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호

盧측이 ‘e지원’ 봉하마을로 가져간 진짜 이유는?

‘연구와 저술 위해’ vs ‘MB 정부 공격할 무기’

  • 최호열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08-08-12 1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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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와대 기록물 복사 유출, 사저에 청와대와 똑같은 시스템 구축
    • 노측, 여권 정치인 등 수만명 비리 담은 인사파일 없다
    • 여권, 청와대 자료 유출과 ‘민주주의 2.0’ ‘봉하재단’ 상관관계 주목
    • 여권, MB 정부 정책 태클 걸며 정치적 극대화 노릴까 우려
    • 노측, “연구 저술이 목적. 현실정치 개입할 생각 없다”
    • 대통령도 볼 수 없는 ‘열람제한’ 국가기밀문서 盧만 열람 가능
    盧측이 ‘e지원’ 봉하마을로 가져간 진짜 이유는?
    전·현직 대통령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 자료 불법유출’ 공방이 쉽게 사그러들 것 같지 않다. 현 대통령 측은 ‘불법 유출한 자료의 조속 반환’을 요구하고 있고, 필요하면 검찰 수사까지 의뢰할 태세다. 이에 대해 전 대통령 측은 ‘전직 대통령 흠집내기’라며, 국가기록원이 재임기간 중 자료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에서 원격 열람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춰줄 때까지는 자료를 반환할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현 대통령실 주장은 이렇다. 올 3월, 대통령실의 한 행정관이 청와대 내부전산망에 남아 있던 이전 정권 대통령비서설 자료를 검색하던 중 2007년 5월경 작성된 ‘퇴임 후 국가기록물 활용에 대한 계획’이란 문건을 발견했다. 여기엔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의 기록물 전체가 ‘퇴임 후 활용대상’으로 분류돼 있었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까지 담겨 있었다는 것.

    盧측이 ‘e지원’ 봉하마을로 가져간 진짜 이유는?

    정진철 국가기록원장(오른쪽) 등 조사반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지고 나온 청와대 기록물을 조사하기 위해 7월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하고 있다.

    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 측이 지난 2월 청와대의 모든 기록물을 복사했을 뿐 아니라 봉하마을 사저에 청와대 내부 통신망과 똑같은 이지원(e-知園) 시스템을 구축했음을 확인했다. 이지원 시스템으로 작성된 문서 파일은 특정 암호화 기능인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설정해놓으면 다른 프로그램에서는 열리지 않기 때문에 청와대 기록물을 봉하마을 사저에서 보기 위해 이지원을 구축한 것이다.

    현 대통령실은 “청와대 문서는 국가기록물이다. 따라서 국가에 귀속시켜야지 개인이 밖으로 유출하는 것은 불법이다. 빨리 원상복귀시키라”고 요구했다. 특히 “노 전 대통령 측이 기록물을 일부 복사한 것만 국가기록원에 넘기고 원본 하드디스크를 들고 나갔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국가기록원도 노 전 대통령 측에 공문을 보내 봉하마을 사저에서 사용 중인 이지원 시스템의 온라인 연결 중단 등 보안조치를 취해줄 것과 자료의 원상 반환을 공식 요청했다.

    불법 vs 정당한 권리



    반면, 노 전 대통령 측은 “기록물을 복사해 가져온 것이며, 이는 전임 대통령으로서 정당한 열람권 행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전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동안 생산한 모든 기록물에 대한 완전한 열람권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국가기록원엔 이지원 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고, 언제까지 설치해주겠다는 확답도 없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람하기 위해 임시로 사본을 만들어 가져온 것이라는 주장이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국가기록원에 제출한 기록물을 원격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바로 반납하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정권을 인계할 때부터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이지원 시스템과 자료 복사를 현 대통령 쪽에 요청해 허락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 대통령실은 이를 허락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다.

    노 전 대통령 측의 설명은 이렇다.

