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호

왜 우리는 1.5㎏ 닭만 먹을까

좋은 닭, 나쁜 닭, 아픈 닭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4-11-20 16: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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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 육계 1.5kg…미국 닭 60% 크기
    • 24시간 불 밝히고 배설물 쌓이는 양계장
    • 선진국 부분육 공세 대응하려면 큰 닭 키워야
    왜 우리는 1.5㎏ 닭만 먹을까
    우리는 ‘작은 닭’을 먹는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육계 출하 평균 체중은 1.5kg이다. 중국(2.6kg), 브라질(2.2kg)의 평균 체중에 크게 못 미친다. 세계 육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미국(2.4kg)의 60% 수준이다. 평균 사육일수도 크게 차이난다. 우리나라 육계는 평균 35일간 사육한다. 중국(55일), 미국(46일), 브라질(45일)보다 10~20일 일찍 잡는다.

    양계업자, 축산 전문가 등에게 까닭을 물었다. “우리 국민이 1.5㎏ 닭을 좋아한다” “1.5㎏짜리가 통닭으로 튀기기 딱 좋은 크기” “우리나라에선 닭이 무게가 아니라 마리 단위로 유통되기 때문” 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그런데 이규호 강원대 동물영양자원공학과 교수는 “육계 수컷의 경우 성장이 비교적 빠른데도 사육 기간이 짧은 것은 폐사율(사망률) 증가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닭과 배설물 뒤섞인 계사

    육계 출하시기를 결정하는 기준은 경제적 효용이다. 닭에게 가장 적은 사료를 먹이고, 가장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을 때 닭을 잡는다. 이때 중요한 게 폐사율과 육성률이다. 육계는 4만~5만 마리의 병아리를 한꺼번에 계사(鷄舍)에 넣어 키운다. 이 중 일부 병아리, 닭은 매일 폐사한다. 죽은 닭은 유통할 수 없다. 병아리일 때는 몰라도 20일 이상 사료를 먹은 닭이 죽으면, 그 금전적 피해는 고스란히 양계 농가에 돌아간다.



    지난해 5월 국내 모 계육업체가 한국 본사와 미국 자회사의 양계 육성률을 발표했다. 한국 본사 육성률은 96.18%. 미국 자회사 육성률(96.85%)보다 0.67%포인트 낮았다. 작은 차이 같지만 육계 수만 마리를 동시에 사육하는 양계 농가의 손해를 따져보면 꽤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병아리 5만 마리를 키울 경우 육성률이 1% 떨어지면 500마리가 덜 생산된다. 마리당 5000원으로 도매가격을 계산하면 1회 사육할 때 250만 원의 수익이 줄어든다. 그런데 닭은 왜 폐사할까. 한 수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닭도 사람과 같다. 뼈가 단단하고 혈관 분포가 제대로 돼야 근육, 지방이 붙고 오래 산다. 국내 양계농가들이 닭을 급성장시키다보니 혈관 분포는 부실하고 체중만 비대해진다. 그러면 동맥경화, 관절염, 뇌졸중 등에 걸려 급사한다.”

    이른바 SDS(Sudden Death Synd-rome)다. 멀쩡하던 닭이 갑자기 ‘빨딱’ 엎어져 죽는다고 업계에선 ‘빨딱병’이라고 한다. 그는 국산 닭이 작은 크기에서 출하되는 것을 닭의 폐사율과 연결해 설명했다. 육계 폐사율이 높은 편이라 1.5kg 정도로 크면 ‘죽기 전에’ 빨리 유통시키는 관행이 1970년대부터 고착됐다는 것.

    그는 국내 육계 폐사율이 높은 원인으로 양계 축사 환경의 후진성을 꼽았다. 우리나라 계사는 대부분 평사에 깔짚을 깐 형태다. 작은 공간에 닭을 몰아넣는 ‘밀집사육’을 한다. 일부는 비닐하우스로 덮은 간이 계사다. 대부분의 계사는 24시간 불을 켠다. 닭은 어두우면 밥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온종일 불 켜진, 움직일 틈도 없는 계사에서 닭은 쉼 없이 사료를 먹는다. 더 큰 문제는 배설물이다. 한 축산학 박사의 말이다.

