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호

“부상으로 시련 겪으며 나도, 내 야구도 성숙했다”

추신수

  • 댈러스=이영미 |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22@maver.com

    입력2015-01-22 14: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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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막 前 부상 알았지만 팀 위해 숨겨
    • 성적 부진 쓴소리 받아들일 수밖에…
    • 벽 넘은 후 또 다른 벽 만나는 게 인생
    • 메이저리그 우승 꼭 해보고 싶다
    “부상으로 시련 겪으며 나도, 내 야구도 성숙했다”
    2015년 1월 1일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구단별로 10가지 질문과 답을 통해 2015년 시즌 전망을 내놓았다. 텍사스 레인저스 관련 질문에서는 ‘추신수는 내년 시즌 내내 건강할 것인지’를 다섯 번째로 올렸다. 텍사스는 지난해 주전 선수들의 잇따른 부상으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최하위에 머물렀다. 추신수(33) 또한 왼쪽 발목과 왼쪽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고, 급기야 8월 말 시즌을 조기 종료해야만 했다. MLB.com은 “추신수가 지난 6년 동안 부상자 명단(DL)에 오른 것은 네 차례뿐”이라면서 “추신수는 공격적으로 증명된 타자다. 물론 건강할 때 이야기다”라고 덧붙였다.

    2012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타율 0.283 16홈런 67타점 21도루 88득점을 기록했고, 2013년 신시내티 레즈에서는 타율 0.285 21홈런 54타점 20도루 107득점을 올렸다. 그러나 텍사스와 7년간 1억3000만 달러의 대형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은 후 부상으로 인해 타율 0.242 13홈런 40타점 3도루 58득점에 그쳤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일부에서 ‘먹튀’라는 비판을 듣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일찌감치 시즌을 접고 9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 발목 통증 제거 수술을 받은 추신수는 귀국을 포기하면서까지 재활에 매달려 지금은 정상적인 몸 상태로 훈련한다.

    2015년을 터닝 포인트의 해로 삼고 심기일전하는 추신수를 미국 댈러스에서 만났다.

    야구 인생 3장 1막



    2013년 12월 28일 텍사스 레인저스 클럽하우스 인터뷰 룸에서 7년간 1억3000만 달러를 받기로 계약한 추신수의 입단식이 열렸다. 거물급 선수가 입단한 만큼 존 대니얼스 텍사스 단장과 론 워싱턴 당시 감독은 물론이고 수많은 메이저리그 출입 기자가 참석했다. 추신수의 아내 하원미 씨와 두 아들 무빈, 건우 군도 자리를 함께했다.

    추신수는 당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텍사스에 입단한 소감에 대해 “내 야구인생의 세 번째 챕터가 시작되는 것 같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야구가 첫 번째 챕터였다면 클리블랜드와 신시내티에서 보낸 시간이 두 번째 챕터다. 그리고 텍사스에서 세 번째가 열리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뉴욕 양키스의 구애를 거절하고 텍사스를 선택한 이유와 관련해선 “가족이 얼마나 편하게 살 수 있는지, 또 이길 수 있는 팀인지,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할 수 있는 팀인지, 도시의 환경은 어떤지 등을 고려했을 때 텍사스가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장기 계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FA 계약 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선수들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면서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앞으로도 잘 해낼 자신이 있다”는 말로 레인저스에서 새롭게 시작할 야구 인생에 대한 기대를 한껏 드러냈다.

    하지만 그는 댈러스에서 보낸 지난 시즌 내내 마음껏 웃을 수 없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나타난 왼쪽 팔꿈치 통증과 경기 중에 다친 왼쪽 발목이 그를 지독하게 괴롭혔고, 레인저스 선수들의 잇단 부상과 맞물려 제대로 쉬지 못하고 경기에 투입되는 바람에 개인 성적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1억3000만 달러의 사나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은 그에게 부담으로 다가왔고, 몸값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FA만 되면 모든 게 행복할 것만 같았다. 마이너리그에서의 오랜 기다림, 메이저리그 데뷔 후 주전으로 성장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그리고 성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전쟁 같았던 경기에 투입한 노력을 거액의 FA 계약을 맺으면서 일시에 보상받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의 ‘벽’을 넘으면 또 하나의 ‘벽’이 기다린다는 인생의 진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FA란 힘든 벽을 넘으니 돈을 받은 만큼 성적으로 보답해야 하는 숙제가 기다렸다.

