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는 고독에 중독되지 않았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를 출간했을 때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점차 대중의 인기를 끌면서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많은 사람이 왜 200년 전 독일 철학자의 이야기가 오늘날 한국에서 크게 주목받느냐고 내게 물었을 때 대답하지 못했…
강용수 고려대 철학연구소 연구원2024년 02월 24일예순에 딴 운전면허
시월의 이른 아침, 나는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은 후 차를 몰고 천년 고찰 강화 보문사로 향했다. 그곳엔 가을 단풍이 있었고 무엇보다 절친한 고등학교 동창 스님이 있었다. 차가 김포 톨게이트를 벗어나자, 물안개에 싸였던 한강 다리 사…
정성욱 시인2024년 02월 10일웃음은 천국의 표정
한바탕 가을 축제를 준비하기 위한 한낮의 뜨거움이 절정을 찍었다. 가을은 뜨거운 태양으로 완성된다. 태양을 품어야 익어가는 대추와 밤이 추석이 다가왔음을 알린다.강렬한 태양은 과일의 속살과 과육을 만드는 원초적 에너지다. 생명의 결…
김희경 작가2023년 11월 18일꿈 이뤄 ‘나’에게 선물하는 게 삶에 대한 예의
내 안에는 거인이 살고 있다. 내 안에 꿈이 있어서다. 내 안에 있는 거인의 잠을 깨우고, 내 안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내 안에 있을 때는 꿈이지만 세상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거인의 꿈이 된다. 꿈을 선물하라, 자신에게. 그것도 …
신광철 작가·한국학연구소장2023년 09월 18일[에세이] 아버지의 그늘
길상사(吉祥寺)에 가면 삶의 고단함이 나도 모르게 내려놓아진다.비가 씻어낸 푸른 풀잎의 표정이 청신하고 하늘은 속절없이 푸르렀다. 숲 나뭇가지에 이는 바람이 코끝에 훅, 들어왔다.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스멀스멀 나를 감쌌다. 우리…
박명희 소설가2023년 08월 16일[에세이] 요양원 할머니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동네 언니 Y가 작년 여름, 노인요양원에서 일을 했다. 언니에게 요양원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주 듣다 보니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노인요양원 간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카페 건물에도 노인요양원이 두 개나 …
최은숙 작가2023년 06월 18일[에세이]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어요
소파 다리를 다릿발이라 부른다는 걸, 앉는 부분을 좌방석이라 이야기하는 걸 모르는 내가 인테리어 에디터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라이프스타일 에디터인데, 집이라고 해봤자 독립한 후로부터는 33m2(10평) 이상에서 살아본 적 없는 내…
현요아 작가2023년 04월 10일[에세이] 목숨 붙어 있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다하리라
평생 시를 쓰면서 산 사람이다. 내면의 관심이 오직 글에 있었고 시에 있었기에 세상일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세상일에 또 크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그렇게 일생을 살았다. 특히 스포츠에 별 관심이 없다. 큰 줄기는 알고 있지만 …
나태주 시인2023년 03월 13일[에세이] 그렇게 새벽은 왔다
“둘째는 없어.”산고를 치른 후 남편에게 뱉은 첫마디. 출산 후 몇 년이 지나자 저 말이 무색하도록 나는 매일 고민했다. 남편은 한 아이만 기르고 싶다고 했지만 나는 두 가지 삶을 자꾸 저울질했다. 마음먹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법…
장보영 작가2023년 02월 07일[에세이] 괜찮아, 사실은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말이었어
일주일에 세 번씩 찾아가는 집이 있다. 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딩동’ 누르면 집 안에선 정신없이 ‘우당탕탕’ 마구 뛰어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리면 나는 벌컥 열린 문에 코를 찧을까 재빨리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
김버금 작가2023년 01월 17일[에세이]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나요
나를 소개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 언젠가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였다. “저는 글 쓰고 가르치는 작가입니다”라고 평소처럼 나를 소개했는데, 인터뷰어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되물었다. “그런 당연한 소개 말고요. 스스로는 자신을 …
고수리 에세이스트2022년 12월 16일[에세이] 늙은 개 ‘또또’가 가르쳐 준 ‘사랑하는’ 방법
아내의 집, 그러니까 처가에는 ‘또또’라는 반려견이 살았다. 또또는 16년을 살아온 스피츠종의 노견이다. 윤기를 잃은 흰색 털과 느릿느릿한 걸음걸이가 할아버지를 연상케 한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던 내게는 종이 다른 존재가 그…
윤성용 작가2022년 11월 09일[에세이] 오후 6시 30분, 나의 길티 플레저
몇 권의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가끔 글쓰기나 에세이 쓰기와 관련된 강의를 의뢰받을 때가 있다. 1시간 정도 내가 준비해 간 내용을 이야기하고 나머지 30분 정도는 현장 질의응답 시간을 갖는데 그때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다.“글은 쓰고…
이유미 작가2022년 10월 12일[에세이] NOT TODAY : 아직은 아니다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 매버릭’이라는 영화가 인기몰이하고 있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지만 톰 크루즈는 이번 영화에서 고난도의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그는 내가 대학 시절 좋아하는 외국 배우 중 하나였다. 물론 그 시절 남자들이 다…
강민 작가2022년 09월 12일[에세이] 희망이라는 우량주
아침부터 친구 녀석이 전화를 했다. 받지 못했다. 휴대전화 메시지 창에는 단어 한 개와 그 뒤로 점 여러 개가 찍혀 있었다. 며칠 전 그 녀석에게 얘기한 주식이었다. 나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그 주식을 샀다. 녀석에게 전화를 바로…
양동혁 작가2022년 07월 15일[에세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볼 미래
서른이 넘어가면서 주변인들이 직장인 5년차, 7년차 정도에 접어들었다. 그들과 만날 때마다, 나는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는다. 어떨 때는 직군도 회사도 다른 그들의 상사란 너무나 비슷하게 구린…
임지은 작가2022년 06월 14일[에세이] 내 인생 엔딩 크레디트
새벽 4시의 냄새는 특별하다. 낮 동안 내리쬐던 태양의 뜨거움이 식어 묘한 냄새가 난다. 밤새 바닥에 켜켜이 쌓인 자동차 매연이 새벽 찬 공기에 밀려 콧속으로 들어오면 정신이 번쩍 든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
김도영 작가2022년 05월 11일[에세이] 왈츠를 추듯이
연말연시에는 새 수첩을 마련하곤 한다. 요즘엔 휴대전화에 메모장과 달력 기능이 있어 예전만큼 수첩을 자주 쓰게 되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새해가 되면 새 수첩에 365일치의 날짜를 적고, 소소한 목표나 허황된 계획을 즐겨 적는다. …
백수린 소설가2022년 02월 10일[에세이] 내 마음의 보청기
“이번에 CT 검사한 것이 많이 안 좋네요.”귀가 어두운 할아버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선생님, 내가 귀가 잘 안 들려요. 좀 크게 이야기해 줘요.”할아버지는 내 쪽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임상교수2022년 01월 09일[신동아 에세이]‘위드 코로나’의 어색한 표정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간만에 평일 오전 강남역에서 약속을 잡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에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만남을 자제하고자 여러 명이 모이는 약속을 잡지 않았다. 단계적 일상회복 조…
이재범 투자전문가 겸 작가2021년 12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