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호

春來不似春 ‘스펙추위’

축구심판 자격증에 미인대회 출전까지

‘新스펙’ 사냥 나선 청년들

  • 강지남 기자 | ayra@donga.co, 유설희 인턴기자 | 고려대 철학과 졸업

    입력2016-05-09 11: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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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익 점수 같은 정형화한 ‘수치’를 요구하지 않는 기업이 늘었다고 청년 구직자들이 ‘스펙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청년들은 구(舊)스펙 대신 신(新)스펙 사냥에 나섰다.
    • 요리학원엔 식품회사 지원자가 몰리고, PD 지망생들은 팟캐스트를 만든다. 요즘엔 창업도 스펙이다.
    이력서에 ‘스펙(specification)’을 적어내지 않도록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주요 대기업 21곳 중 20곳은 이력서에 학점, 어학 성적, 자격증, 가족관계 등의 항목을 삭제하거나 간소화했다. 직무와 관련 없는 스펙은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탈(脫)스펙’ 채용이 확산되는데도 청년 구직자들의 스펙 쌓기 열풍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토익 점수 같은 ‘구(舊)스펙’ 대신 실무 관련 자격증 등 ‘신(新)스펙’으로 무장해 갈수록 거세지는 취업난을 뚫겠다는 것이다.

    서울 모 대학 인문계 학과에 재학 중인 김모(25) 씨는 요리학원에서 한식조리사 자격증 강좌를 듣고 있다. 그가 이 자격증을 따려는 이유는 식품제조 회사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샘표식품에서도 요리 면접을 한다”며 “토익 점수보다 실무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요즘 추세라 식품회사들이 요리 자격증 소지자를 선호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열정 있다” 평가 위해…

    김씨처럼 취업 준비생 중에는 요리 자격증을 취득하려는 이들이 넘쳐난다. 김성현 서울요리학원 원장은 “방학 때면 학원을 찾아오는 대학생이 200명이 넘곤 한다”며 “그중 상당수가 식품이나 요식업을 하는 회사에 취직하려는 이들”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주로 양념류 제품을 생산하는 식품회사 인사담당자는 “조리사 자격증이 실무 능력을 어필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조리사 자격증 소지 여부가 당락을 가르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해당 지원자가 직무에 대한 열정을 가진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는 “구직자들도 이런 점을 잘 아는지 매년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원자가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 국립대를 졸업한 오모(27) 씨는 건축기사 자격증과 토목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기 때문. 그는 “둘 다 건설사가 선호하는 실무 관련 자격증”이라며 “이런 전문 자격증이 있어야 서울 명문대 출신 지원자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 대기업 건설회사 인사담당자는 “요즘엔 지원자 중 상당수가 건축기사, 토목기사, CAD 같은 전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다”고 전했다.

    PD, 기자 등 미디어 업계를 지망하는 청년들 사이에선 팟캐스트(podcast, 인터넷망을 통해 음성·동영상 파일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제작하는 것이 유행이다. 개인 방송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봄으로써 실무 능력을 쌓는 것. 제작 방법이 간단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는 점이 ‘팟캐스트 스펙 쌓기’의 장점이다. PD 지망생 김모(26·여) 씨는 카페 스터디룸을 대여받아 시사토론 팟캐스트를 제작한다.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토론 음성을 녹음하고, 스마트폰용 음성 편집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녹음 파일을 편집해 아이튠즈(iTunes)에 업로드한다.

    “녹음부터 인터넷 업로드까지 한 3시간 걸려요. 스터디룸을 3시간 빌리는 데는 5000원이고요.”

    독서토론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기자 지망생 김모(28) 씨는 “시사토론, 독서토론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애들이 가장 많다”며 “자기소개서에 실무 관련 이력을 쓸 수도 있고, 토론 면접을 미리 연습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했다.



    “결정적 요소는 아니다”

    취업 준비생들에겐 창업도 스펙이다. 컴퓨터공학과에 재학 중인 유모(28) 씨의 말이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해 앱스토어에 등록해놨어요. 요즘 IT 기업들은 오로지 실무 능력만 보거든요. 게임 개발 관련 창업 경험이 있으면 특채로 입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요.”

    춤, 노래, 운동 실력도 스펙으로 포장된다. 이력서의 취미, 특기를 적는  난에 ‘이색’ 스펙을 적어 넣어 관심을 얻으려는 것. 서울 한 여대에 재학 중인 김모(23) 씨는 ‘스펙 쌓기’ 용으로 벨리댄스를 배운다. 축구를 좋아하는 대학생 송모(26) 씨는 대한축구협회에서 발급하는 축구심판 자격증을 땄다. 그는 “특이한 자격증을 적어 내면 면접관과 한마디라도 더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자격증 취득 이유를 설명했다.

    외모 또한 스펙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미인대회 입상 경험이 있는 남모(28) 씨는 얼마 전 또 다른 미인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는 “미인대회 출신 지원자라고 하면 면접관의 이목을 끌 것”이라며 “미스유니버시티, 미스월드 등 미인대회라는 미인대회는 다 나가는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그는 “이게 정말 취업에 도움 될지는 모르겠다. 어느 면접장에서 ‘미인대회 출신이 너무 많아서 지겹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숨을 내쉰다.

    신스펙 경쟁 현상에 대해 박영진 인크루트 과장은 “탈스펙 채용은 앞으로 더욱 확산될 전망이기 때문에 지원자들은 자기소개서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어필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따라서 자기소개서에 직무 역량 관련 자격증 취득을 녹여내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이색 스펙은 취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아니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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