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사회학자 송호근

  • 김호기 |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kimhoki@yonsei.ac.kr

    입력2015-01-20 15: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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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호근 교수는 탁월한 연구와 날카로운 칼럼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 시대의 대표적 사회학자다. 사회학자의 시선에 잡힌 광복 70년의 빛과 그늘은 무엇이고, 70년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 송 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에 부여된 과제를 공적인 것의 새로운 정립에서 찾는다. 이를 위해 ‘국가’에서 ‘시민’으로, ‘민족’에서 ‘세계시민’으로 가는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산업화 시대에 젊은 시절을, 민주화 시대에 중장년 시절을 보낸 송 교수에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김호기 1956년생이시죠? 6·25전쟁이 끝난 지 3년 뒤에 태어났으니 60년 가까이 살아온 셈인데, 광복 70년을 돌아보는 소회가 어떤가요.

    송호근 나이가 드니 생각이 다소 바뀌더라고요. 50대 초·중반까지는 앞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가, 이런 생각만 계속하다가, 아 이게 아니구나, 지난 70년의 역사를 나는 한 몸에 지니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식민지가 남겨놓은 많은 숙제를 광복 이후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명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태어난 해로부터 60년을 앞당기면 갑오경장(1894)이에요. 그런데 갑오경장은 실패했잖아요. 그때는 대한민국이 ‘제1 변혁’을 할 때였는데, 내가 태어났을 때가 그 시절이 끝나고 새롭게 도약할 때였던 거예요. 그래서 5·16이 일어났을 거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60년이 지난 거지요. 5·16을 ‘제2 변혁’이라 한다면, 이제 ‘제3 변혁’을 시작해야 할 때다, 120년이 지났으니까. 그럼 제3변혁이 과연 뭐냐, 이런 생각에 몰두하게 됐어요.

    비어 있는 시민사회

    김호기 광복 70년은 ‘근대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항(1876) 이후 자발적 근대화가 좌절되고 나서 광복은 새로운 국가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근대화의 두 프로젝트가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였습니다. 현재의 시간은 이 근대화 시대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대인 것으로 보입니다. 광복 70년의 현재적 의미를 어떻게 보는지요.



    송호근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 민족에겐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게 있어요. 뭔가 하나를 완벽하게 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그런 사상적 유전자 말이에요. 완벽을 기하려는 욕망 속에는 정통에 대한 치열한 집념 같은 게 함께 있기도 하고요.

    이제 제3 변혁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면, 중요한 것은 120년 동안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갖고 지금까지 걸어왔는지에 대한 검토입니다. 나는 세월호 사태가 그 계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태는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해온, 비어 있는 공간을 보여준 거 아닌가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에서 공(公) 개념이 비어 있다는 것을 보여줬어요. 시민성의 부재와 비어 있는 시민사회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해결해야 해요. 그래야 경제도, 다른 것들도 그 위에 설 수 있다고 봐요.

    김호기 시민사회를 이루는 ‘시민’이란 말에는 두 전통이 있습니다. 하나가 ‘시투아앵(citoyen)’이라는,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공민(公民)의 의미라면 다른 하나가 ‘뷔르거(B·#50918;ger)’라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市民)의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공공 이익을 우선시하는 공민의 전통이 취약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우리 사회를 뒤흔든 세월호 참사와 땅콩회항 사건은 공적인 것의 부재를 생생히 입증했습니다. 사적 이익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사회가 바로 우리의 자화상 아닐는지요.

    송호근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얘기를 하면서 창의성이 중요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창의성이 어떻게 길러지느냐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어요. 제가 보기에 창의성은 자발성이에요. 자발적으로 뭔가 하고자 하는 의욕이 있을 때 창의성이 나타나는 거지요. 그게 때로는 굉장히 모순적인 아이디어일 수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자발성이 있는 경우엔 귀담아들을 만한 게 있어요. 이 자발성이 시민성의 핵심이에요.