    “이 문제에 대해 3월 말부터 협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이 김백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과 협의를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도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협의했다. 현 대통령 측이 열람권을 어떻게 보장해줄 것인지 설명해주겠다고 해 그 대답을 기다리는 중이었는데 일방적으로 언론에 흘린 의도가 의심된다. 순수하지 않은 어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전임 대통령의 도덕성을 고의로 훼손하는 것에 대해 좌시하지 않겠다.”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을 백번 이해한다 해도 국가 소유인 대통령기록물을 정부기관이 아닌 곳에서 관리하는 것 자체는 위법 소지가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물론 현행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국가기록원장은 전직 대통령의 기록물 열람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는 등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기록원에서는 서둘러 편의시설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보완할 문제이지, 그것이 국가기록원의 공식 인증 없이 기록물을 사저로 옮겨 보유하는 것을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한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공방 과정에서 현 대통령 측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 측이 국가기록원에 자료를 다 넘기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2월20일 대통령기록관 발표에 따르면, 이관받은 자료가 400만건이 넘는다. 또 6월27일에는 분류 기준 변경(화면 하나를 텍스트, 동영상, 첨부파일로 나누는 등)에 따라 실제 건수는 825만건이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원칙대로 이지원에 있던 기록물 대부분을 넘긴 셈이다.

    기록물의 외부 유출 우려에 대해서도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공보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서버실은 사저 내에서도 통제구역으로 2중으로 잠금장치가 되어 있고, 외부 네트워크와도 독립돼 있다”며 “오직 노 전 대통령만이 열람할 수 있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가상 온라인 공화국?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막대한 분량의 재임 중 기록물을 봉하마을 사저로 가져간 것일까. 노 전 대통령 측은 ‘항상적인 연구와 저술활동을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에게 임기 중 기록물은 1년에 한두 번 가서 보는 박물이나 기념품이 아니다. 늘 연구할 대상이다. 따라서 현 대통령실에서 말하는 것처럼 경기 성남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와서 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기록물 유출 관련 주요 쟁점 주장 비교
    청와대 측 노 전 대통령 측
    사전 상의 여부 허락한 적 없다 논의 중이었다
    기록물 유출의 위법성 불법. 국가기관 내에서만

    보관할 수 있다
    전임 대통령의 정당한 열람권 행사로

    일부 절차의 문제 있지만 위법 아니다
    자료 반환 여부 즉각 반환해야 한다 열람서비스 보장되면 반환하겠다
    국가기록원 자료 이관 일부 누락됐다 다 넘겼다
    원본 유출 여부 하드디스크 통째로 유출했다 원본 파기했고 복사본을 보관 중이다
    해킹, 외부유출 가능성 전문가 손 거치면 유출 가능하다 2중잠금장치 되어 있고,

    외부 네트워크와 독립되어 있다.
    인사파일 유출 유출한 흔적을 찾았다 인사파일은 없다. 처음부터 인사파일은

    이지원 시스템과는 다른 시스템에 있었다
    보관 의도 현 정부 정책 비판 통해 정치 재개 연구 및 저술활동이 목적


    반면, 현 여권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행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나라당 남경필 의원은 “청와대 자료 유출 사건이 단순한 전임 대통령의 정보 접근권 보장 문제일까 의문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봉하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고, 곧 ‘민주주의 2.0’이라는 새로운 토론방이 열린다고 하는데 굳이 청와대에서 쓰던 것과 똑같은 시스템을 봉하마을에서 구동시키고 정치토론방을 열어 네티즌들을 모아야 할 필요성은 다른 데 있지 않겠느냐”는 것.

    ‘민주주의 2.0’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2개월 전부터 측근들에게 구축을 지시한 토론 사이트로, 김종민 전 청와대 대변인이 주도해 구축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한 주간지 보도가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한 친노 측근은 “단순히 홈페이지 만들어 게시판에 글 올리고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사안별로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별로 책임자를 정하고, 그 속에서 아주 폭넓은 의견과 토론을 벌이도록 한 다음 의미 있는 내용은 정책 대안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즉 참여하는 네티즌들은 국민이 되고 책임자는 장관이 되는, 소위 말해서 인터넷상의 가상 온라인 공화국을 만드는 것이 이 사이트의 목표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그 후 “온라인 공화국이니, 장관이니 하는 표현은 비유였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고 번복했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

    盧측이 ‘e지원’ 봉하마을로 가져간 진짜 이유는?

    대통령의 통치 자료 등 정부기록물을 보존하는 한국국가기록원.

