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호

대전 동구 “서비스정신·현장확인으로 주민과 호흡”

단체장의 리더십 빛나, '동구 비전 2010' 수립 (자치단체장 : 임영호 구청장)

  • 이기진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 doyoce@donga.com

    입력2005-04-04 16:5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대전·충남행정학회는 우수 기초자치단체를 선정하기 위해 지방행정연구회가 개발한 지표(단체장리더십, 정책추진의 타당성, 대응성, 재정운용의 건전성)를 활용했다. 우선 각 기초자치단체에 지표당 A4용지 1∼2매의 원고와 함께 증빙서류 제출을 요청하고 심사위원 5인이 면밀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최종평가를 했다.

    지방자치가 부활한 뒤 민선 자치단체장 2기를 거치면서 대전광역시의 자치구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재정을 확충하고 주민들의 요구를 구정에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과거의 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서비스지향적인 행태로 변하는 등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3개 자치구(대덕구, 동구, 중구)는 광역시 차원의 도심(都心) 이전과 IMF경제위기에 따른 공동화 현상을 겪는 중에도 구청장이 리더십을 발휘해 재정운용의 건전화를 꾀하고 주민 지향적인 서비스행정을 펴는 등 평가요소에 비춰볼 때 서로 엇비슷하여 우열을 가리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보여준 동구를 선정했다.

    동구는 구청장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구민과 함께 희망의 동구 건설’을 모토로 독자적인 구 마크와 캐릭터를 제작해 CI를 확립하고 ‘사무닥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전자결재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행정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노력을 펼쳐왔다. 또 동구는 정책추진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민간인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구정자문단’을 활용하고, 정기적으로 ‘동구 포럼’을 개최해 구정을 홍보하고 구민들의 요구를 파악하는 기회로 삼았다.

    한편 주민참여를 위한 ‘구정 설명회’, 쌍방향 의사소통을 위한 ‘동장회의 주민참관’, 지역주민의 정보화마인드 제고를 위한 ‘지역정보센터’, ‘식장산 진달래꽃 축제’ 개최, 소외계층을 위한 ‘나누미 건강목욕탕’ 등에서 엿볼 수 있듯이 주민에 대한 대응성을 높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그리고 재정운용에 건전성을 기하기 위해 ‘체납세금 1직원 목표관리제’를 운영하고, 세외수입의 확충과 경영수익사업의 내실화를 도모하며, 경상경비를 절감하여 채무상환에 충당하고, 전자입찰제를 도입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처럼 다양한 노력을 하고 또 상당한 성과를 올려 여타 자치단체의 모범이 된다고 판단해 심사위원들은 대전광역시의 우수 기초자치단체로 동구를 선정했다.(이창기 대전대 교수· 행정학)

    9월7일 오전 5시 반. 잠자리에서 일어나 조간신문을 훑어본 임영호(47) 대전 동구청장은 책상에 앉아 ‘B5’크기의 재활용 종이를 꺼냈다.

    “손미연님, ‘세상사람들은 모두 행복한데 나만 왜 이러지’라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기쁜 마음으로 살아 있는 게 행복하다는 예쁜 마음을 키워주세요. 가슴속에 사랑의 촛불을 하나씩 켜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아름다운 모습이지요…(중략). 부디 건강을 회복하세요.”

    몸이 아파 28세의 나이로 중학교에 다니는 손미연(28·여) 씨에게 편지를 쓰는 임청장의 마음은 조심스럽기만 하다. 부디 이 편지가 손씨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를 고대하기 때문이다.

    임청장은 매일 아침 몸이 아프거나 어려운 일을 겪는 동구민들에게 20∼30통의 편지를 쓰는데 부하직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최근 임파선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중인 박순덕 호적계장에게도 편지를 썼다. 또 구정을 꼬집는 지역민들에게도 꼭 답장을 쓴다.

    임청장이 1998년 6·4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뒤 쓰기 시작한 편지는 공무원과 주민 사이에서 ‘쪽지편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편지를 쓰는 이유를 행정에 대한 신뢰회복과 공무원과 주민 간의 가감없는 대화를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임청장은 그러면서도 ▲구정의 판단과 기준을 주민의 뜻과 반응에 기초하고 ▲피부에 와닿고 주민에게 가깝게 다가서고 ▲기업경영의 사고로 수행하는 낭비 없는 행정을 위해서라고 부연 설명했다.

    따라서 1998년 선거운동 당시 ‘차별화된 행정서비스’를 수차례 강조했던 그의 40개월 구청장직 업무평가는 대개 ‘서비스 맨’으로 모아진다.

    동구청 관할지역인 산내(동구 대성동)에서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부친을 일찍 여윈 그는 두부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5형제 중 넷째로 벽돌공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단체장의 리더십 빛나

    인문계 고교를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했으면서도 형편이 어려워 대학진학을 포기한 그는 9급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방송통신대 진학→7급공무원 시험합격→군복무→제대 후 행정고시 1차합격→야간대편입→행정고시 최종합격의 ‘입지적’인 기록을 거듭했다.

