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호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악명 높은 파3 홀에서 30년 골프 인생 최대의 굴욕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 골프 칼럼니스트 kalgolf@yahoo.co.kr

    입력2006-10-02 15: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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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스앤젤레스에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오크퀘리 골프클럽(Oak Quarry G.C)은 폐광(廢鑛)을 활용해 만들었기에 여느 골프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황량한 산악 계곡에서 펼치는 색다른 골프의 즐거움과, 골퍼들의 무덤이라 할 14번 파3 홀의 고통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골퍼라면 누구나 처음 방문하는 코스에 대해 기대와 설렘을 갖게 마련이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 팜스프링 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오크퀘리 골프클럽 가는 길도 그랬다.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1000여 개 골프장 중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축에 들 뿐 아니라 파3 홀로는 최고의 난이도를 자랑(?)한다는 명성을 익히 들었기에 골프장으로 가는 2시간30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IT산업의 중심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동상이 있는 인구 26만의 리버사이드 시를 지나 골프장으로 향하는 국도로 들어서니 고향 가는 길처럼 고즈넉하다. 끝없이 펼쳐진 오렌지 과수원 너머로 우뚝 선 바위산엔 마치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빚은 것처럼 동글동글한 바위가 널려 있고, 그 밑으로는 사막 특유의 선인장과 이름 모를 꽃들이 만발해 있다.

    흰 대리석과 석회암 계곡에 들어선 오크퀘리 골프클럽에 도착해 발 아래 펼쳐진 코스를 내려다보니 아직도 광산 채굴을 하고 있는 듯 삭막하고 황량하다. 6년 전 폐광이 된 것을 세계적인 골프코스 설계가 길 모건이 19홀, 파72, 7002야드의 국제규격 골프장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봐온 여느 골프코스와는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옷을 갈아입고 퍼팅그린 옆에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는데 존이라는 마셜(marshal)이 다가와 코스의 특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핸디캡이 얼마냐, 공은 몇 개를 가지고 왔냐고 물었다. “핸디캡은 6이고, 공은 15개 갖고 있다”고 하자 그는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선인장밭이고 코스 곳곳에 연못이 있는데다 티잉 그라운드와 페어웨이가 연결되는 부분은 돌밭 낭떠러지여서 동반 골퍼를 위해 10개 정도는 추가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듣던 대로 만만치 않은 코스라는 생각이 들어 공을 20개쯤 더 구입했다. 13년 전 미국에서 제일 어렵다는 호놀룰루 쿨라우(Koolau) 코스에서 일행이 가진 공을 모두 잃어버려 플레이를 중도에서 포기한 일이 새삼 떠올랐다.

    삭막한 폐광과 푸른 그린의 조화



    스타터의 안내로 1번 내리막 홀(363야드)에서 티샷 순서를 정하는데, 싱글 핸디캐퍼가 시범을 보이라고 야단이다. 퍼팅그린에서 연습하던 다른 골퍼들이 돌밭 사이에 난 녹색 가르마 같은 좁은 페어웨이로 어떻게 티샷을 하는지 구경하러 몰려들었다. 우리 팀은 갤러리를 의식해서인지 다소 긴장해 있었다. 갤러리가 많고 어려운 내리막 첫 홀은 몸이 풀리지 않아 미스 샷을 하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조절이 중요하다. 좀더 천천히 백스윙을 하고, 공을 끝까지 봐야 하며, 완벽한 톱 스윙을 해야 한다는 점을마음에 새기고 어드레스를 하면서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높은 언덕의 티잉 그라운드에서 낮은 평야를 향해 내려친 공은 높이 날아올랐다 에메랄드빛 페어웨이로 떨어졌다. “굿샷!” 소리가 들려왔다. 나머지 3명의 티샷은 왼쪽, 오른쪽으로 휘면서 돌밭 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에 상쾌한 기분으로 녹색 카펫 같은 잔디를 밟으며 공이 떨어진 곳으로 가보니 남은 거리는 100야드. 피칭웨지로 샷을 하자 옆 친구가 “핀 하이(pin high)!”라고 외쳐댄다. 그린에 올라갔더니 공이 깃대 옆에 붙어 있어 한 손으로 퍼트를 끝냈다. 첫 홀을 버디로 시작해 휘파람을 불며 그린 뒤쪽을 바라보니 산토끼 두 마리가 축하해주듯 앞발을 들고 서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오크퀘리 골프클럽

    오크퀘리 골프클럽은 거대한 회백색 석회암 지대에 우윳빛 대리석이 섞인 바위산이 그린 뒤에 있어 색다른 풍광을 자아낸다.