    문제는 이런 자발성을 배양할 수 있는 토양이 우리에겐 부족하다는 데 있어요. 지난 70년은 수동적인 동원의 시대였어요. ‘국민교육헌장’이 그런 거 아닙니까. ‘우리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민족중흥에 이바지한다.’ 여기에 나란 존재는 어디 있나요. 첫 구절이 너는 참 귀한 존재다, 너는 하늘로부터 권리를 받고 태어났다, 네 몸을 귀중하게 생각해라, 이게 아니잖아요.

    김호기 세월호 참사 이후 여기저기로부터 요청을 받아서 강연을 더러 다녔습니다. 제가 강의한 내용은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까지 국가가 주도하는 혁신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개인에서 국가로 가는, 아래부터의 혁신도 중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알렉시스 드 토크빌에 따르면, 민주주의란 마음의 습관입니다. 이 마음의 습관에서 중요한 것은 시민적 덕성을 키우는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개인의 정치, 정체성의 정치가 대단히 중요한 시점이고, 이것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경제성장 등 양적인 지표로만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국가가 변화를 주도하던 시대에서 국가와 개인의 이중 혁신이 이뤄져야 하는 시대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국가주의의 한계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송호근 나는 한 번도 국가 우선의 가치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대학교 때도 그랬고, 1987년 민주화운동까지 국가중심주의에 대해 회의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사회적으로 눈을 뜰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이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셨을 때 운구행렬을 따라갔어요. 남영동 쪽으로 해서 국립묘지까지 갔어요. 많은 사람이 울면서 따라가던 기억이 나요.

    김호기 1974년이었지요. 제가 중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송호근 굉장히 슬프더라고요. 국모가 돌아가셨으니까요.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죽었을 때엔 무엇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반된 감정이 들었어요. 분명한 것은 국부가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10월 26일 그날, 하루 종일 서울 시내를 헤맸어요.

    막막하더라고요. 20대 중반까지 굳건하게 기대왔던 국가주의의 지주가 무너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비어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한편으로 생기고, 그다음엔 비어 있는 것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국가란 나보다도 우선시돼야 할 성스러운 불멸의 실체로 판단했던 거지요.

    돌아보면, 산업화의 양식이나 민주화의 양식은 동원의 방식을 취했다는 점에서 같다고 생각해요. 산업화가 반공 이데올로기로 일사불란하게 진행돼 왔고 진보 세력을 밀어붙인 것이라면, 민주화 역시 보수 세력을 밀어붙인 것으로 볼 수 있어요. 그 방식은 비슷했다고 봐요. 산업화든 민주화든 동원해서 이루는 것, 밀어붙여서 빈자리에 제도를 건설하는 것이었어요.

    김호기 지난 70년은 ‘국가의 시대’였습니다. 국가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었지요. 국가의 발전은 나의 발전이었고, 국가의 영광은 나의 영광이었습니다. 문제는 국가주의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없다는 점입니다. 국가가 존재하는 궁극적 이유도 개개인 삶의 행복을 증진하는 데 있습니다. 삶의 행복이란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고 말과 생각의 자유를 누리는 것에 있을 터인데, 국가란 이를 위한 조건이지 그 목표는 아닐 것입니다.

    이제 광복 70년을 맞이해 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개인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를 사유할 때가 됐습니다. 개인주의에도 물론 빛과 그늘이 존재합니다. 개인주의에는 본디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인 ‘자율’과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하는 ‘이기(利己)’가 공존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국가로부터 일방적으로 동원되는 게 아니라 개인이 ‘더 많은 자율,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사회 혁신 기획이 필요하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송호근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업화와 민주화를 위한 제도적 기초는 다 놓았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상대방을 척결하는 방식으로는 앞으로 못 나아간다는 점이에요. 예전에 사회적 자본 얘기도 나오고 사회적 타협 얘기도 나오고 그랬는데, 그게 중요한 건 알아요. 그렇지만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경험칙이 쌓여 있지 않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선 지난해 우리가 겪은 사건들이 보란 듯이 기회를 줬다고 봐요. 그런데 이걸 국가가 다시 가져가버렸잖아요.

