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한번 실패하면 다 잃는 한국 벤처”

위인터랙티브 임현수 대표의 나의 폐업기

  • 김유림 기자 | rim@donga.com

    입력2014-08-21 1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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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실패하면 다 잃는 한국 벤처”
    “얼마 전 창업한 지 6년 된 회사를 폐업했다. 후배들이 똑같은 길을 가지 않기를 바라며, 또한 내가 걸어온 길을 반성하며 몇 글자 남겨본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빠르게 퍼져나간 ‘창업 실패담’이 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을 이야기를 참으로 담담하고 유머러스하게 적어 내려간 주인공은 위인터랙티브 임현수(34) 대표.

    성균관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인 그는 정보통신부장관상을 4번, 중소기업청장상을 3번 받았다. 1급 지체·언어장애인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상당히 불편하지만 IT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며 IT업계의 기대주로 인정받았다. 그가 이끌던 위인터랙티브가 폐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이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8월 12일 임 대표와 만나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투자 회수 기간 너무 짧아

    ▼ 폐업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위인터랙티브는 소셜 검색과 뉴스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해 아이폰에서만 애플리케이션이 50만회 다운로드됐고 그간 정부 용역도 많이 땄지 않나.



    “실패 원인은 여러 군데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일단 아이템이 문제였다. 검색엔진은 돈이 많이 드는 사업이라 우리같이 작은 벤처가 서버만 24대를 둬야 했다. 게다가 연구개발(R&D)이 필요한 회사인데 제대로 하려면 3년 이상 해야 한다. 작은 벤처가 수익도 안 나는 R&D에 3년간 매달려 있을 수 있겠나. 투자를 못 끌어오는 이상 회사를 운영할 수가 없었다.”

    ▼ 그런 어려움을 겪으며 배운 것도 많겠다.

    “스타트업은 스타트업다워야 한다는 점이다. 요즘 ‘만들기-측정-학습’ 과정을 반복해 꾸준히 혁신해가는 ‘린(lean) 스타트업’이 주목받는다. 그처럼 스타트업은 빨리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반응을 살필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해야 한다. 검색엔진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스타트업이 할 만한 분야가 아니다.”

    ▼ 초기 단계에서 외주개발사업을 하지 않았는데….

    “창업대회를 통해 상금을 받으며 순조롭게 돈을 모으자 절실한 마음이 사라졌고, 초기에는 외주개발을 전혀 하지 않은 채 사업을 이어갔다. 험난한 IT업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온실 속 화초처럼 있다보니 벤처 세계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배우지 못했다. 물론 다른 작업에 휩쓸리지 않고 본질에 집중한 것은 좋았으나, 비즈니스 마인드와 위기 대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초기에 외주개발사업을 했어야 하지 않았나 후회가 되기도 한다.”

    ▼ 일종의 ‘헝그리 정신’이 없었다는 얘기 같다. 검색 이전에 추진한 아이템은 뭔가.

    “모바일 메신저 사업이었다. 2008년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지금의 카카오톡과 유사한 건데, 국내에 아이폰이 들어오기 전에 개발했다. 사업을 잘 추진했다면 카카오톡보다 먼저 모바일 메신저 사업을 할 수 있었는데 아쉽다.(웃음)”

    ▼ 왜 사업을 확대하지 못했나.

    “처음부터 너무 큰 욕심을 부렸다. SKT, KT와 계약해 피처폰에서도 이용 가능하게 했고, 아이폰뿐 아니라 안드로이드, 옴니아폰용 앱도 개발했다. 카카오스토리와 같은 SNS용도 함께 개발했다. 카카오톡의 경우 처음 메신저 앱을 내놓은 후 점차 사업 분야를 넓혀갔지만 나는 반대였다. 그러다보니 출시 시기를 놓쳤다.”

    ▼ 왜 처음부터 욕심을 냈나.

    “내가 아무래도 대기업(SK컴즈) 출신이고 사업 경험이 없다보니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수익모델이 있어야 한다고…. 반대로 카카오톡은 처음 수익모델이 없어 수백억 적자가 났지만 점차 사업 범위를 넓혀갔다.”

