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호

“3자 회담도 안 받는 건 청와대의 정치 실종”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3-08-22 11: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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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주알고주알 다 까놓고 남북대화하자?”
    • “여당도 국정원이 할 일 딱 정해줘야”
    “3자 회담도 안 받는 건 청와대의 정치 실종”
    국정원 댓글, 허위 수사 발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NLL(북방한계선) 포기 논란, 대화록 원본 증발. 비슷한 듯 다른 다섯 사건이 정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여권은 여권대로 국정조사, 검찰고발, 장외투쟁 등 각종 정치적 수단을 풀가동하는 양상이다.

    여권 비난하는 목소리들

    여권은 이 문제로 정권의 정당성에 금이 가는 점을 우려한다. 연쇄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내려가고 국정운영 동력이 떨어지며 10월 재·보선과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불리한 이슈(댓글, 허위 수사 발표)는 최소화하고 유리한 이슈(NLL 포기 논란, 대화록 원본 증발)는 부각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여야 간 공방으로 감춰진 진실이 일부 드러나고 공직자의 일탈행위에 일정 정도 제재가 가해진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비판의 목소리가 더 높다. 특히 여권에 대해선 야당과 마찬가지로 ‘정파적 이해에 너무 몰입한다’ ‘사안을 균형감 있게 처리하지 않는다’ ‘정치를 실종시켜 사회에 유·무형의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있다’는 비난이 뒤따르고 있다.

    국회 부의장을 지낸 정의화 새누리당 의원(5선)은 ‘중용(中庸)의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는데, 이번 국정원 사태와 NLL 정국을 놓고 그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 국가정보원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죠. 여권의 처지에선 야당 공세를 희석시킨 이득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론적으론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된 일을 갖고 미래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되죠. 노무현, 김정일 두 분이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또 이분들이 무슨 합의를 봤든 현실화한 게 없잖아요. 이로 인해 NLL에 문제가 생겼다든지, 우리나라가 불이익을 보았다든지 그러면 다른데. 지나간 일을 정치적 목적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소탐’입니다.”

    ▼ ‘대실’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게 하나는 경제, 다른 하나는 통일 아닙니까. 남북 화해와 교류 증진을 위해선 무엇보다 양 정상이 자주 대화해 신뢰를 쌓아가는 게 중요해요. 1년에 몇 번이라도 만나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대화 내용이 미주알고주알 다 까발려질 우려가 있다면, 공개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있다면 진실한 대화를 하기 어려워지죠. 이게 ‘대실’입니다.”

    ▼ 그러나 정상 간 대화라도 아무 이야기나 해선 안 되겠죠?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해야겠죠. 노무현 대통령의 NLL 관련 발언엔 이런 게 없었어요. 남북 문제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가면서 속도가 붙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국민적 합의 도출이 필요합니다. 앞 사람이 한 것을 인정하는 자세도 필요하고요. 지금까지는 역주행한 것이라고 봐야겠죠.”

    ▼ 대화록 원본이 실종된 건 끝까지 규명해야 한다고 보나요?

    “못 찾은 건지, 없는 건지 더 세밀하게 봐야겠지만…. 조선시대엔 임금 옆에 있는 승지만이 임금의 말을 사초(史草)에 기록했어요. 그러니 사초가 희소성이 있었고 중요했어요. 요즘엔 대통령의 말을 언론도 기록하고 인터넷도 기록하고 다 남아요. 국회 속기록이라는 사초를 통해서도 남고요. 일반적으로는 이렇게 비중이 좀 달라졌어요. 그러나 남북정상회담 대화 같은, 대통령의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발언은 반드시 대통령기록물로 보관해야 합니다. 법으로도 그렇게 하도록 했고요. 이것을 보관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큰 잘못이죠. 나라가 제대로 가려면 각자가 제 할 일을 해야 해요. 일을 안 하면 기강을 잡아야 합니다. 또한 ‘대통령이 되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다’ 이러면 안 됩니다.”