    김호기 이번 학기에 ‘현대사회론’이라는 강의를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내준 과제가 한국 사회를 뭐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느냐, 너희들 경험을 바탕으로 한번 써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은 ‘불안사회’와 ‘불신사회’였습니다. 세대 문제는 사회학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인데, 요즘 우리 사회에선 나이 든 세대는 나이 든 세대대로 불행하고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사회가 모범적인 산업화와 모범적인 민주화를 선도적으로 이뤘다고 얘기하는데, 정작 지금 우리 사회에서 행복한 세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일본화하는 한국 사회

    송호근 중국에 갔더니 거기서도 제일 큰 문제가 세대 문제이더군요. 그게 부(富)의 문제이고 기회의 문이 닫히는 것이지요. 시진핑 국가주석이 대(大)서부 개방을 하는 것은 세대적 불만의 지리적 대응인 것으로 보여요. 서부 지역 도시에서 보니까 동부 연안 지역으로 갔던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요. 개발되면서 불만이 지역적으로 희석되더라고요.

    그렇다면 한국은 흡수할 수 있는 기제가 있을까를 생각해봤어요. 지난해 방한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도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하던데, 자본소득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을 경우 세습사회가 온다는 거지요. 우리 사회도 미국처럼 세습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그러면 기회의 문이 닫히는 거 아닌가요? 제일 두려운 문제는 젊은 층의 활력이 죽어간다는 점이에요. 그건 진짜 희망 없는 사회지요. 사실 부끄럽긴 해요. 기성세대가 못 푼 거지요.

    또 다른 문제는 사회적으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양산해왔다는 점이에요. 대표적인 게 저출산과 범죄입니다. 그게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거란 말이죠. 지난 70년 동안 한국 사회에 주어진 숙제가 워낙 절박한 것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게 사실이죠. 개별화한 국민이 때로는 정치적으로 동원되고 무서운 집단으로 변하지만, 일상 경제 전선에서는 개별화된 국민이 무한히 펼쳐진 출세의 기회를 향해 무한질주를 했기 때문에 공적으로 뭘 쌓을 것인지, 뭘 남겨놓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도 문제제기가 잘 안 돼 있고, 그런 면에서 걱정이에요.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사회학자 대 사회학자. 국내 사회학계에서 드물게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 두 교수의 생각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장소제공 : 충정각)

    김호기 이런 흐름이 한국 사회의 일본화 경향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경제는 물론 사회구조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갑니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어렵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여기에 청년실업과 노후빈곤이 더해져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사회의 활력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의 역동성이 많이 약화됐습니다. 그 결과, 앞서 말씀드렸듯이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불만이 고조돼 있고, 나이 든 세대는 나이 든 세대대로 짜증이 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대학 안에서 좌절하는 젊은 세대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문제는 청년취업센터, 해외취업장려금, 청년고용의무할당제, 청년취업준비금 등 유용한 대안들이 대선 국면에서는 제시됐는데, 선거가 끝나면 이를 제대로 추진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송호근 저도 참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유럽에서 풀었던 방식을 예로 들면 사회 진입장벽을 잘 넘게 해주기 위해 결국 지원을 하는 거지요. 학비 보조부터 시작해서 졸업한 후에는 취업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거 말이에요. 영국에서 했던 게 20만 명의 인턴을 훈련시키는 것이었어요. 그게 40만 명까지 늘어났고, 그중에서 20만 명은 취업을 하더라고요.

    지금 우리에게도 있긴 해요. 고용지원센터가 전국에 70개 정도 있을 거예요. 문제는 이거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점이에요. 독일의 경우에는 전국에 600~700개가 있고, 실제로 젊은이들을 돕거나 지원하는 시스템은 굉장히 계획적으로 갖춰져 있잖아요.

