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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 | 소동기 변호사의 골프 생각

소년의 호기심으로,첫 인사 드립니다

  • 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박진영

소년의 호기심으로,첫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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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의 골프실력은 보잘것없으며 또한 골프에 대해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어린 시절 뒷산에 올라 더 넓은 세상을 궁금해하던 바로 그 마음으로, 이제 골프에 관해 품었던 짧은 생각들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소년의 호기심으로,첫 인사 드립니다
제가 태어난 마을 앞쪽으로 좌우에 산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왼쪽에 있는 산을 안산이라고 불렀고 오른쪽의 산을 연대봉 또는 봉호라고 불렀습니다. 가뭄에 시달리던 해, 연대봉에서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연대봉의 정상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을 뿐 아니라 정상 바로 밑 양지바른 곳에는 10여 평 되는 잔디밭까지 생겨났습니다. 안산과 연대봉 사이로 더 멀리에는 삼태봉이라 하는 산도 있습니다.

그리고 안산과 연대봉과 삼태봉 사이로는 굴포만이 자리합니다. 굴포만의 일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간척지로 개발됐는데, 어려서 어른들이 그 제방을 고산 윤선도 선생이 와서 축조한 것이라고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삼태봉 너머로는 다도해국립공원을 이루는 수많은 작은 섬이 점점이 떠 있으며, 더 멀리에는 보이지는 않지만 제주도가 있고, 그보다 더 먼 곳에는 동지나해로 이어지는, 넓고 넓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연대봉에 올라가면 어쩌다 한 번씩 삼태봉 뒤쪽 저 멀리 한라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비가 올 듯한 아주 특별한 날 연대봉에 오르면 바다 저 멀리 수평선 구름 위로 흐릿하게 보이는 것이, 한라산이라고 마을 어른들이 일러주었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대봉에 올라가서 놀기를 좋아했습니다. 동네의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놀기보다는 혼자서 연대봉에 올라 큰소리로 책을 읽거나 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곳과 수평선 너머에 있을지도 모를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왜냐하면 연대봉에 오르면 우리 동네뿐 아니라 인근의 신동 굴포 남선 백동 송월 송정 상만 등 여러 마을을 한눈에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는 바다도 보이고 인근에 있는 섬들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 마당에서는 볼 수 없는 산들도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연대봉에 올라 저 산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있을까 궁금해하며 놀았던 것입니다. 연대봉에 올라갔을 때 보이던 산 너머에 있을 세계에 대하여 궁금해하던 버릇은, 마을 옆에 있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면소재지에 있던 중학교를 다닐 때까지, 전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서울로 왔습니다. ‘지게 지기 싫거든 면서기나 하라’시던 어머니의 만류를 뿌리친 걸음이었습니다. 산 너머의 세계는 어떨까를 궁금해하다가 바다를 건너 마침내 서울까지 왔던 것입니다. 서울에 와서 처음에는, 이제 더는 가볼 곳이 없으리라, 이제부터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일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처음으로 남산에 올라간 적이 있습니다. 3분기 등록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꾸만 교무실로 불려 다니는 것이 싫어서, 형님에게 학교를 그만두고 다시 진도로 내려가겠다고 편지를 낸 후의 일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형님의 답장을 받고 나서 마음을 고쳐먹고 하느님과 담판하기 위해 서울에서 가장 높은 남산을 찾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가보지 못한 세계

남산에 올라가서 보니 서울은 참으로 넓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의 북쪽에는 남산보다 훨씬 높은 북한산이 있고, 남쪽에는 관악산이 있으며, 동쪽에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있고, 그 뒤쪽에는 천마산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을 마칠 때까지 북한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아직도 제가 가보아야 할 곳이 끝없이 남아 있음을 염두에 두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저는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술을 마시기보다는 해외여행 다니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음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나서 여러 사정 때문에 법원이나 검찰에서 근무해보지도 않은 채 곧장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판사나 검사를 지망하던 거개의 동료 연수생들과는 다른, 그리고 대한민국 변호사란 판사나 검사로 근무하다가 전관예우를 받아도 될 시점에 퇴직하고 나와서 하는 것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행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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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기 변호사, 법무법인 보나 대표 sodongki@bonalaw.com / 일러스트·박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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