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호

朴, 국정화로 효도하고 종북 장사? 文, 외부의 적 만들어 사퇴론 탈출?

박근혜와 문재인의 속내

  • 이종훈 |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11-18 16: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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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사색당쟁 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문을 보면서 우리는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된다. 박근혜와 문재인은 왜 이런 일로 싸우는 걸까.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 말고, 두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건 뭘까.
    朴, 국정화로 효도하고 종북 장사? 文, 외부의 적 만들어 사퇴론 탈출?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원초적 동기는 ‘아버지에 대한 효심(孝心)’일 것이다. 박 대통령이 보기에, 가당치 않은 좌편향 검인정교과서들은 아버지를 멋대로 깎아내렸다. 박정희에 대해 김일성보다 적게 다룬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수한 대목에서 박정희의 업적이 폄훼됐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자라나는 새싹들이 이런 걸 보면서 박정희를 잘못 알게 된다니… 박 대통령에겐 끔찍한 일이다.
    처음엔 좋은 말로 “좀 고치라”고 했다. 그러나 교과서들은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교학사 교과서를 만들었더니 아예 채택을 안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잔 다르크의 피가 흐르는 박 대통령은 일전불사의 투쟁심을 불태웠을 것이다. ‘교과서와 학교가 아직 해방구로 남은 모양인데, 한번 해보자’고 결심한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시대 퇴행적 종북 교과서들’을 쓸어버리는 국정화를 밀어붙인 것이다.

    딸 된 도리
    ‘아버지 대통령’의 영전에 ‘자랑스러운 국정교과서’ 한 권 올려드리는 것, ‘딸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 책은 아마 박정희의 산업화를 객관적으로, 그러나 애정을 담아 기록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퇴임 후 차기 대통령에 의해 다시 검인정으로 돌아가더라도 별로 괘념치 않을 것 같다. ‘정-반-합’의 변증법 원리에 따라 그 검인정교과서는 지금의 검인정교과서보다 훨씬 덜 좌파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국정화로 효도도 하고 ‘종북 장사’도 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국정화가 내년 총선 압승의 묘약일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국은 과연 그렇게 굴러갈까.
    1차 ‘역사교과서 전투’는 교육부의 행정예고가 끝나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1차 전투의 승자는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돌격명령을 내렸고, 새누리당은 선제타격을 담당했으며, 공격은 주효했다. 목표는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연) 대표와 친노계, 타격 전략은 종북 프레임이었다.
    새정연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었어야 했다. 그러나 문 대표와 친노계는 앞뒤 따지지 않고 대응사격부터 했다. 포격 원점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포 소리가 들린 곳에다 발포부터 하고 본 격이다.