    노동시장을 자유방임 형태로 놓아두면 당연히 청년실업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노력은 하지만, 흉내만 내는 셈이에요. 예산을 어떻게 투자하고 기업들을 어떻게 연결하고 전국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지 등 노동시장 제도를 당장 유럽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혁해나가야 합니다.

    노동의 미래

    김호기 복지정책 못지않게 중요한 게 노동시장 정책입니다. 복지는 재분배입니다. 일단 시장 내에서 분배가 잘 이뤄지면 재분배에 주는 부담이 줄어들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분배와 재분배가 동시에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입니다. 분배의 경우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해 노동의 현재와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고, 재분배의 경우 전통적인 복지정책과 일자리 창출의 적극적 복지정책이라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할 때 보니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외교와 노동정책이었습니다. 노동문제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시장, 노동과정, 노사관계, 그리고 사회적 타협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서 정부가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할 때에만 불투명한 노동의 미래가 그래도 좀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자리를 포함한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선진국으로 가기는 어렵습니다.

    송호근 중요한 문제입니다. 뉘른베르크에 있는 독일 연방고용청에 가보니까 굉장히 많은 인력이 전국을 커버하더라고요. 사민주의의 장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잡(job, 일자리)이 우선이고, 잡이 없는 인간은 죽은 인간이라는 거지요. 여기에 예산이 투입되고 그 바닥에서 기제들이 작동해요.

    우리는 기회를 잃어버렸어요. 김대중 정부에서 노동시장 정책이 중요한 것임을 인식했는데, 그로부터 14년 동안 성장이 멈춘 거죠.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봐요. 하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인데, 이를 위해 어떻게 기초를 깔고 예산을 투입하고 사람을 증원하느냐를 고민해야 해요. 다른 하나는 복지 정책과의 연동이에요. 제가 보기에 반값 등록금 같은 것은 효과가 크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것은 일자리를 구할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훈련하는 것에 복지 지원을 하는 거예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해요. 여기에 더해 빈곤 가정 출신의 아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퍼블릭 펀드를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김호기 청소년의 미래를 생각하면 많이 우울해집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많이 이뤄졌는데, 미국의 리처드 세넷은 이를 대표하는 사회학자입니다. 하지만 최근 진행돼온 현실을 지켜보면 능력주의가 아리스토크라시(귀족주의)로 돌아간다는 느낌입니다. 능력주의 사회가 기실 괜찮은 사회이고, 이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게 아닌가 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한 것으로 보입니다.

    송호근 거시적으로 이야기하면, 우선 한국이 귀족사회로부터 탈각한 다음에-완전히 탈각도 안 했지만-120년 전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아주 세밀한 리뷰가 필요해요.

    인민의 탄생, 시민의 탄생

    김호기 그런 세밀한 리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저작의 하나로 선생님의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을 꼽고 싶습니다. 두 책은 한글의 사용과 함께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인민’이 ‘평민 공론장’을 어떻게 등장시켰고, 근대적 개인을 거쳐 ‘시민’으로 태어나게 된 과정을 추적합니다. 그런데 이 시민사회는 여전히 허약한 것으로 보입니다. 광복 70년이라는 현재의 시점에서 문제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요.

    ‘국민’ ‘민족’ 벗어나 ‘세계시민’으로 진화해야
    송호근 중요한 것은 120년 동안 우리를 가둬온 인식으로부터의 탈피 같아요. 120년 동안 우리가 만들어낸 경험 지층이 너무 단단해서 그 안에 안주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요. 그동안 우리를 가둬온 인식의 감옥은 ‘국민’이라는 개념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민족’이라는 개념이에요.