    두 번째 홀은 그린 뒤편을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싸 마치 절벽 밑에 그린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산처럼 쌓인 돌더미, 파헤쳐진 산기슭, 그리고 우윳빛 석회암과 대리석으로 이뤄진 계곡 사이로 난 코스를 따라 이동하는 게 마치 강원도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느낌이었다.

    6번 홀까지는 드라이버 샷, 세컨드 샷, 어프로치, 퍼트 등 모든 것이 순조롭고 스코어도 좋아 어깨가 으쓱해졌다. 7번 홀에 당도하니 페어웨이는 좁고 오른쪽은 도그레그 홀(그라운드에서 그린이 보이지 않는 홀)이어서 조금 위축됐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서인지 티샷을 할 때 스윙 속도가 빨라지면서 어정쩡한 스윙이 돼 심한 슬라이스가 나면서 공이 선인장밭 속으로 처박히고 말았다. 좀더 안정적인 샷을 하기 위해 드라이버 대신 3번 우드로 바꿔 티샷을 했더니 다행히 오른쪽 러프 쪽으로 떨어져 OB는 면할 수 있었다.

    혹시 처음 친 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선인장이 듬성듬성 난 돌밭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공이 지척에 있길래 손을 내밀어 주우려는 순간 등 뒤에서 방울뱀을 조심하라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라 급히 돌아서는데, 선인장 가시가 정강이를 마구 찔러댔다. 순간 화가 치밀어 들고 있던 아이언으로 내리치려는데 노랑꽃들로 치장한 선인장들이 나를 또렷이 쳐다보는 게 아닌가. ‘공은 당신이 잘못 쳐놓고 왜 우리한테 화를 내느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10번 홀에 들어서니 탁 트인 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캘리포니아의 강한 태양이 이글거리고 코스 중간에 파놓은 연못에선 수백 마리의 검은 물새가 유영하고 있다. 큰 나무 한 그루 없이 온통 검은 돌과 흰 대리석 천지인 이 척박한 폐광에 녹색 그린이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이렇듯 버려진 땅을 개간해 코스를 만들자 인근 주민은 물론 환경단체들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산야를 파헤치는 대신 버려진 하천 부지나 폐광 같은 척박한 땅에 골프장을 만들면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워서 더 아름다운 14번 홀

    바위산 계곡을 이리저리 돌며 플레이를 하던 중 드디어 가장 어렵고 아름답다는 14번 홀(파3, 214야드)에 도착했다. 듣던 대로 절경이다. 거대한 회백색 석회암지대에 우윳빛 대리석이 섞인 바위산이 그린 뒤에서 강한 햇살을 받아 빛났다. 장방형 그린 앞엔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고, 왼쪽 옆으로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을 가진 연못이, 오른쪽에는 야생화가 피어 있는 돌밭이 있다. 티잉 그라운드와 그린 사이는 절벽이다.

    이 환상적인 그린을 정복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것은 터프하다’는 미국 속담이 생각났다. 이처럼 어려운 코스를 정복했을 때의 희열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골프의 본질은 무한한 도전정신이 아니던가.

    공이 조금만 빗나가도 용서치 않는 이 터프한 홀에서 우리 팀은 지레 겁을 먹고 전의를 상실했다. 1번 타자는 “자신이 없어 레이디 티에서 치고 싶다”며 드라이버로 티샷을 날렸지만 토핑이 나면서 공이 숲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2번 타자는 오른쪽 숲으로, 3번 타자는 하이볼이 되면서 돌밭 속으로 공이 떨어졌다. 마지막 타자인 한국의 싱글 골퍼가 타석에 들어서자 이곳을 소개한 이종운 한국일보 리버사이드 지사장이 “여기서 파(par)를 잡으면 내가 산돼지 바비큐로 저녁을 내지” 한다.

    ‘여유 있고 부드러운 스윙을 해야지’ 마음먹고 한 클럽 크게 잡아 3번 우드를 빼들었다. 짧으면 공이 계곡 속으로 날아가 ‘안녕’을 고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공을 여기에 제물로 바칠 수는 없다’고 다짐하면서 티를 꽂았다. 계곡이나 워터해저드를 넘기는 홀에서 헤드업은 절대금물이다. 숨을 들이쉬며 ‘하나, 둘, 셋’을 외치면서 힘차게 샷을 날렸다. 공은 좁고 긴 골짜기를 가로지르며 화려하게 날아올랐지만 왼쪽으로 휘면서 연못 속으로 빠져버렸다. ‘힘을 빼고 천천히 휘두르라’는 골프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결과였다.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서자 멀리건(mulligan)을 선언하며 다시 한번 시도하라고 공을 던져준다. ‘이번에는 멋지게 그린 온을 시켜야지’ 하고 다짐하면서 4번 우드로 바꿔 잡고 힘차게 스윙을 했다. 웬걸, 이번에는 공이 오른쪽으로 슬라이스가 나면서 깊은 러프 쪽으로 OB가 났다. 해저드를 넘기는 홀에서는 어떤 것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게 공략요령이다. 오직 공에 집중해야지 과욕을 부리면 긴장해 무리한 스윙을 하게 된다.

