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9.01 통권 576호(p628~658)
 
[권말부록 | 환단고기의 진실]
제2부 - 계연수와 이유립을 찾아서
 
 

1979년 조병윤씨가 출판한 환단고기의 판권 부분. 조씨가 단단학회의 대표로 돼 있다.

이유립씨는 허락도 없이 영인 인쇄를 한 데다 단단학회 대표를 자칭한 조병윤씨에 대해 파문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병윤씨는 승려가 됐다고 한다. 이러한 사단을 겪었지만 조병윤씨가 출간한 환단고기는 외부로 전파됐다.

이 같은 사실은 정연종씨가 쓴 ‘한글은 단군이 만들었다’(조이정 인터내셔날, 1996)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는 환단고기는 1948년(1949년을 잘못 적은 듯) 필사본 초판이 나오고 1979년 재판이 나왔다고 기록돼 있다.

조병윤씨가 환단고기를 출판한 후 이유립씨는 전형배씨에게 오형기씨의 발문을 제외한 환단고기 100부를 영인 인쇄하게 했다. 그러나 오형기 필사본이 안고 있는 오자는 일부만 수정한 채로 영인 인쇄했다는 것이 전씨의 증언이다. 그로 인해 세상에는 오형기씨 발문이 달린 환단고기와 오형기씨 발문이 삭제된 환단고기 두 종류가 등장하게 됐다. 전형배씨의 말이다.

“한자 중에는 모양이 비슷한 것이 많다. 필사를 하다 보면 무자(戊子)년을 무오(戊午)년으로 적을 수 있다. 오형기씨의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오자가 있는데 이유립 선생은 환단고기를 풀어줄 때 구두로 이러한 오자를 수정해주셨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환단고기의 70~80%가 오형기씨 발문이 달려 있는 책을 원문으로 사용한 것이다. 이 환단고기는 이유립 선생이 세상에 내놓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자도 수정하지 못한 것이다. 선생은 환단고기가 후세에 잘못 전해질까 봐 늘 노심초사하셨다. 오류는 연도인 숫자를 적는 과정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숫자 오류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위서 시비를 일으키는 주 원인이 될 수 있다. 환단고기의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면 이유립 선생이 오자를 고쳐주고 주석해준 것을 토대로 번역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국내에서는 1982년 가지마 노보루가 환단고기를 번역 출판하기 전인 1979년과 1980년 환단고기의 영인 인쇄가 있었다. 그렇다면 가지마는 두 책 가운데 어느 것을 원본으로 삼았을까.

가지마의 환단고기에는 그가 구한 환단고기의 원문 사본(寫本)이 실려 있는데, 이 사본은 오형기씨 필사본과 모양이 똑같고 오형기씨의 발문이 붙어 있었다. 이로써 가지마는 한국에서 오형기씨의 발문이 붙은 조병윤씨 발행 환단고기를 입수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박창암씨가 가지마에게 원고 전달”

태백일사의 저자인 이맥이 쓴 태백일사 발문 다음에 오형기씨가 1949년 이유립씨의 부탁을 받아 환단고기를 필사했다고 기록해놓은 발문(오른쪽 사진 중간의 桓檀古記跋이라고 된 데서부터 왼쪽 사진 끝까지). 각 글자 옆에 연필로 쓴 글자는 이유립씨가 오자라고 지적한 것을 전형배씨가 받아 적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취재를 멈출 수는 없었다. 가지마의 환단고기에서는 원문이 실려 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원문을 일본어로 번역해놓은 것이 실려 있다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형기씨 본(本)을 구한 가지마는 자신의 한문 실력으로 환단고기를 번역한 것일까. 아니면 한국에서 누군가가 풀어준 것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일까. 이 의문도 전형배씨가 해답을 주었다.

“이유립 선생은 우리에게 환단고기를 우리말로 풀어주는 강의를 해주셨을 뿐만 아니라, 직접 우리말로 번역과 주석을 해놓은 원고도 갖고 계셨다. 어찌된 이유인지는 모르나 이유립 선생은 이 원고를 ‘자유’지 발행인인 박창암 장군(2003년 작고)에게 줬고, 박 장군이 이 원고를 가지마에게 줬다. 이유립 선생은 자신의 원고가 일본으로 간 것을 알고 나로 하여금 박 장군을 찾아가 원고를 돌려달라고 요구하게 했다.

내가 박 장군을 찾아가 ‘원고 주인이 돌려받고자 한다. 출판되지 못하는 원고라면 빨리 주인에게 주어야 한다”고 하니 박 장군은 화가 나서 내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발길질까지 했다. 박 장군은 이유립 선생이 주해한 환단고기를 일본어로 내준다는 조건을 걸고 가지마에게 원고를 넘긴 것으로 안다. 그 난리를 치고 나서 원고가 돌아왔는데, 돌아온 것은 이 선생이 직접 쓴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이었다.

선생님의 원고를 가져간 가지마는 대종교를 배신한 강모씨의 설명을 덧붙여 환단고기를 일본 신도에 유리한 쪽으로 해석해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유립 선생은 박창암 장군과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되었다. 박 장군도 결국 가지마에게 당한 셈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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