    문 대표가 특등사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 엉터리는 아니다. 당시 문 대표는 절박한 상황이어서 그의 속마음도 쉽게 읽힐 수 있었다. 그는 당 내부로부터 시달린다. 당시 혁신위원회 활동 종료 이후 문 대표 사퇴론이 다시 불붙었다. 그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사퇴론에서 탈출할 요량으로 박 대통령의 선제공격에 맞대응한 것으로 비친다. 내부 갈등을 봉합하려면 박 대통령과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전투는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반대의견이 더 많이 나왔다. 신당 창당을 서두르던 천정배 의원까지 불러들여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당내 비주류의 국정화 반대투쟁 동참도 이어졌다. 사퇴론도 잠잠해졌다.
    그러나 국정화 반대여론은 거셌지만 문 대표와 새정연은 반사적 이익을 얻지 못했다. 지지율도 답보 상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길 바랐지만, 그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력 바닥’ 재확인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표는 10·28 재·보선에서 또 참패하고 말았다. 4·29 재·보선 참패는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 전당대회 직후이고 대표 활동 초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참패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만저만한 참패가 아닌 데다, 이번 선거 결과에는 문 대표가 공을 들인 혁신위원회 활동에 대한 평가도 담겼기 때문이다.
    혁신위원회 활동에 감동받았다면, 적어도 호남 민심은 호전됐어야 했다. 하지만 호남에서도 참패했다. 문 대표는 낮은 투표율을 탓했지만, 이번에 호남 투표율은 높았다. 전남 신안군 기초의원선거 투표율은 64.5%였는데, 여기에서도 새정연 후보는 무소속 후보에게 1, 2위를 내주고 겨우 3위를 했다.
    문 대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장외투쟁 와중에도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사상구 광역의원선거에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졌다. 자신의 선거구조차 못 지키는 대표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로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 잇따를 때도 지역구 유권자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꿋꿋하게 쥐고 있던 지역구다.
    당연히 사퇴론이 힘을 더 받을 수밖에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로 당내 사퇴론을 덮은 것까진 좋았다. 그러나 10·28 재·보선으로 실력이 바닥이라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사퇴론에 힘이 더 쏠리는 상황으로 몰린 셈이다. 박지원 의원을 시작으로 안민석, 안병엽 의원에 이어 조경태 의원, 이종걸 원내대표까지 문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사실상 사퇴를 압박했다.
    그래도 물러날 문 대표와 친노계가 아니다. 문 대표는 “총선 승리에 저의 어떤 정치적 운명이 걸려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한다. 내년 총선 때까지 물러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이 그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11월 4일, 자신의 지역구를 포기했다. 문 대표는 이제 지역구 없는 국회의원이다.
    이제 2차 역사교과서 전투의 막이 올랐다. 이번 전투의 시한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말이다. 이번에도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문 대표와 친노계의 고립을 목표로 삼는다. 다만 타격 전략을 민생 프레임으로 바꿨다.
    종북 프레임으로 문 대표와 친노계를 고립시키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보고, 민생 프레임으로 이들을 더 압박해 나가려는 전략이다. 중도세력까지 끌어들여 지지기반을 더 확고히 하겠다는 의도도 담겼다. 민생 프레임은 사실 문 대표와 새정연이 먼저 제기했다. ‘민생에 주력해야 할 때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고 나오는 게 타당하냐’는 공격이었다. 박 대통령이 10월 27일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할 때도 이들은 ‘민생 우선’ 스티커를 선보였다.