    원호청과 충남도에서 잠시 재직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대전시에서 근무한 그는 1995년 관선 동구청장을 지낸 게 민선 동구청장이 되는 계기가 됐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주변의 도움이 아쉬웠던 때였기에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임기가 보장된 기초단체의 수장이 된 만큼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행정서비스의 향상 아닙니까.”

    그의 이와 같은 발상은 이미 1995년 임명직 동구청장 재직시절 감지됐다. 당시 전국 최초로 ‘행정착오 보상제’를 도입한 것이다. 이 제도는 행정의 잘못으로 민원인들이 헛걸음을 했거나 다시 한 번 구청을 방문하는 일이 발생할 경우 교통비 등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임청장은 자신의 판공비를 쪼개 동구주민에게는 5000원을, 그 외 지역민에게는 1만원을 지급했다.

    민선 구청장에 당선된 뒤에도 젊은 구청장답게 기발하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잇따라 내놓았다. 그중 하나가 1998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행하는 ‘해피콜’제도다. 이 제도는 구청이나 동사무소를 방문한 지역민의 명단을 7, 8명씩 입수해 매일 아침 직접 전화를 걸어 공무원의 친절도, 민원만족도 등을 물어보는 것이다.

    구청장이 직접 나서서 직원들의 태도를 감시하자 불만도 터져 나왔다. 임청장은 이런 불만을 악화로 규정하고 양화로 구축해나간다는 생각을 했다. 즉 친절한 공무원에 대한 민원인의 육성을 직접 녹음해 구내방송을 통해 들려줬다. 불친절한 공무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불친절한 공무원과 이에 격분하는 민원인의 감정을 연극을 통해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발상은 곧 행정서비스 헌장의 제정으로 이어졌다. 행정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기준과 내용,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절차와 방법, 그리고 잘못된 서비스에 대한 시정 및 보상절차 등을 분야별로 정해 이를 주민들에게 약속한 것이다.

    동구청 홈페이지(www.tonggu.taejon. kr)에도 이 내용을 상세히 올려 놓았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노인환자 및 장애인 등 자가목욕이 불가능한 주민을 대전보건대 특수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물리치료 등을 겸한 특수목욕을 실시하는 ‘나누미 건강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1998년, 1999년 2년 연속 행정자치부로부터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고 대통령평가 최우수단체로 선정되는 영광으로 이어졌다.

    “이제 공무원의 행정마인드는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하드웨어입니다.”

    지역발전을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가의 과제와 연결되는 부분이다.

    대전 동구는 5개 기초단체 가운데 가장 낙후된 지역이다. 대전역 주변의 낡은 건물과 재래시장, 그리고 판자촌 등이 모두 대전 동구 관할이다. 서구 둔산 신도심의 대규모 개발로 인구가 급격히 빠져나가 1994년만 해도 31만명에 이르던 구민이 지금은 25만명으로, 해마다 1만명이 동구를 떠나갔다. 그나마 부자들은 모두 빠져 나가고 판자촌, 영세 주택가 및 구형 아파트만 남았다.

    ‘동구비전 2010’

    그는 지역 공무원이 돈 안 들이고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행정서비스의 향상이라면, 다음 과제는 지역개발이라고 말한다. 도시구조개편, 가교경제, 역사와 정이 있는 문화, 자치행정을 추구하는 ‘동구비전 2010’ 과제도 내놓았다.

    “오전 몇 시간만 집무실에 있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현장으로 달려갔어요. 40개월 동안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동구의 발전방향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더군요.”

    그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소형 녹음기에 녹음한 뒤 집무실로 돌아와 정리한다. 매월 여는 동장회의는 해당 주민 2명씩 참여하는 ‘열린 형태’로 개최했다. 주민들의 욕구와 요구를 정리해 자신의 구상과 접목시켰다.

    그의 동구 부흥 계획은 우선 외형적인 측면에서 ▲성남동 소제동 등 판자촌 정리 ▲고속철도 건설에 따른 대전역세권 개발 ▲재래시장 활성화 ▲가오지구 개발 등 도시구조개편으로 모아진다.

    “무엇하나 손 안볼 게 없어요. 행정서비스 수준은 최고로 올려놓았지만 하드웨어 쪽은 너무나 취약해요.”

    그는 문화복지시설을 건설하려 해도 마땅한 부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동구 외곽을 연결하는 동구순환도로 등 대형 사업 실현을 위한 예산확보에도 나서 일부 순환도로는 공사에 착수한 상태다.

    우송대 대전대 등 대학교가 밀집한 지역에 대해서는 과감한 개발을 추진중이다. 새로운 캠퍼스 존을 형성해 젊은 동구를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밖에 시대에 맞는 지역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고 구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이미지통합 마크와 캐릭터도 만들어냈다. 캐릭터 ‘나눔이’는 부지런하고 친절봉사와 화합의 정신을 나타내는 개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동구의 현안에 대한 연구와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관학협력의 ‘동구포럼’도 창설해 지속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포럼에서는 동구 지역경제 활성화방안, 중앙시장문제, 동서관통도로, 역세권 개발, 녹색도시 건설 등이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구청장의 이러한 의지와 노력이 계속되자 서구와 유성구 등 신흥 부촌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빈곤감에 젖어 있던 주민들이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다. 홈페이지에는 구청장과 직원들을 칭찬하는 글들이 오르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