    우리 일행을 따라온 이곳 마셜이 미국식 OB의 표현인 “오스카 브라보(Oscar Brabo)”를 연신 외쳐댄다. 한국 싱글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이 홀을 정복하기 위해 LA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이나 달려왔는데…. 아쉽지만 그린 옆에 설치된 특별 티에서 샷을 하고 투 퍼트도 아닌 스리 퍼트로 마무리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골프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마셜이 눈치도 없이 이 홀에서 몇 타로 마무리했냐고 묻는다. ‘묻지마!’라고 쏘아주고 싶었으나 신사 체면에 그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웃어 넘겼다. 화가 나 입이 나온 내 얼굴을 본 친구가 “이곳에서 파(par)를 잡으려면 티샷하기 전에 돼지머리에 명태를 놓고 막걸리를 부어야 한다”며 위로했다.

    골프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게임이어서 18홀을 돌고 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평상시 감춰져 있던 성격이 라운드를 하면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공이 잘 맞지 않으면 발끈 화를 내는 습관이 있어 같이 라운드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때가 많다. 매너가 나쁘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에게 어울리기 싫은 상대로 낙인찍혀 외톨이가 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버릇을 고치려고 노력하지만, 오늘도 주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 미안했다.

    골프 인생이 어느덧 30년 가까이 되지만 이렇게 어려운 파3홀은 처음이어서 우리는 그린과 백색 바위산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선인장 위스키에 쓰린 속 달래고…

    이어지는 홀은 파5로 페어웨이가 넓고 해저드가 없어 마음이 편안했다. 바로 전 파3 홀의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설계자의 넉넉한 마음이 엿보였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드라이버를 휘두르니 공이 하늘 위로 쭉쭉 뻗어나간다. 5번 우드로 세컨드 샷을 치자 야생화 꽃밭을 지나 페어웨이 정중앙으로 날아간다. 남은 거리 90야드를 샌드웨지로 치니 핀 옆 3m 지점에 온이 됐다. 쉽게 파를 잡으니 스트레스도 사라지고 속상했던 마음도 풀리며 갑자기 골프가 쉬워진 것 같다.

    미스 샷에 좌절하지 않고 고통을 극복하는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골프는 인생의 도장이라 할 만하다. 트러블 샷 후에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어 좋은 스코어를 냈을 때 골퍼들은 전 홀의 아픈 기억을 잊고 만족스러워한다. 골프는 이런 양면성에 큰 묘미가 있어 자주 우리 인생사와 비유되곤 한다.

    마지막 홀의 그린을 떠나면서 정면에 버티고 선 주르파 산을 보니 석양이 깃들어 더없이 아름답다. 골프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내가 미국의 이 외딴 광산촌까지 올 수 있었을까.

    골프를 끝내고 보니 그 많던 공이 겨우 5개 남아 있었다. 같이 플레이한 동반자들이 공이 떨어지자 몰래 가져다 쓴 것이다.

    이 골프장의 총지배인 행크 실러씨와 커피를 마시면서 이 골프장의 특성과 마케팅 성공사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처음 오픈했을 때에는 찾는 이가 뜸했지만 개성 있는 14번 파3 홀의 전경사진과 난이도를 적극 홍보한 결과, 지금은 미국 동부와 중부는 물론 멀리 일본, 멕시코, 캐나다 등에서 골퍼들이 이 홀에 도전하기 위해 몰려온다고 한다.

    골프가 끝난 후 또 한 가지 즐거움은 ‘19번 홀’에서 즐기는 대화와 뒤풀이다. 아깝게 날려버린 버디에 대해서는 낚시에서 손에 잡았다 놓친 물고기처럼 아쉬움을 토로한다. 깃대에 붙였다고 자랑하는 아이언 샷은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깃대로부터의 거리가 점점 짧아진다. 아쉬운 OB 이야기, 어느 누구도 14번 홀에서 온 그린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후회, 코스의 난이도 등을 화제로 삼으며 들이켜는 캘리포니아의 독한 선인장 위스키는 쓰면서도 달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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