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대중교통 인정’ 뺀 ‘택시지원법’이 합리적 절충안

택시법

  • 고승영│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대한교통학회장

    입력2013-02-20 16: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국회는 올해 초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에 관한 법률’(일명 택시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청하며 거부권을 행사하고 국민의 반대여론이 거세 국회가 재의결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택시법은 어려워진 택시업계가 수년 전부터 요구해온 사안이다. 지난해 6월 택시업계 노사가 서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 뒤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택시법 관련 논의가 본격화했다. 택시법은 택시의 대중교통수단 인정, CNG(압축천연가스) 등 연료 다변화, 요금 인상, 감차 보상 그리고 LPG(액화석유가스) 가격 안정 등 5대 요구사항을 담고 있다.

    수요 줄어도 면허대수 늘어

    택시업계의 어려움은 택시 대수는 증가하는데 택시 수요는 감소하고, LPG 가격은 오르는데 택시 요금 인상은 억제된 탓에 운영 수입이 줄어 택시 운전자가 낮은 임금에 시달리는 현실에 기인한다. 택시 수요는 자가용 보급 확대, 대중교통 서비스 개선, 대리운전 활성화 등으로 지난 15년간 23% 감소했다. 하지만 면허대수는 오히려 24% 증가했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래 택시 면허대수는 20만 대에서 25만 대로 늘어 공급과잉이 심각하다. LPG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지만 택시 요금은 물가관리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억제됐다. 그러다보니 택시 운전사의 임금은 월 150만~180만 원 수준으로 열악하다.

    택시업계가 살길을 찾아 사회적 배려를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버스 운전사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고 사회적으로도 대중교통으로 대접받는 현실에서 ‘택시도 대중교통이 되면 여건이 좋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그러나 그 해결방안이 표(票)를 무기로 정치권을 동원한 택시법뿐인지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정부는 연 8247억 원을 택시업계에 지원했고, 지자체에서도 상당한 예산을 지원했다. 그런데 택시법이 시행되면 적자 보전, 택시요금 소득공제, CNG 차량 개조비용 지원, 택시 감차 보상 등으로 연 1조~2조 원의 국민 혈세를 추가 투입해야 한다. 또한 만에 하나 택시가 버스 전용차로를 운행하게 되면 버스 전용차로는 그 기능이 마비될 것이 분명하다.

    택시업계는 택시법이 통과되더라도 재정 지원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재정 지원 없는 택시법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택시업계가 잘 알 것이다.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택시법이 시행된다 해도 정작 택시 운전사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택시업계에 여러 가지 지원이 이뤄진다 해도 특별한 기술을 요하거나 자격제한이 까다롭지 않은 택시 운전사 노동시장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 혜택은 택시 운전사보다는 택시업체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다. 택시 운영 수입의 대부분이 택시회사로 들어가고 그 일부가 운전사에게 임금으로 지급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저렴한 임금으로 대체 가능한 노동시장이 있는 한 각종 혜택이 택시 운전사에게 돌아가기 쉽지 않다. 국회에서 택시법이 통과된 이후 대부분의 법인택시 운전사들이 택시법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택시법의 실체를 이해하게 된 국민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반대 여론을 쏟아내고 있다.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는 택시법에 대해 ‘포퓰리즘 법안으로 문제가 있다’는 응답이 67%에 달했고, ‘문제가 없다’는 답변은 17%에 불과했다. 국회가 택시업계의 입소문 여론 전파 능력을 의식해 택시법을 성급하게 통과시켰다는 것이 국민 여론인 셈이다.

    수송효율 낮은 택시

    일반적으로 대중교통수단은 수송효율이 높을 뿐 아니라 외부효과를 유발하고, 노선과 스케줄, 요금체계가 정해져 있어 아무나 이용할 수 있는(公共·public) 것으로 정의된다. 대중교통을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택시는 수송효율을 나타내는 실차율(주행거리 중 손님을 태우고 영업하는 비율)이 낮다. 서울시의 경우 2011년 택시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 434km 중 손님을 태우고 영업한 거리는 257km로 실차율이 59% 수준에 불과했다. 운행시간 기준 실차율은 41%로 더 낮았다. 서울 택시 2대 중 1대는 빈 차로 운행하는 셈이다.

    더욱이 하루 434km를 운행하는 택시는 자가용보다 10배의 교통량을 유발한다. 수송효율이 낮은 교통수단이 많이 운행한다는 것은 도로교통이 혼잡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만큼 교통사고율이 높아지고 에너지 효율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운송효율이 낮고 외부 편익보다 사회적인 비용을 유발하는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보고 교통정책을 펴는 나라는 없다.

    더 큰 문제는 택시업계의 어려운 여건을 택시 대중교통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오인하는 점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택시와 택시 운전사, 그리고 택시업계의 문제는 별개다. 택시 운전사와 택시산업이 어렵다고 교통수단으로서의 택시가 무작정 대중교통이 돼야 한다는 정치적인 접근은 문제해결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먼저 대중교통수단으로서 택시 고유 기능을 다하도록 하려면 줄어드는 택시 수요에 맞춰 감차(減車) 등 구조조정을 통해 택시 공급을 조절하는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연료비 인상 등에 따라 원가에 맞는 수준으로 요금 수준을 책정하려는 노력은 그다음 문제다. 특정 이용자의 교통수단인 택시의 원가와 요금의 차이를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서는 안 될 것이다.

    택시의 운행 여건을 개선하려면 택시 정차장과 대기 공간을 확충하고 공영 차고지를 만드는 등 시설 개선도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택시 운전사의 열악한 근무여건과 낮은 임금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접근도 요구된다.

    정부는 택시법의 대안으로 택시산업 구조조정을 통해 국민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택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를 담아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일명 택시지원법)을 마련했다. 택시 총량제, 감차 보상, 개인면허 발급 감소 유도, 택시 운전자격 관리 강화 등 과잉공급을 해소하고 수급조절 관리를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근로시간 상한제와 운송비용 전가 금지 등 택시 운전사 근로여건을 향상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또한 요금 다변화 및 현실화, 차고지 건설 지원, CNG 차량 개조비용 지원 등 택시산업의 경쟁력 향상 방안도 담았다. 택시지원법은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하는 것만 제외하면 국회에서 통과시킨 택시법이 요구하는 내용을 대부분 수용했다.

    장기 발전 틀 마련해야

    택시 운전사를 포함한 택시업계는 택시 발전방향을 놓고 정부와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정치력만 믿고 택시법을 또다시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국민의 신뢰를 잃는 것은 물론 실속도 챙기기 어려울 수 있다. 정부도 택시업계와 택시 운전사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택시업계가 요구하는 사항을 최대한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택시법에 대한 국민의 반대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정부에 공을 넘겼다. 그러고는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면 보란 듯이 재의결로 택시법을 밀어붙일 기세다. 그동안 정치권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온 각종 택시 관련단체가 정부의 해결방안에 귀를 기울여 협상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에서 토론회와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국민 대다수의 뜻에 반하는 택시법을 재의결해선 안 된다. 택시업계, 정부, 국회가 하루빨리 국민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택시산업을 장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논점 2013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