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

  • 입력2012-06-21 08: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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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바라는 대통령’이라는 주제로 생각을 정리해보라는 주문을 받고 보니 벌써 5년이란 세월이 흘렀나 싶다. 쏜 화살처럼 빠른 세월이라고는 하지만 돌아보니 해놓은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서글프다. 개인적으로는 해놓은 일이 없다고 해도 나라가 잘 돌아가면 그런대로 위안이 될 것 같으니 지난 5년을 정리해보는 것도 좋겠다.

    대외적으로는 분명 대한민국의 품격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온다. 올해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를 비롯해 2010년에는 G20 정상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와 같은 정상들의 국제회의는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규칙을 만드는 지구촌 최상위의 협의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모임에 옵서버 자격으로도 참석할 수 없었던 시절과 비교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을 느끼게 되는 것은, 오랫동안 우리나라가 이런 모임에서 만드는 규칙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지켜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당당히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개발도상에 있는 국가의 처지도 고려한 규칙을 제안하고 구체화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서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시작돼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이어져 악화된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나라로 선진국조차 부러워한 바 있으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 상황은 최근 불거진 그리스를 비롯한 몇몇 유럽 국가의 재정붕괴 사태로 인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경계경보가 발령되고 있는 참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은 이토록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국내 상황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현 정권은 2008년 광우병 사태로 100여 일에 걸쳐 온 국민을 혼란 속에 방치했으며 집권 기간 내내 갈팡질팡했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진보건 보수건 가리지 않는다는 실용주의를 내세운 것이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으나, 경제가 철학을 만나지 못한 게 우왕좌왕한 원인이 아닌가 싶다.

    2007년 대선에서 참여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것은 실망스러운 그들의 진보적 정치실험에 국민이 극심한 피로와 염증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심판을 받은 이들은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고 새로이 국민의 뜻을 얻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새 정권이 기획한 정책을 채 펼치기도 전에 뿌리부터 흔들어댔다. 대표적인 것이 2008년 광우병 사태라고 할 수 있다. 곱게 물러날 수 없다고 몽니를 부린 셈이다. 현 정권은 잘못된 일을 단호하게 바로잡았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철학이 없으니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은 집권 초기부터 눈총을 받았던 한 줌도 되지 않은 인적자원의 돌려막기와 능력보다 권력과의 거리가 인사원칙의 윗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여기에 더해 친인척을 포함한 측근비리마저 불거져 입지를 더욱 좁히고 있으니 대권에 뜻을 둔 인사라면 반드시 현 정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진 복지 요구가 심각한 사회의 분열로 이어지게 될 것을 우려한다. 진보 진영이 단골로 내세우는 유럽식 사회복지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은 유럽발 금융위기에서 우리가 읽어야 할 교훈이다. 누구나 똑같은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사회는 인간이 구현할 수 없는 이상적인 유토피아에 불과하다.

    나는 민심을 자극하는 인기영합적 정책을 내놓는 지도자를 경계한다.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에 나오는 크레온왕처럼 자신은 고통스럽지만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고 보니 전 영국 총리 대처가 그랬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면 좋겠다

    양기화<br>1954년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의학박사

    정치 지도자들이 말실수로 곤경에 빠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悠兮 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유혜 기귀언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이라 했다. 이 문장을 새기면 다음과 같다. “(훌륭한 지도자는) 말을 삼가고 아낍니다. (지도자가) 할 일을 다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리에게 저절로 된 것이다’라고.”

    월러 뉴엘 칼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위대한 지도자에게는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과장이 섞이지 않은 진솔하고 감동적인 표현력을 비롯한 열 가지 덕목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의 대통령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아니라고 말할 때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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