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호

장성택 사고와 핵실험 미스터리

극단으로 표출된 김정일-군부 선명성 파워게임?

  •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팀장 lancer@kida.re.kr

    입력2006-11-06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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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은 왜 연이어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강경조치를 쏟아내고 있는가. 전략적 요인만으로는 납득하기 쉽지 않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평양권력층 내부로 눈을 돌려, 성장하는 ‘혁명 2세대’ 군부지도자 그룹과 김정일 간의 세력갈등이 그 원인일 수 있다는 분석을 소개한다. 충성심 강한 원로 군부지도자들이 은퇴하기 전에 극단적인 강경책으로라도 위상강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 핵실험이 강행되기 직전 전해진 장성택 부부장의 사고설은 평양 내부의 권력투쟁이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는 게 필자의 견해다.
    장성택 사고와 핵실험 미스터리

    김정일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 9월말 그가 평양 시내에서 화물차에 의해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설이 최근 보도됐다.

    7월의 미사일 발사와 10월9일의 핵실험. 평양이 왜 계속해서 폭주(暴走)를 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분석가는 북한이 핵 보유 과시를 통해 서방세계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 가능한 한 많은 보상을 얻어내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한다. 핵 보유로 남북한 군사관계의 우위를 점하는 한편 생존을 보장받으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부 분석가들은 부시 행정부 이래 지속된 미국의 대북 ‘압살’ 정책, 특히 해외의 불법 북한계좌 동결·폐쇄조치가 북한의 반발심리를 자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만으로는 북한의 최근 행태에 대한 설명으로 불충분하다. 협상용으로 핵 보유를 추진했다면 대화를 유지함으로써 시간을 벌고 가능한 한 은밀하게 핵 개발을 지속하는 것이 오히려 협상에 효율적이다. ‘생존을 위한 핵 보유’라는 설명도 한계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이 아무리 국제감각이 떨어진다 해도 미사일 발사 이후 악화된 국제사회와의 관계가 핵실험으로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음을 모를 리 없다.

    ‘미국의 자극’ 주장은 일견 설득력이 있고 타당성도 있다. 그러나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오류가 있다. 2005년 하반기에 진행된 미국의 북한 소유 불법계좌 폐쇄조치는 위폐·마약·돈세탁 같은 국제범죄 차단을 내걸고 시행된 것이다. 북한이 입는 타격이 매우 심각하리라 예상하더라도 불법행위 자체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난센스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미국의 조치에 대해 북한이 보인 반응은 반발심리나 적대감보다는 초조함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는 미사일 발사에서 핵실험에 이르는 북한의 행태에서도 그대로 입증된다. 만일 북한이 정말로 신뢰할 만한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고 ‘안전성이 담보된’ 핵무기를 제조할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면, 이후 표출된 미국 및 서방세계의 비판이나 제재 움직임에 대해 그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대량살상무기 기술을 동시에 보유한 국가로서 느긋하게 비난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협상에 임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최근 대외적으로 보인 행태는 정반대였다.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라는 사회학 용어가 있다. 행위자가 불안감 혹은 논리적 착각에 의해 실제로는 이뤄지기 힘든 목표를 마치 충족될 수 있는 예언과 같이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전후한 북한의 대외 성명이나 입장표명에는 이러한 ‘자기충족적 예언’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사전예고와 더욱 강한 수위의 언급을 반복하는 최근 북한의 행태는 결국 ‘자기충족적 예언의 확대재생산’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미뤄지는 세대교체

    궁금증은 하나로 모아진다. 북한의 이렇듯 납득할 수 없는 초조함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외 여건만을 고려하기보다 평양 권력층 내부의 상황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이미 40여 년간을 ‘주체’의 이념 하에 생활해왔다는 점에서(이는 국제적 고립과 압력을 의미한다) 체제의 내구력만 충분하다면 대외 여건 악화를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 즉 미사일 발사와 마찬가지로 이번 핵실험을 앞둔 북한 지도부의 계산에는 체제 내부의 불안요인을 극복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내재돼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불안요인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왜곡된 당·군 관계와 그로 인해 파생된 정치체제의 잠재적 불안정성에서 찾을 수 있다.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 당시 필자가 지적한 바 있듯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는 김정일의 개인적 권력기반 강화에 기여하는 동시에 기존의 당·군 관계를 왜곡했다(‘신동아’ 2006년 9월호 170쪽 ‘북 정권의 미사일 파워게임’ 기사 참조). 일반적으로 공산권 국가에서는 군의 적지 않은 정치적 영향력과 사회적 기여에도 불구하고 당의 우위가 확실히 보장돼왔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당 대(對) 군이라는 제도와 제도 간의 역학관계를 김정일 개인 대(對) 군이라는 개인과 제도 간의 관계로 변질시켰다.

