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01 통권 555 호 (p634 ~ 671)
[제41회 2000만원 고료 논픽션 공모 우수작]

한 독립운동가의 운명
 

다 : 구제회(救濟會) 주임은 박재호가 겸임

지방분회와 청년지단은 자체로 조절하되 대체적으로 변함이 없었고 구제회는 과동난(過冬難)을 해결하기 위함이었기에 자연 해소되었다.(박재호 저 ‘주타이 조선민족사’에서)

당시 청년단은 어떤 일을 했는가. 민국 35년(서기 1946년, 단기 4279년) 12월15일에 발간된 지린성 주타이현 한교청년단보(韓僑靑年團報) 제2호에 실린 청년단의 강령과 당면 임무를 보면 청년단의 역할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단보는 이렇게 기록했다.

강령

一 우리는 심신을 수련하여 우리 청년의 소임을 다하려 함.
二 우리는 중한 양국간의 공고한 우호관계를 가지려 함.
三 우리는 우리 사회의 낡은 껍데기를 벗기고 새 생활운동을 추진하려 함
당면 임무
一 정신적 단결과 물질의 제공으로 우리 단체를 공고히 할 것
二 정신적 수련과 신체의 단련을 즉시 실시할 것
三 모든 행동을 우리가 솔선수범할 것
四 국문(한글) 보급운동(문맹퇴치)을 전개할 것
五 소년들의 지도교양을 실시할 것
六 제약부위(濟弱扶危)의 실천을 적극 전개할 것
七 우리 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확보하며 대동단결할 것
八 강제혼인의 제도와 허례폐풍(虛禮弊風)을 반대할 것
九 타지 청년단체와 연락을 긴밀히 할 것
十 주타이현 한국교민회를 지지할 것
十一 확건운동을 활발히 시행할 것
十二 일본화의 습관을 철저히 폐지할 것
十三 한중 양 민족의 친선의 구현을 촉진하기에 노력할 것
본단인사(本團人事) 본단장 : 朴在浩
간사장 : 金義根
간사 : 朴椿德 金壎鳳

동포 위해 구제회 결성

광복 1주년에 즈음하여 박재호는 지난 1년 동안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나는 과거에 같이 살던 사람들과 같이 살며, 또한 여전히 이곳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신진 각계 인사들과 선배들과 손을 잡고 이 과도기 또는 혁명기에 미력이나마 공헌하고 있다.

(주타이현 조선인회 본부 성원에는) 별별 인물이 혼잡하여 형세가 자못 곤란하였다. 자연 도태와 강력한 인물 개조로 일은 잘 되어 갔다. 나는 상임간사의 직무를 내놓고 외무부장의 직무를 맡게 되었다. 나는 성심성의로 모든 유혹과 위험을 무릅쓰고 일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으로 돌진하였다.

나는 처음부터 우리의 당면한 문제해결에 한 힘이 되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둥베이의 새 건설에 협력하고 나아가서 조국건설을 위해 전력을 다해볼까 생각한다. 나는 평화가 곧 도래하며 우리 민족의 완전한 해방이 곧 실현될 것임을 믿는다. 그것을 위해서 동포들은 하나같이 단결하여 자강자립할 것을 바란다.

이와 같이 비장한 각오를 지닌 그는 나름대로 아름다운 희망을 갖고 분투했다.

그러나 형세는 갈수록 준엄했다. 국공(國共) 양당(兩黨), 양군(兩軍)의 격렬한 내전은 둥베이 전체를 전화(戰禍) 속으로 밀어넣었다. 특히 주타이는 정권 교체와 군사 진퇴가 빈번한 고장이 됐다. 따라서 조선인은 생불여사(生不如死)의 처지에 놓였다. 사람들은 포화를 피해 농토를 버리고 피란 다니기에 바빴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이들은 국민당과 공산당 군대의 의심 대상이 되어 가볍게는 문초를 당하고 중할 경우 죽임을 당했다. 조선인은 국공 양대 세력의 틈새에 끼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때 박재호는 동포대중을 위한 사업에 모든 것을 바쳤다. 동지들을 규합해 산더미처럼 쌓인 난제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위만(僞滿·만주국) 때 일제의 힘을 빌려 한족(漢族) 지주의 토지를 강제 수매해 수전을 개척한 인마허 농장에서는 광복과 함께 갈등이 되살아나 중국인과 조선인 간 유혈사건으로까지 연장선을 그어갔다. 중국인이 농산물을 훔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징에 가서 대한민국 청년무장을 불러와 벼 도적을 총살했다. 그 보복으로 한족은 상류에서 인마허 강둑을 터뜨렸다. 농장의 논 전체가 물에 잠겼고 곡식 한 홉 거두지 못했다. 겨울은 다가오는데 모두 굶어 죽을 판이었다.

박재호는 구제회를 결성했고 친히 주임을 맡았다. 그리고 전 현의 민회를 동원해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쌀이 있는 사람은 쌀을 내고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내서 함께 엄동설한을 이겨나갔다.

등 돌린 동족들

단기 4280년 2월3일 오전 10시, 천지간에 어디랄 데 없이 백설이 휘날리는 추운 날씨였다. 박재호는 농사부장 우종현과 함께 전(全)만주 교민회 총회 참석차 주타이를 떠났다. 다음날 창춘에서 선양행 급행열차로 갈아탔다. 3등표라서 이른 아침에 떠난 열차가 오후 5시 선양에 도착할 때까지 곤욕을 치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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