    “닭은 끊임없이 변과 오줌을 쏟아낸다. 그런데 계분이 깔짚에 흡수되지 않으면 큰 문제다. 간이 계사의 경우 환기가 어려워 습도가 높다. 짚 아래 계분이 마르지 않은 채 계속 쌓인다. 닭은 앉아서 자기 때문에 발, 배에 계분이 묻는다. 닭에 세균, 곰팡이가 옮겨간다. 밀집사육 때문에 움직일 공간도 부족하다. 병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전북 지역에서 계사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점차 ‘동물 친화적인 계사’가 확산되지만, 상당수 계사에서 깔짚과 변이 구분되지 않는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농촌진흥청 서옥석 박사도 “최소한 환기라도 자주 해 깔짚 위의 배설물이 마를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간이 축사 중 그런 시설이 안 된 곳이 있다”고 지적했다.

    왜 우리는 1.5㎏ 닭만 먹을까

    고상식 축사는 바닥에 짚을 깔아주는 대신, 촘촘한 플라스틱 망을 설치해 닭의 배설물을 바닥에 모은다(왼쪽). 깔짚을 이용하는 일반축사(오른쪽)와 육성률에서 차이가 난다.



    고상식 축사

    닭을 도축, 가공할 때도 육계의 몸에 묻은 계분이 문제가 된다. 배변이 묻은 몸에 세균이 옮겨와 곰팡이가 핀다. 이 경우 완전한 상품으로 판매할 수 없는 ‘비품’으로 분류한다. 업계에 따르면 전체 출하량 중 15%가 비품이다. 한 육계 가공업자는 “제값 못 받는 비품 닭이라고 버릴 수는 없다. 오염된 부분만 칼로 도려낸다”고 털어놨다. 비품 닭은 일반 닭의 70~80% 가격에 마트,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 등에 판매된다.

    ‘닭을 계분과 분리하는 깔끔한 환경을 만들면, 더 크고 건강한 닭을 많이 키울 수 있지 않을까.’

    축산기자재 업체인 (주)건지 곽춘욱 대표는 이 아이디어 하나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고상식 축사’다. 축사 바닥에 짚을 깔아주는 대신, 촘촘한 플라스틱 망을 설치한다. 닭의 배설물은 플라스틱 망 사이로 떨어져 바닥에 모인다. 닭의 몸에 배설물이 묻지 않고 깔짚이 필요 없다. 곽 대표는 “더욱 위생적인 환경에서 닭을 키울 수 있다. 현재 중국 양계 농가의 20%가 고상식 축사를 운영한다”고 말했다.

    11월 3일, 전북 김제에 있는 고상식 축사를 찾았다. 무릎 높이의 플라스틱 망이 길게 깔려 있었다. 그 아래로 닭 배설물이 떨어지는 게 신기해 보였다. 배설물은 자동화 시설을 통해 축사 뒤 한쪽 구석에 모였다. 기존 계사는 깔짚에 한 달 넘도록 계분이 쌓여 양계 농가 근처에만 가도 냄새가 지독한데, 이곳은 축사 입구에서도 계분 냄새가 거의 안 난다고 했다.

    이 고상식 축사에서 6월 10일부터 7월 16일까지, 32일간 병아리 4만4500마리를 키웠다. 평균 출하 체중은 1.96㎏. 국내 평균보다 3일 덜 키웠는데도 0.46㎏ 더 나가는 닭이 생산된 것. NH4(암모늄), 박테리아, 대장균 등 해로운 성분도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곽 대표는 “덕분에 43.5%(200수 기준)의 닭이 1+ 등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일반 계사의 1+등급 획득률은 19% 수준. 곽 대표는 이 기술을 인정받아 한중기업경영대상, 지식경제부장관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하지만 국내 고상식 축사는 단 5곳.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고상식 축사 한 곳 짓는 데 최소 1억 원이 든다.