    처음엔 자신 있었다.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심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부상이란 암초를 만나면서 말로 표현 못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다. FA 계약 이후 누리게 된 물질적 풍요로움에 대한 행복도 느끼지 못했다. 많은 부분에서 여유로워졌지만 야구가 잘 안 되니 주위 환경에 전혀 만족할 수 없었다.”

    “나까지 자리 안 지키면…”

    추신수는 팔꿈치 부상에 대해 구단 고위 관계자와 코칭스태프 외엔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성적 하락으로 거센 비난을 받으면서도 부상과 관련해 말하지 않았다.

    “팔꿈치가 안 좋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내가 수비하다 공을 잡을 경우 상대 타자가 베이스를 돌 때 한 칸 더 갈 수도 있다고 봤다. 그래서 팀과 상의 후 어쩔 수 없이 부상 사실을 숨긴 것이다. 그리고 일단 라인업에 들어가면 부상 때문에 아파서 못했다고 해도 그걸 핑계 대면 절대 안 된다는 나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었다.”

    어느 팀이든 입단하려면 메디컬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추신수도 레인저스 입단식을 하기 전 메디컬 테스트를 받았다. 몸 구석구석을 검사했지만, 당시엔 어떠한 부상 요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이 스프링캠프가 시작됐고 시범경기를 치르면서 조금씩 팔꿈치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캠프 연습 중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팔꿈치 부위에 뼛조각이 웃자라고 있다는 걸 알았다. 주치의 말로는 수술하면 8주가 걸린다고 했다. FA 신분으로 시즌을 준비하면서 수술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타격할 때는 크게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참고 뛰기로 한 것이다. 만약 주전 선수들이 부상당하지 않고 라인업을 지키는 상황이었다면 시즌 중에 수술을 하기로 마음먹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전 선수 대부분이 부상으로 팀을 떠나 마이너리그에서 새로운 선수들이 올라왔는데 나까지 자리를 안 지키면 팀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추신수는 팔꿈치보다 발목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했다. 뛰는 것은 물론 걸을 때도 통증이 느껴지는 터라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통증 없이 하루를 보내게 해달라고 빌면서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부상을 당했을 때 부상자 명단에 올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팀에서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 팀 상황이 좋지 않으니 몇 경기 빠지면서 몸 상태가 회복되길 바랐던 것 같다. 결국 정상이 아닌 상태로 간단한 치료를 반복하면서 경기에 출전한 것이 8월 말까지 이어졌다. 그때는 뼈가 골절되지 않는 한 어떻게 해서든 경기에 나가야만 했다.”

    “나 자신에겐 부끄럽지 않아”

    추신수는 발목 부상을 당한 이후 수비 훈련을 할 수 없었다. 경기 전 타격 연습과 가벼운 몸 풀기 운동만 한 다음 일찌감치 훈련을 마치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그러다보니 종종 수비에서 실수가 나왔고, 속사정을 모르는 팬과 언론은 추신수를 향해 거센 비판과 비난을 쏟아냈다.

    특히 올 시즌 성적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저조했다. 12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42, 출루율 0.340, 장타율 0.374, 홈런 13개, 타점 40개의 성적을 남겼다. 2008년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타율, 출루율, 장타율 모두 최악의 기록이다. 물론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배려하면서 이해해주지 않았다.