    제도 대 제도의 관계는 정권이나 체제의 큰 변환이 일어날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한 비교적 안정성을 갖는다. 그러나 개인과 제도의 관계는 개인적 업적이나 카리스마의 부침, 그리고 개인과 제도를 맺어주는 이익의 변화에 따라 공생의 관계가 붕괴될 수 있는 취약성이 상존한다.

    이는 현재 북한의 최고 권력엘리트 그룹의 구성을 살펴봐도 분명히 나타난다. 1998년의 헌법 개정 이후 ‘군사부문의 최고 주권기관’으로 부상했고 사실상의 최고 권력기관인 국방위원회 위원들은 대부분 60대 후반에서 70대의 고령이다. 특히 국방위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군부 인사들의 연령은 70대 이상이다. 반면 ‘혁명 2세대’의 젊은 군부 인사들은 여전히 국방위원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당·정의 주요 간부들을 비교적 젊은 인물로 세대교체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군부가 아직 무풍지대로 남은 것은 결국 군부 내의 혁명 2세대 인사들을 김정일이 충분히 신뢰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현재 국방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6·25전쟁 세대와는 달리 195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혁명 2세대의 장교단은 당에 대한 이념적 충성 못지않게 군사적 전문성과 군의 고유 이익을 중요시하는 성향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모든 공산권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흐름이다.

    6·25세대가 은퇴하기 전에…

    이는 결국 혁명 2세대 장교단에게 있어서는 주체사상이나 공산당에 대한 이념적 동조 못지않게 개인적 입신이나 군부의 이익 역시 충성의 중요한 동기임을 의미한다. 혁명 2세대의 선두주자 오극렬 노동당 작전부장이 1980년대 인민군 총참모장을 맡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다음의 군 실력자로 떠올랐다 실각한 이유가 군내 정치조직의 활동 약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게 많은 탈북자의 증언이다. 혁명 2세대가 지닌 군 고유이익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후 그는 복권됐지만 공식적인 군내 위상은 여전히 과거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념적 충성도가 6·25전쟁 세대에 비해 떨어지는 혁명 2세대 장교들로 노령의 국방위원들을 대체했을 경우 최고권력구도 진입에 성공한 이들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바칠까, 아니면 그의 정통성이나 업적이 약화되면 반기를 들까. 김 위원장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 확신이 부족한 상태로 보인다. 2000년대 이후 연형묵, 백세봉 등의 국방위원회 진입이 암시했듯 김 위원장은 노령화한 국방위원들을 급속히 민간 당·정 간부로 대체하는 대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또한 군부의 반발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즉, 김정일 위원장은 현재의 6·25세대들이 완전히 은퇴하기 전에 군부에 대한 적절한 통제와 숙청을 통해 권력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진 듯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자칫 자신의 권력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엄청난 기세로 성장한 군부를 다루기 위해서는 전통적 우방국인 중·러에 최고지도자로서 자신의 지위를 명확히 하는 한편, 미·일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는 것이 내부적 통제 못지않게 긴요할 것이다. ‘혁명가계(家系)’의 적통(嫡統)이자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의 공동창안자이며 신탁(神託)의 해석자인 내부적 입지에 더해 국제적으로도 북한의 유일무이한 통치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어떤 정치세력도 그에게 도전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김 위원장의 희망과는 달리 미·일과의 관계는 계속 난항을 겪어왔으며, 오히려 미국은 2005년 이후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윤활유로 ‘궁정경제’의 원천 구실을 했던 해외계좌를 옥죄는 우회적 강압외교를 강화했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김정일의 초조함이 군부 이상의 강경책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를 이용한 대외 대결정책이 결국 재래군비 및 군사부문에 대한 자원 우선순위의 유지·강화로 이어진다는 군부의 계산과 동상이몽의 공생 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7월의 미사일 발사 및 10월의 핵실험 강행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미스터리의 열쇠

    문제는 치밀한 준비보다는 심리적 불안감에서 촉발된 ‘자기충족적 예언’의 남발만으로는 대외관계든 대내관계든 안정화를 기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김정일의 매제이자 잠재적 후계자 중의 하나로 거명돼온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의 최근 교통사고설을 일상적인 사건으로만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장성택 부부장은 직접적인 혈족은 아니지만 포괄적 범위에서 김 위원장의 가계에 속하며, 큰형 장성우와 작은형 장성길이 모두 군 고위장성으로 재직하고 있는 등 군부 내에서도 위상이 만만치 않다. 지난 수년에 걸쳐 거듭된 장 부부장의 부침이 김 위원장의 견제심리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김정일 이후를 노리는 군부나 여타 정치세력 역시 장 부부장을 최대의 정적(政敵)으로 견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그가 생명을 위협할 만한 대형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북한 내의 파워게임이 지극히 과격한 형태로, 그것도 현재진행형으로 시작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핵실험과 장성택 부부장의 사고,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의 연결고리에 북한의 계속되는 폭주 미스터리를 풀 열쇠가 들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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