    ▼ 상당수 벤처가 초기 수익을 위해 외주개발 사업을 하지만 위인터랙티브는 그보다는 국가 R&D 과제에 많이 참여했다. 임 대표는 ‘경진대회의 제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각종 경진대회, 공모전에서 수상해 많은 상금을 받았다.

    “한번 실패하면 다 잃는 한국 벤처”
    “나 역시 창업 초기에는 상을 많이 받아서 벤처캐피털 투자를 쉽게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투자 회수 기간이 평균 3년으로 미국 실리콘밸리(5~10년)보다 짧다. 그렇다보니 한국의 투자자들은 3년 안에 수익을 낼 수 있는, 상장 직전 기업에만 투자를 한다. 초기 벤처는 투자를 받기가 어렵다.”

    한번 실패하면 다 잃는 구조

    ▼ 그럼 초기 벤처들이 국가 R&D 과제를 많이 해 지원을 받으면 좋을 것 아닌가.

    “국가 R&D 과제를 통해 사업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어 좋지만 이 때문에 ‘좀비기업’이 될 수 있다.”

    ▼ 좀비 기업?

    “자생력 없이 국가 R&D 과제만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기업 말이다. 국가 R&D 과제 심사위원은 대부분 교수들이다. 사업성보다 문서의 완결성만 본다. 그렇기에 국가 R&D 과제를 따내는 일종의 ‘공식’이 있다. 벤처기업이 좀비같이 목숨만 겨우 붙어서 국가사업으로 연명하다보면 부채는 감당할 수없이 늘어나고 회생이 불가능해진다.”

    ▼ 임 대표가 2억이 넘는 부채를 진 것도 국가 R&D 과제 때문이었다.

    “정부기관의 산학연구과제에 응모했으나 과제가 끝날 때쯤 ‘중복 지원했으니 지원금 1억3000만 원을 한 달 안에 돌려달라’고 하더라. 지원받은 돈을 쏟아 붓고 갖은 노력 끝에 개발을 앞두고 있었는데 과거에 진행했던 다른 과제가 중복 처리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잘잘못을 떠나 벤처한테 1억3000만 원을 한 달 안에 내놓으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해당 과제가 중복된다는 것을 진작 알려줬으면 그 돈을 쓰지 않았을 텐데….”

    ▼ 임 대표 처지에선 ‘과제 선정 당시 중복된 것을 걸러내지 못한 국가의 책임 아닌가’라고 항변할 수 있었을 텐데….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도 만나고 중소기업청장도 만났다. 그분들은 ‘해결해주겠다’고 했는데 막상 실무자들이 해결해주지 않았다. 서로 말만 그렇게 하지 책임은 지지 않으려 했다.”

    ▼ 임 대표는 폐업과 동시에 개인파산을 했다.

    “대표자 연대보증 때문이다. 대출을 받을 때 대표자 연대보증을 하는 것은 대표가 갖고 있는 기술, 특허에 대해 대표자가 책임지고 수행하겠다는 의미인데 그걸 통해 사업이 실패하면 금전적인 책임을 지게 되고, 결국 한 번의 실패로 모든 걸 잃는 구조다.”

    ▼ 10여 명이던 직원은 어디로 갔나.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대기업에 취업한 경우도 많다.”

    ▼ 임 대표는 취업 안 하나.

    “파산 때문에 어렵다. 개인파산을 하면 법원에서 면책조건으로 6개월에서 1년간 취업을 못하도록 한다.”

    ▼ 창업으로 재기하면 되지 않을까.

    “파산 이후 5년간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혀 대출을 받지 못해 다시 창업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민간 투자를 받는 수밖에 없다. 사실 최근 잘나가는 글로벌 벤처기업이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했는데 파산 때문에 가지 못해 참 아쉬웠다. ‘강제 휴가’를 즐기며 책도 읽고 집에서 쉴 생각이다.”

    ▼ 한국 벤처계 스타플레이어의 일원으로 향후 목표가 있다면.

    “좋은 벤처투자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애가 있는 내가 꿈을 펼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덕분이다. 후배들이 나처럼 꿈을 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력도 많이 쌓아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는데….”

    성치 않은 몸으로 땀을 뻘뻘 흘려가며 대화를 이어가는 그를 보며 ‘전화위복’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렸다면 너무 흔한 감상일까. 열정과 실력, 경험까지 갖춘 그가 멋지게 재기할 그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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