    “밖에서 나에 대해 어떤 얘기를 하는지 잘 안다. 성적만 놓고 보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누가 뭐라고 비난해도 난 자신에겐 부끄럽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니까. 부상 때문에 조기에 시즌 아웃됐더라면 지금처럼 욕먹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몸이 정상이 아닌 상태였지만 팀에선 내가 그 자리에 있어주길 바랐고, 난 팀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추신수는 자신을 향한 비난은 충분히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을 영입한 구단 단장 등 팀 관계자들이 욕을 먹는 건 정말 괴로웠다고 말한다.

    “내 부진과 관련해 구단 관계자를 비난할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감독, 단장, 사장에게 ‘왜 이렇게 못하는 선수를 데려왔느냐’며 손가락질하는 것을 보는 게 진짜 힘들었다. 구단 임직원들이 내가 부상당할 줄 알고 데려왔겠나. 내가 그동안 보여준 성적을 믿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대우를 해준 것 아닌가. 앞으로 잘해줄 것이란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계약을 한 것이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모든 건 내 탓이다.”

    추신수는 야구를 시작한 이래 자신의 이름 앞에 ‘먹튀’란 단어가 붙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부상으로 힘든 시즌을 보냈다고 해도 언론은 냉정하게 마련이다.

    “부상으로 시련 겪으며 나도, 내 야구도 성숙했다”

    추신수 선수와 부인 하원미 씨



    비(非)시즌 동안 미국 언론은 지속적으로 추신수에게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안기며 기사를 만들어냈다. 더욱이 텍사스는 과거 박찬호와의 악연이 있다. 박찬호는 2002년 텍사스와 5년간 6500만 달러라는 거액의 FA 계약을 맺었지만, 부상 등으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면서 ‘먹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그 탓에 추신수가 레인저스에 입단할 때 ‘혹시 박찬호와 같은 사례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추신수도 이 부분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부상을 참아가면서 지난 시즌을 치렀던 것이다.

    “내가 해놓은 결과물 탓에 쓴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FA 첫해에 이런 상황에 처한 게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악몽 같은 시련을 통해 나도, 또 내 야구도 한 단계 성숙했다고 본다. 지난 시즌보다 더 나빠질 게 없다. 그래서 홀가분하다. 하지만 한 시즌 부진했다고 해서 그동안 내가 수립한 모든 기록이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폄하될 때는 마음이 아팠다. 응원을 보내준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옛날 일까지 들춰내면서 나를 아주 형편없는 선수로 몰아갔다. 나도 인간이다보니 그런 점들은 서운했고, 씁쓸했다.”

    추신수는 9월 초 왼쪽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왼쪽 발목은 팔꿈치 수술 상태를 지켜본 후 수술 여부를 결정하자는 게 담당 의사의 소견이었지만, 추신수는 시간이 없다면서 당장 수술 해달라고 했다.

    비치발리볼 훈련장서 재활

    “쉬면서 나아질 부상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 느낌에 그런 수준을 이미 넘어섰고, 어떻게 해서든 통증을 없애려면 수술하는 게 정답이라고 봤다. 무엇보다 팔꿈치를 수술하면서 11월 1일부터 운동하는 스케줄이 나와 있었는데, 그 스케줄을 소화하려면 발목 수술도 곧바로 해야만 했다.

    결국 내 고집으로 팔꿈치 수술 후 발목 염증 제거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을 마친 후 의사가 ‘수술하기를 정말 잘했다’고 하더라. 마이크로 카메라를 부상 부위에 넣는 방식으로 수술했는데, 영상으로 직접 보니 수술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빠른 결정 덕분에 수술을 잘 마쳤고 지금 열심히 재활 훈련을 한다.”