    ▼ 현재 여야가 국회와 광장에서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는데요.

    “천 가지, 만 가지입니다. 국회가 지금 처리해야 할 것들이요. 전셋값, 청년실업, 고령화, 저출산…얼마나 많습니까. 정치권이 움직여야 언론이고 전문가가 따라와주는데 손놓고 있어요. NLL 문제는 이쯤에서 정리해야 하지 않나요? 우리 경제 체질이 굉장히 허약해졌습니다. 이런 데 신경 써야 해요.”

    ▼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건, 민주당이 워낙 공세를 펴니 방어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 아닐까요.

    “정치란 어떤 의도를 갖고 하지 않아도 그렇게 비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한 거죠.”

    ▼ 검찰이 기소한 것으로 봐선 국정원이 정치에, 선거에 개입해왔다는 의심은 충분히 해볼 만한 것 아닌가요?

    “그것은 그렇게 의심해볼 여지가 많죠.”

    ▼ 야당은 그런 부분을 갖고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주장합니다만.

    “그래서 우리 당 안에서도 뜻있는 많은 분이 차제에 국정원에 대해선 뭔가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국정원이 이름도 바뀌고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개연성이 있어 보여요. 나도 ‘뭔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어요. 이번 기회에 국회가 국정원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해야 할 일을 딱 정해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여당이 대선 정당성이 훼손될까봐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는데요.

    “10만 표, 1만 표도 아니고 100만 표 넘게 이겼는데…. 여당이 대선 정당성 같은 것을 우려하면 정치할 자격이 없는 거죠. 그러지는 않을 겁니다.”

    ▼ 국정조사 증인 채택에 대해선 어떻게 봅니까.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당사자여서 청문회에 안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동료 의원을 국정조사 증인석에 세우자고 한 전례가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내 기억으로는 없어요. 당사자가 사건의 주역이고 어느 정도 객관적 물증이 있으면 그럴 수 있겠죠. 이런 점으로 보면 김무성·권영세 증인 채택 요구는 정치공세 측면이 굉장히 커요.”

    정 의원은 야당의 장외집회에 대해선 “내가 부의장도 하고 의장대행도 했지만 의원이 국회 밖으로 나가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를 야당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다. “여야가 호혜의 원칙으로 타협하는 축적된 힘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3자 회담도 안 받는 건 청와대의 정치 실종”

    정의화 의원은 “ 거수기 정치, 강경파만 득세하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땡볕에 얼마나 괴롭겠어요”

    “장외집회는 언론에서 야당 목소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으니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해온 거였어요. 그러나 이젠 야당이 말만 하면 언론에서 다 써주고 SNS로 금방 퍼지잖아요. 다만, 여권도 야당이 국회로 들어올 명분을 줘야 한다고 봐요. 이런 점에서 정치 실종입니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을 제안했죠. 김 대표가 어떤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돌파구로 여긴 것 같아요. 이에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3자회담을 제의했죠. 이쪽(청와대)에서 그 정도는 받아줬어야 하는데.”

    청와대와 민주당의 ‘홀·짝수 놀이’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여당 내에선 무신경한 건지 주저하는 건지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김 의원이 고언(苦言)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왜 청와대가 받았어야 한다고 봅니까.

    “1대 1 회담은 박 대통령이 우리 당 대표가 아니므로 형식상 어울리지 않아요. 3자 회담을 하면 실제적으로 황우여 대표는 배석자가 되고 박 대통령과 김 대표 간 양자 회담으로 흐르는 거거든요. 김한길 대표도 사실상 수용했고. 그런데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갑자기 5자회담으로 해버리니까. 쉽게 말하면 출구가 애매하게 됐지 않느냐….”

    “20년 전 사고에 젖어”

    ▼ 5자회담 하자고 역제의를 한 건 과한 것이다?

