프의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면서부터였다. 슬슬 주변의 자연경관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철 따라 변하는 나뭇잎 색깔과, 예쁘게 깎아놓은 필드가 주는 안도감, 그리고 그 시원한 공기. 흔히 골프를 이야기할 때 떠올리는 모든 이미지를 시작한 지 2년 남짓 되어서야 비로소 느끼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알고 보면 놀라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성격이 급한 편이다. 어린 시절부터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촬영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 때문일 게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 늘 답답하다고 느끼곤 한다. 골프장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천천히 걸어 다니면서 캐디에게 코스를 묻고 골프채를 건네받아 거리를 가늠한 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어 스윙을 하고 다시 캐디에게 채를 건네주는 그 일련의 동작들이, 골프장에 처음 나갔을 무렵의 나에게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갑갑했다.

    다른 이들처럼 여유 있게 골프를 치려고 해봐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안 하려고 해도, 한번 스윙을 하고 나면 주변을 둘러볼 것도, 캐디를 돌아볼 것도 없이 골프채를 손에 든 채 다음 지점을 향해 성큼성큼 걷고 있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게임보다는 즐긴다는 기분으로 치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90대 후반을 벗어나지 못하는 스코어가 초반까지만 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몇 개만 더 잘 치면 될 텐데’ 하는 마음으로 공만 노려보다가는 오랜만에 만난 나무와 풀을 제대로 볼 수 없겠다 싶어서였다.

    어릴 적에 어른들이 쓰시던 사투리에 ‘애살’이라는 말이 있다. 뜻을 풀어 써보면 ‘뭔가를 꼭 해내겠다는 욕심’쯤 될 것이다. ‘골프에서는 애살을 부리지 않겠다’고나 할까. 남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만큼 욕심 부린다고 될 일도 아니겠고.

    애살을 부리지 않으니 더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연습장에 서면 뒷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약하던 체력도 18홀을 거뜬히 돌 만큼 든든해졌다. 주말마다 남편과 골프장과 수영장으로 갈라지는 대신 함께 필드에 가게 됐다는 것도 참 좋은 일이다. 집에서 TV를 봐도 골프 채널을 보며 한마디라도 더 나누게 되는 것이다. 남편이 “그럴 줄 알았으면 진작부터 열심히 권해볼 걸”하고 웃는 까닭이다.

    아, 하지만 아쉬운 점 한 가지. 남들은 평생 못 가봐서 한이라는 페블비치를 두 번이나 가고도 필드를 밟아보지 못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분하다. 유감스럽게도 골프를 친 이후로는 기회가 없었다. 그 좋은 골프장에 가서 클럽하우스만 보고 호텔 레스토랑 운운했으니, 그게 참…. 그래서 역시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리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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