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유명무실 사면심사위 힘 실어야 특사 오·남용 논란은 ‘민주화’ 증거

특별사면

  • 신평│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한국헌법학회장

    입력2013-02-21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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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무실 사면심사위 힘 실어야 특사 오·남용 논란은 ‘민주화’ 증거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로 1월 31일 최시중·천신일 씨가 출소하자 시민들이 이에 항의하며 돈과 두부를 자동차에 던졌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임기 만료를 1개월도 채 남겨두지 않은 1월 29일 특별사면(特別赦免)을 단행했다. 이를 계기로 특별사면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커다란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국가수반이 갖는 사면권은 어느 나라에서건 보편적으로 합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는 과거 군주의 은사(恩赦)제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면권은 국가의 최종 공권력 행사로 내려진 사법권의 판단을 변경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률과 재판의 불완전함, 법적 재판과 다른 사회적 가치와의 조화를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려는 목적에서 이용된다고 흔히 알려져 있다.

    “잘못된 사면” vs “과거 정부도…”

    그러나 우리와 같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사면권 행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는 견해가 두드러진다. 비판론자들은 사면권 자체가 군주 시대의 유물이니 이제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 정신에 어긋날뿐더러 대통령의 권한을 기형적으로 키워 법질서를 혼란시킨다는 이유에서다.

    사면에는 일반사면과 특별사면이 있다. 일반사면은 우리 헌정사에서 도합 7차례 행해졌으나 이에 대해서는 특별한 비판이 제기되지 않았다. 아마 특별한 정치적 고려 없이 행해졌고, 또 국회의 동의 절차를 거쳤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사면은 김영삼 정부에서 8차례, 김대중 정부에서 6차례, 노무현 정부에서 9차례 행해졌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 8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횟수로 보면 이명박 정부에서 유별나게 많이 행사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사면이 크게 주목받은 것은 임기 종료 직전 행사된 데다 그 대상자에 대통령 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측에서도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 측은 이 정도의 사면은 역대 정권에서 모두 해온 것 아니냐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미국에서도 사면권의 행사가 잘못된 사법권의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편의를 위해 부당하게 남용된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가장 유명한 예는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고 난 후 대통령이 된 제럴드 포드가 1974년 9월 닉슨을 사면한 것이다. 포드 대통령은 이로 인해 재선(再選)에 실패했다.

    특사엔 사면, 감형, 복권 포함

    이 밖에도 베트남전쟁 징병 회피자에 대한 사면(카터), 이란-콘트라 사건 연루자에 대한 사면(아버지 부시), 임기 마지막 날 대통령 측근이 포함된 사면(클린턴), CIA 비밀요원 신분 누설 사건의 배후조종자인 루이스 리비에 대한 감형(아들 부시) 등의 사례들도 모두 논란이 됐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이 떳떳치 못한 것이긴 해도 극히 부도덕한 것으로 비난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 사회가 더 투명해지고 민주화하는 과정에서 그 문제점이 불거져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헌법과 사면법에 의해 인정된다. 헌법 제79조는 제1항에서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고 하고, 제2항에서 “일반사면을 명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한 뒤 제3항에서 “사면·감형 및 복권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하였다. 그 법률이 바로 사면법이다.

    용어 사용에 혼동을 초래할 수 있어 좀 더 면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헌법과 사면법에서 말하는 사면, 감형, 복권을 모두 합해서 넓은 의미의 사면이라고 한다. 이것은 과 같이 사면, 감형, 복권으로 나뉜다.

    유명무실 사면심사위 힘 실어야 특사 오·남용 논란은 ‘민주화’ 증거
    사면, 감형, 복권은 모든 사람에게 그 효력이 미치는지, 특정인에게 한정되는지에 따라 다시와 같이 세분된다.

    이번에 문제가 된 특별사면은 바로 위의 표에서 보는 것 중 특별사면, 특별감형, 특별복권 세 가지 모두에 두루 걸쳐 있다.

    일반사면은 국회의 동의절차를 거치도록 하는 헌법상 한계가 설정되어 있으나 특별사면은 그렇지 않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해 헌법의 일정한 내재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특별사면이 과연 이런 한계 내의 것인지 살펴보면 흥미롭다. 내재적 한계론에서 제시되는 것 가운데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헌법상의 권력분립 원칙에 비춰 사면권 행사는 형을 선고한 사법부의 판단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그것을 행사하기 전에 사법부에 의견을 묻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사면권은 국가이익이나 국민화합을 위해 행사돼야 하는 한계를 지닌다. 셋째, 사면권자의 일방적 자의(恣意)가 아니라 보편타당한 평등의 원리에 입각해 행해야 한다.

    이들 3가지 기준을 적용해본다면 이번 사면은 이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우리가 반드시 논의할 것은 대통령의 부당한 사면권 행사, 즉 사면권의 오·남용이 향후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점이다. 하물며 특별사면을 받기 위해 수억 원대의 금품이 오가는 지하시장까지 형성되어 있다는 내용의 보도마저 나온 상황이다.

    과거에 사면권이 일정한 기준 없이 마구 행사됐다는 비판이 나와 2007년 12월 21일 사면법 일부개정에서 특별사면 전에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이에 따라 특별사면은 사면심사위원회의 심사와 법무부 장관의 상신, 대통령의 명에 의해 이뤄진다. 그러나 문제가 된 이번 사면을 보면 이와 같은 제도개선에 별다른 실익이 없었음이 입증됐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우선 사면심사위원회의 운영을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사면 대상 범위 규정해야

    현재 사면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 외에 8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을 전원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다. 법무부 장관의 뜻에 따라 위원회가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위원을 구성할 때 국회나 사법부의 뜻이 상당히 반영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 사면법에서는 위원회의 회의록을 사면 후 무려 5년 동안 비공개로 한다고 규정했는데, 이것도 재론의 여지가 있다. 필요할 경우 회의록이 언제든지 공개될 수 있도록 개정해 위원들이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해야 한다.

    사면 대상자를 선정할 때도 그 범위를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대부분 정치적 고려에 의해 사면 대상자를 고르다보니 그 기준이 매우 자의적이다. 고위층 비리사범, 대기업 경영인, 정치인 등에 대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가령 헌정질서 파괴범, 권력에 기생한 부정부패사범, 악질적인 기업범죄사범 등은 사면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한 기준을 사면법에 규정한다면 사면권의 부당한 오·남용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면권이 행사될 때 그 대상자로 포함된 사람들에 대해 반드시 사법부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 사면권 행사는 사법부의 판단을 바꾸는 것이니만큼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에 대통령의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해 최소한의 의견을 표명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또 그런 사전적 통제장치 외에 사면권 행사에 대한 법적인 사후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예컨대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이 사면권 행사에 대해 행정소송으로 그 부당함을 다툴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사후 약방문이긴 해도 만약 이러한 법규정들이 있었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그처럼 쉽게 사면을 단행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논란을 거치며 우리는 더욱 민주화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그 모든 과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는 있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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