    추신수는 계획대로 11월 1일부터 훈련에 돌입했다. 어느 정도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되자 팀에서 지정한 비치발리볼 훈련장에서 모래 위를 달리고 구르기를 반복하며 몸의 근력을 키웠다. 훈련하면서 그를 가장 행복하게 만든 건 통증이 없다는 것이었다. 캐치볼 할 때는 물론 뛸 때도 손목이나 발목에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몸 상태가 정말로 좋다. 너무 좋아 걱정될 만큼 좋다. 메이저리그 데뷔 이래 처음으로 귀국하지 않았다. 나보다 아내가 한국을 더 그리워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댈러스에 한인이 많이 살고, 한국 음식점이 즐비해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 한인회에서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지난 시즌 나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컸고, 실망도 했겠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 응원해주는 게 정말 고맙다. 그래서 가끔 팬 사인회도 한다. 댈러스에 있는 한인 분들과 가깝게 지내려 노력한다.”

    추신수와 함께 댈러스의 삼겹살 식당에 갔다. 넓은 고깃집 안에 앉은 손님 대부분이 한인이었다. 우리 일행이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고 추신수를 보는 시선은 흡사 연예인을 바라보는 듯한 것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아이를 앞세운 부모들이 추신수에게 사인을 받으러 몰려들었다. 그들의 손에는 음식점에서 테이블 위에 깔아놓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추신수는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선 자신의 차에서 사인 엽서를 가져와 거기에 이름을 적고 사인을 해줬다. 사인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조용해졌을 때 추신수가 입을 열었다.

    “사인은 기념으로 가지려고 받는 건데, 많은 분이 아무 데나 사인을 받으려 한다. 수첩을 찢어 가져오는 사람도 있고, 영수증 뒷면에다 사인해달라는 사람도 봤다. 어떤 이는 냅킨에 해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렇게 받은 사인은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그런 데다 사인해주는 나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내가 준비해서 다니면 되겠다” 싶었다. 엽서만한 크기에 내 사진을 프린트해서 뒷면에 사인을 해주면 받은 사람이 오랫동안 간직할 거란 생각에 이런 방법을 택했다. 반응이 아주 좋다. 센스 있다는 칭찬도 받았다.”

    다음 날에는 추신수 가족과 함께 한 제과점을 찾았다. 빵과 커피를 사러 들어간 곳에서 추신수는 팬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았다. 이번에도 그는 사인 엽서를 꺼내 한 사람씩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줬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내가 살았던 도시는 한인이 거의 없는 클리블랜드, 신시내티였다. 그런데 댈러스는 뉴욕, 로스앤젤레스 다음으로 한인이 많은 도시다. 아내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천국’ 같다더라. 찜질방, 사우나까지 있어 생활하기가 아주 편하다. 많은 사람이 나를 알아본다는 것을 제외하곤 이곳 생활에 만족하는 편이다. 내가 야구만 잘하면 더는 바랄 게 없을 정도다.”

    “부상으로 시련 겪으며 나도, 내 야구도 성숙했다”

    추신수는 가족이 해마다 이사가지 않고 한곳에 정착해 사는 게 처음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모여 사는 행복

    추신수는 댈러스 공항에서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사우스레이크에 집을 장만했다. ‘주택’이 아닌 ‘저택’이 늘어선 동네에 수영장까지 딸린 그의 집은 고급스러운 묵직함과 예술적인 감각의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멋스러움이 있다.

    “가족이 해마다 이사 가지 않고 이렇게 한 곳에 정착해 사는 게 처음이다. 예전에는 애리조나에 집이 있었지만, 시즌이 시작되면 내가 그곳에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가족이 애리조나를 베이스캠프로 두고 클리블랜드, 신시내티의 여기저기로 이사를 다녔다.

    FA가 된 후 그런 번거로움, 수고스러움은 깨끗이 사라졌다. 그래서 집을 고를 때 발품 팔아가면서 많은 곳을 직접 보러 다녔다. 이 집보다 더 크고 호화로운 곳도 있었지만, 집이 클수록 지출되는 비용도 많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우리 수준에 맞는 집을 골랐다. 직접 살아보니 조용하고 공기가 맑아 최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좋아한다.”

    추신수는 2015년 시즌 통산 1000경기, 500타점 등 의미 있는 기록을 수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한국이 아닌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 기록에 대한 욕심은 버린 지 오래라고 말한다.