    국내 양계 농가의 90% 이상은 대기업과 수직계열화해 있다. 대기업이 병아리를 제공하면 양계농가에서 키워 그 기업에 납품하는 하도급 구조다. 양계농가로선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한 셈이지만 자본이 열악한 농가가 많다. 그렇다보니 설비에 투자할 여유가 없다.

    ‘큰 닭은 맛없다’는 편견

    국제 육계 시장은 닭가슴살, 닭다리, 닭날개 등 특정 부위만 소비하는 ‘부분육’ 시장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변화의 바람은 국내에도 분다. 2012년 국내 소비된 닭 중 국산은 66%에 지나지 않는다. 34%는 수입 닭인데 대부분 미국, 브라질에서 들여온 부분육이다.

    부분육을 생산하려면 ‘큰 닭’이 필요하다. 작은 닭에서는 가슴, 다리, 날개 등을 구분하기 쉽지 않거니와 중량도 적게 나간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형 닭을 키우지 않으니 부분육 시장에서 한국은 늘 약세일 수밖에 없다. 향후 부분육 시장이 더욱 커지면 닭고기 수입 양은 더 늘어날 것이 뻔하다.

    정부는 대형 닭 위주로 육계 생산 형태를 바꾸자고 주장한다. 농촌진흥청 나재천 박사는 “병아리 한 마리로 4㎏까지 키울 수 있는데 현재는 1.5㎏ 고기만 얻는다. 그로 인한 국가적 손실이 막대하다”며 “닭이 클수록 얻을 수 있는 고기 양이 늘어나니 농가에도 이익인데 안타깝다”고 했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1.5kg짜리 닭에서 얻을 수 있는 고기는 868g에 불과하지만 2.5kg 닭의 경우 1.45kg을 얻을 수 있다. 도축, 가공 단가도 큰 닭이 더 싸다.

    많은 국내 소비자가 ‘큰 닭은 맛이 없고 질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농촌진흥청 자료에 따르면, 닭고기의 쫄깃쫄깃한 맛을 내는 인자는 이노신산(Inocinic acid)이다. 중량 2.5~2.8kg 닭고기의 이노신산이 1.5kg 닭고기보다 10㎎ 많다. 또한 필수지방산 함유량도 일반 닭고기(23.1%)에 비해 대형 닭고기(29.3%)가 훨씬 많다고 한다. 전북에서 양계업을 하는 이진호 씨는 “‘큰 닭은 맛없고 퍽퍽하다’는 것은 이전에 시골에서 키우던 노계(老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육계는 클수록 고기 양이 많고 쫄깃하며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도 맛이 난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큰 닭 치킨집’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2.2㎏ 이상의 대형 닭으로만 요리를 한다. 고객 이광호(38) 씨는 “큰 닭은 당연히 퍽퍽할 줄 알았는데 정말 부드럽다. 기존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치킨 1마리를 시키면 두 사람이 먹기에도 양이 부족한데, 이곳 1마리는 성인 5명이 먹어도 배부를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 프라이드 치킨 한 마리 가격은 1만8000원. 일반 프랜차이즈 치킨집과 큰 차이 없다. 양홍연 대표는 “일반 닭고기보다 고기 양이 많고 닭을 직영으로 공급받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큰 닭을 유통한다”고 했다.

    정부는 대형 닭을 키우는 농가에는 시설투자비를 지원하는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육을 유도한다. 하지만 양계 농가와 대기업 등 ‘현장’이 변화하지 않는 한 대형 닭 생산의 길은 멀기만 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미 선진 양계산업은 대형 닭 생산으로 돌아섰는데 우리나라만 1.5㎏ 육계에 머무른다. 향후 국내 대기업이 대형 닭, 부분육은 수입해 판매하고 국내 양계농가는 수익이 적은 작은 닭만 생산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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