    뿌리 깊은 운동권 본능
    하지만 새정연은 장외투쟁과 국회활동 보이콧으로 민생에 소홀한 틈을 보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새정연이 민생을 외면한다며 역공에 나선 것이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민생 프레임은 앞으로 새정연, 특히 문 대표와 친노계의 ‘민생 무능’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1차 전투에서 종북 프레임에 당한 문 대표와 친노계는 이번엔 당하지 않으려는 기세다. 국정화 확정고시 후 국회 본관에서 철야 농성에 돌입했다가 곧바로 국회를 정상화하기로 하고 농성을 접은 것이 그런 기류 변화를 보여준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자니 춥고 안에 묶여 있자니 답답하다. 이성은 ‘민생을 챙겨야 한다’고 말하지만 뿌리 깊은 운동권 본능은 투쟁을 지향한다.
    민생 프레임, 민생 무능 공격마저 제대로 막아내지 못한다면 문 대표와 친노계는 고립무원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민생 유능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이미 ‘무상 시리즈’의 약발도 떨어진 터다. 무상보다 더 강력하고 감동적인 민생 대안을 내놓아야 하는데,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문 대표와 친노계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지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대중경제론을 쓸 역량도,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지방분권론을 설파할 실력도 없다. 그나마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완성’인데, 당내에서조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번번이 무시하다 보니 여기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원래 무리수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화를 전면에 내걸 때만 해도 승리를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문 대표와 친노계가 전면 대응에 나설지도 확신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문 대표와 친노계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덕분에 1차 전투를 무난하게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만약 문 대표와 친노계가 투쟁에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했겠지만 시민사회에서 국정화 반대여론이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시대 역행적이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를 검인정교과서로 바꾼 것이 엊그제다. 더욱이 선진국 중에 국정교과서를 쓰는 나라는 없다.
    역사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발행하는 국가는 북한을 비롯해 필리핀과 핀란드 정도다. 국정교과서를 발행하는 경우에도 검정제, 인정제, 자유발행제를 병용하는 국가가 대부분이다. 선진국 중엔 자유발행제 나라가 많다. 영국,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이탈리아는 검정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데에는 애초 무리가 따랐다. 무리수였지만 강행했다.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국민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정화 반대 정서도 확산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종북 숙주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문 대표와 친노계가 계속 깃발을 들고 나서니 국민, 특히 중도층이 주춤거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문 대표와 친노계가 정말로 종북적 사고를 가졌다면, 그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국정화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중에도 문 대표와 새정연 지지율이 급상승하지 않는 이유 또한 이것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181석’의 꿈
    많은 국민은 이렇게 생각한다. ‘국정화엔 반대다. 그러나 검인정교과서의 종북성도 문제다.’ 그래서 여론은 종북 숙주 의혹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 문 대표와 친노계가 주도하는 새정연에 힘을 실어줄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결국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017년부터 국정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당장 집필 기간부터 예상보다 길어질 공산이 크다. 더욱이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정화 이슈로 얻을 것은 이미 얻은 상태다. 더 얻으면 좋겠지만, 이 정도에서 그쳐도 손해는 아니다.
    문 대표와 친노계를 정치권에서 영원히 퇴출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국정화 이슈를 밀고 나가면서 종북 프레임을 계속 걸어야 한다. 그러나 문 대표와 친노계의 영구 퇴출은 박 대통령도 새누리당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처럼 상대하기 쉬운 정적(政敵)도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들을 야권 주류로 남겨두는 편이 내년 총선은 물론 내후년 대선에도 유리하다고 보는지 모른다.
    문 대표와 친노계가 주류로 존재하는 한 야권 분열은 계속될 것이다. 이런 상황은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가장 바라는 바다. 야권 분열 상태로 총선을 치르면 전국 각지에서 야권 후보자가 2, 3등을 하고 새누리당 후보자가 어부지리로 1등에 당선하는 일이 속출할 것이다.
    181석(재적의원 5분의 3)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박 대통령의 임기 말은 행복해진다. 정치선진화법을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기 전반기 내내 야당의 반대로 발목 잡힌 경제활성화 법안도 무난하게 처리해 공약사업도 마무리할 수 있다.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재창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181석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보수세력은 2008년 18대 총선에서 185석까지 확보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153석, 친박연대가 14석, 자유선진당이 18석이었다. 그때에 비해 이른바 ‘운동장’은 더 기울어졌다. 2016년 총선 투표수에서 60대 이상과 20대의 차이는 2배에 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9대 총선 때보다 1.5배 늘어나는 것이다.
    문 대표와 친노계가 새정연 지도부를 장악하고 있는 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종북 프레임의 유혹을 떨쳐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선거전략으로 나쁘지 않다고 계속 생각할 것이다. 만약 문 대표와 친노계가 정기국회가 끝난 뒤 본격적으로 국정화 반대투쟁에 나선다면 박 대통령도 아마 더 세게 나갈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극적 양보?
    그러나 국정화가 국익에 맞지 않는 건 사실이다. 한국은 ‘아시아의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미지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교과서를 뜯어고쳐 역사를 누더기로 만드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총선 직전 국정화 유보를 선언하는 극적 상황은 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현행 검인정 체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데 이미 성공했다. 또한 문 대표와 친노계의 종북 의혹을 증폭하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런데 중도층은 국정화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검인정 체제 전면개편 정도로 양보해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 선언을 총선 직전에 함으로써 고민 중인 중도층을 단박에 불러들이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
    관건은 국정화를 밀어붙인 원래의 동기인 박 대통령의 효심이다. 하늘에서 아버지 대통령은 ‘딸아, 그만하면 됐다’라고 말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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