    “기록은 건강하게 뛰다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숫자다. 올 시즌은 부상 없이 매일 경기에 나가는 게 1차 목표다. 그리고 우리 팀이 단골 우승후보답게 올해 멋지게 부활하면 좋겠다. 내가 이곳에 온 궁극적인 목표는 우승이다. 메이저리그 인생에 우승이란 ‘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에 텍사스 레인저스를 택했다. 그 꿈을 꼭 이루고 싶다.”

    텍사스에서 야구 인생의 세 번째 챕터를 열었지만, 아직은 채울 게 너무 많은 추신수다. 그는 세 번째 장을 제대로 시작도 못했다고 말한다. 지난 시즌이 예열 기간이었다면 올 시즌은 오랫동안 준비한 만큼 그가 바라는 목표에 도달하면 좋겠다. 그래서 올 시즌을 마치고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돋보기 | ‘내조의 여왕’ 부인 하원미

    “남편 스트레스 받을까봐 야구 얘기 일절 안 꺼내”


    “부상으로 시련 겪으며 나도, 내 야구도 성숙했다”
    엄청난 몸값을 받는 남편, 그리고 사랑스러운 세 아이. 겉으로 보기에 이 집의 아내는 남부러울 것이 없다. 결혼 11년차 부부는 여전히 깨소금을 볶으며 알콩달콩 신혼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들은 가정교육이 엄한 아버지 영향으로 어른에 대한 공경과 인사 등 예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가까이서 지켜본 하원미(사진) 씨는 화려해 보이는 스포츠 스타의 아내와 거리가 멀었다. 경제적 여유는 생겼지만 육아와 가사를 도맡는 데 따른 부담과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도우미가 와서 청소를 해주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은 내 몫이다. 지금은 막내딸 소희가 오빠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니기 때문에 오전에 나만의 시간을 보내지만, 이전에는 아이들 육아에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육아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건 남편의 야구 성적이다. 특히 텍사스 레인저스에 와서는 내가 남편 성적에 일희일비하는 일이 많았다.

    남편은 내가 걱정할까봐 집에서는 야구 얘기를 안 꺼낸다. 나 또한 남편이 스트레스 받을까봐 집에선 야구 얘기를 일절 하지 않는다. 서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도 상대방을 배려한 나머지 속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다. 시즌을 일찍 끝내고 남편이 수술을 받으면서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다. 지난 시즌은 악몽 같았지만, 더 다치지 않고 이 정도의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면서 위안을 삼았다.”

    야구선수인 남편은 매사 예민한 편이다. 특히 야구가 잘 안될 때는 말수가 적어지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럴 때마다 하씨는 남편에게 “지금까지 충분히 잘했으니 더는 욕심내지 말자”고 조언한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추신수에게 그 말은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추신수는 “아내가 무슨 의미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잘 안다. 내가 노력해야 되는 부분인데, 시즌 중에는 욕심을 안 내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11년 전, 배고픈 마이너리거와 연극영화를 전공하는 여대생이 불꽃같은 사랑을 해 미국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영화 같은 러브스토리가 전개됐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사랑만 믿고 시작한 생활은 숱한 풍랑과 암초를 만나며 오히려 더 견고해졌고, 서로의 감정은 시간이 갈수록 애틋해져만 갔다.

    추신수는 종종 기자에게 “내가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스스로 대답을 내놓았다. 자신은 메이저리그에서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고,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가 쓸쓸히 은퇴해 사라졌을 것이라고.

    추신수, 하원미 부부는 아직 정식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추신수에게 이와 관련해 질문할 때마다 “하긴 할 건데, 좀 더 의미 있는 결혼식을 올리려 한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러나 하씨는 “충분히 잘 살고 있는데 굳이 형식적인 결혼식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아이들 다 키워놓고 ‘리마인드 웨딩’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다르게 이야기한다.

    수십억, 수백억 원을 버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의 행복, 가정의 편안함이 없다면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맞춤복’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이 부부의 행복 여정이 아름다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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