    “아니, 과하다 안 과하다보다… 이론적으론 맞는 이야기예요. 우리 당 같으면 당 대표가 하는 일과 원내대표가 하는 일이 다르고 투톱 시스템이죠. 청와대 처지에선 법안 통과를 결정하는 원내대표가 당 대표보다 더 중요하죠. 이런 점에서 5자회담 제안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판단도 좋지만 때로는 정치적인 판단도 해줘야 한다는 거죠. 이 땡볕에 야당이 장외로 나가 있단 말입니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신체적으로는 얼마나 괴롭겠어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저분들에게 탈출구를 열어줘야 하는데. 그땐 조금 양보해서 5자회담은 그 다음에 하더라도 3자회담부터 일단 하고, 미진한 게 있으면 5자 회담을 또 하자든지. 어쨌든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상황에서 야당이 도와주지 않으면 대통령이 국정 운영하기 굉장히 어렵습니다. 대통령이 끌고 가고자 하는 비전이 있지 않겠어요? 야당 도움 없인 안 되는 거거든요. 그렇다면 이런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

    ▼ 대선 때 경찰이 국정원 댓글 관련 수사 결과를 왜곡 발표했다고 합니다. 야당 진영에선 ‘이로 인해 선거 결과가 왜곡된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검찰이 기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으니까요. 사법부 판결을 신뢰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전까지는 사실이라기보다는 주장이고요. 경찰도 이유가 있을 테고…. 상식적으로 보면,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무원은 무리한 일은 하지 않는데요. 어쨌든 재판으로 넘어갔으니 봐야죠.”

    ▼ 정부의 세제개혁안 발표로 증세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내가 국회 재경위원장을 해봤지만 감세는 쉬운데 증세는 어려워요. 누구나 받는 건 좋아하고 내는 건 싫어하죠. 조원동 수석이 하는 이야기나 기획재정부 세제실이 내놓은 이야기가, 내용은 차치하고, 20~30년 전 사고에 젖어 있다고 보는 겁니다. 정부가 발표하고, 여당이 의사봉 두드려 통과시켜주고, 국민이 반응하면 조금 가지 쳐주고…이런 사고방식 아니냐는 거죠. 이젠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이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하다, 부유층 중산층 서민이 각각 얼마씩 부담해야 한다, 집행하면 각자 이러이러한 혜택이 간다’ 이런 식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국민은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당신네 공무원이 부정만 안 하면 되겠네. 정직하게 하세요. 내가 낼게’ 이렇게 되는데. 상당히 못 마땅하네요.”

    ▼ 증세 논란이 국정원 사태 장외집회로 옮겨 붙기도 했는데요.

    “세제개편은 국회에서 답을 찾아야지 밖에서 할 일은 아니죠. 그런데 역지사지 해보면 야당 분들도 갑갑한 겁니다. 대통령과 만나 출구전략을 찾고 싶은데 다 막혀 있고. 그러다 증세 논란이 나오고 딱 보니 언론이나 중산층도 비판적이니 장외에서 활용하는 거죠. 답답하니까 써먹는 거죠. 그러나 불쏘시개 정도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쨌든 여야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게 청와대가 정치력을 발휘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여당에 합리성과 균형감 있어야”

    정 의원은 “정치에서 중요한 게 합리성과 균형감이고 이 둘을 함께 취하는 게 중용”이라고 말했다. “합리성이 없으면 상대를 설득하지 못하고 균형감이 없으면 한쪽으로 쏠려 버린다”는 것이다.

    정 의원은 자기만의 인사청문회 원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전관예우를 누린 사람은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는 원칙이다. 아무리 대통령이 요청해도 통과시켜줘선 안 된다는 거다. 그는 이를 ‘여당 내부의 합리성과 균형감’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당 안에 합리성과 균형감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거수기 정치, 강경파만 득세하는 정치가 사라진다. NLL 정국 같은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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