    당장 동북아를 보세요.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대결을 아직도 계속하고 있잖아요. 20세기 중반에 끝냈어야 할 구도가 냉전이 끝나면서 새로 시작된 셈입니다. 민족주의라는 엄청난 화염 속에 들어가 있어요. 120년 동안 그래왔어요. 앞으로는 통일도 해야 하고,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도 있어요. 나는 이걸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호기 민족국가의 시간과 세계시간 간의 부조화가 특히 1980년대부터 세계화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우리 사회변동의 매우 중요한 특징을 이뤄왔습니다. 지구적으로는 탈냉전으로 가는데, 정작 동북아에서는 냉전, 탈냉전, 열전이 여전히 교차합니다. 민족주의의 한계가 분명해지는 흐름 속에서 민족주의적 열정이 이슈에 따라서는 오히려 강화되는 양상입니다.

    송호근 ‘국민’에서 ‘시민’으로 가고, ‘민족’에서 ‘세계시민’으로 가야 해요. 그러면 길이 보인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되면 시대적 과제가 국가나 정치권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올 거 아녜요? 시민에게 오고, 개인들에게 오는 것 말이에요. 그렇게 돼서 이게 내 문제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와 민족이 배고픔을 벗어나게 했고 파이를 키웠어요. 그러나 이런 인식의 구조, 의존성과 수동성의 120년과 이제 결별해야 해요. 우리가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해요. 채무 이행의 순간이 온 거지요.

    ‘어느 날 귀로에서’

    김호기 휴대전화 컬러링에 쓰는 노래의 제목이 뭔가요.

    송호근 ‘어느 날 귀로에서’예요.

    김호기 선생님이 작사한 것이죠?

    송호근 ‘조용필 19집’에 10곡이 있는데 9곡이 외국곡이에요. 한 곡이 조용필 씨가 작곡한 곡인데, 이 곡을 나한테 줬어요. 들어보니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2012년 12월 그때 베이비부머에 대한 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50대의 심정을 담았어요.

    김호기 조용필 씨하고 더러 노래방에 간다면서요. 어떤 노래를 부릅니까.

    송호근 조용필 씨 노래를 불러요. ‘꿈’ ‘추억 속의 재회’ ‘산유화’ ‘가랑비’ 이런 노래요. 가끔 목소리가 잘 나오면 ‘창밖의 여자’도 부르고요.

    김호기 직업으로서 공부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송호근 내 삶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는 느낌을 젊은 시절부터 갖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기자가 되려 했어요. 광주민주화운동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권력에 갇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결국 갈 데가 없어서 학교에 남아 학문을 하게 됐는데, 돌아보면 질문이 계속 달라졌고 그 질문들에 답변을 계속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김호기 선생님이 가진 미덕의 하나는 전문적 글쓰기와 대중적 글쓰기에 모두 능하시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요.

    송호근 직업이 학문인 이들에게 전문적 글쓰기는 기본이고요. 전문적 연구서로는 ‘국민의 탄생’이 세 번째 책이에요. 이 책은 두 권쯤 될 것 같아요. 지금도 헤매는데, 앞으로 5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김호기 저 역시 칼럼과 에세이를 자주 쓰지만, 대중적 글쓰기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송호근 1994년 서울대학교로 돌아온 후 지금까지 20년 동안 거의 두 주에 한 번은 대중적 글쓰기를 했던 것 같아요. 칼럼은 잡문이 아니라 대중과 소통하는 창구라고 생각해요. 대중적 책의 경우 그동안 쓴 걸 보면 제가 현장적 성격의 글을 잘 써요. 르포 성격의 글인데, 신문에서 전달하는 르포가 아니고 사회학적으로 또는 인류학적으로 변환된 형태를 말해요. 이런 책은 문제를 포착한 순간에 몇 권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내가 시골에 농가가 하나 있는데 주말마다 가거든요. 15년쯤 됐는데 쓸 얘기가 너무 많아요. 동네 농부들의 마음의 양식이 이제 보이는데, 그걸 다뤄보고 싶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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