    현재 시험운영 중인 이 사이트를 검색해본 결과, ‘온라인 공화국’이라 할 만큼 거창하지도 않고, 주제별 책임자를 장관이라 하기엔 주제가 협소했다. 사이트가 언제 정식 오픈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그러나 10만명의 열성회원으로 이뤄진 노사모(노무현 전 대통령 팬클럽)가 이 사이트를 적극 활용할 때 생겨날 힘은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이곳에서 앞으로 각종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정치세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이 보유한 고급 정보가 제공된다면 다음의 아고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네티즌의 강력한 힘을 경험한 이명박 정부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열람제한’

    盧측이 ‘e지원’ 봉하마을로 가져간 진짜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 사저에 청와대 재임 중 기록물을 보관, 그 목적을 두고 정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노 전 대통령 측의 주장은 다르다. 한 측근은 “‘민주주의 2.0’에 정치적인 의도나 색깔은 없다.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하는 사이버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일 뿐 현실정치에 개입할 생각은 없다”며 독자적인 정치세력화 의도로 비치는 걸 경계했다. 적어도 봉하마을 쪽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노무현의 복심’인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도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 2.0’이라는 광장을 제공하는 것뿐, 정치적으로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봉하재단에 대해서도 천 전 대변인은 “정치적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농촌, 환경과 관련한 것을 중심으로 지원하는 주식회사의 개념이 더 정확하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의 최대 고민은 봉하마을로 유출된 기록물이 현 정부 정책에 태클을 거는 고급 자료로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단순히 인터넷에서 상왕 노릇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결정적 자료들을 근거로 오프라인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정부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한 기록물만 800만건이 넘는다. 청와대는 이보다 더 많은 기록물이 봉하마을 사저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원에 기록물을 제출하며 전체의 약 4%인 37만여 건에 대해 ‘열람제한’을 해놓았다. 열람제한 기록물의 경우 노 전 대통령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지만 현 정부는 열람이 불가능해 내용을 파악할 수도 없다. 이 중에는 국가정보원, 북핵, 미일외교, 6자회담 관련 등 국가기밀 문서나 중요 문서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권이 우려하는 게 바로 이 점이다. 정보전쟁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는데, 진보진영 인터넷 논객이나 친노 정치인들이 이 자료를 이용할 경우 정부가 곤경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것. 물론 국가기밀 사항을 공개하면 법적으로 처벌받지만, 어디까지나 뒷북치기여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칫 민감한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봉하마을이 주도하는 인터넷 여론과 정치 공세에 맞서느라 정부가 행정력을 소모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인사파일도 폭발력을 갖고 있다.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이 주도해 작성한 인사파일은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의 검증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현 여권 인사들을 비롯한 정치권 인사에 대한 비리자료까지 포함된 이 자료가 노 전 대통령의 손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파일 유출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인사파일이 복사된 흔적을 발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사기록 유출에 강한 의혹을 제기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 측 천호선 전 대변인은 “인사파일은 없다. 처음부터 인사파일은 이지원 시스템과는 다른 시스템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다른 관계자도 “우리는 이명박 당선인 시절에 이미 인사파일을 비롯한 각종 자료 제공 의사를 타진했으나 그쪽에서 거절했다”며 처음부터 이런 자료를 독점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공격 목적 없다’

    천 전 대변인은 “전임 대통령의 연구 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는 정치적 발언도 존중해야 한다. 저쪽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기록물을 가지고 자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쓸 수 있다는 의심이 드나 본데, 결코 그런 목적은 없다. 이것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노 전 대통령과의 갈등이 ‘자료 불법 유출 공방’에서 더 나아가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져간 자료를 노 전 대통령 측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문제 제기는 지금 단계에선 비약이라고 본다. 그건 차후 문제이고, 지금 우리의 입장은 ‘법을 만든 사람이 그 법을 안 지키는 게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고 빨리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노 전 대통령 측이 가져간 자료는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게 문제다. 가져간 기록물이 이지원 시스템에서만 열린다고 하지만 전문가의 손을 거치면 다른 시스템에서도 볼 수 있다. 특히 누군가 국가기밀을 공개하면 걷잡을 수 없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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