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충립 前 수경사 보안반장 육필수기 음모와 암투

“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신군부 ‘집권플랜’ 1980년 벽두부터 가동

  •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2/4

전두환 집권 위한 여론조사

“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1980년 5월 9일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열린 김영삼 총재 기자회견.

군부에서는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10·26을 수습했으니 자신의 말대로 군으로 돌아갈 것이냐, 아니면 현실 정치에 뛰어들 것이냐’에 관심이 집중됐다. 보안사 전체 장교들을 대상으로 이와 관련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때 필자는 ‘전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이 돼선 안 되고, 군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런데 조사 결과 ‘전 사령관이 군에 복귀하지 말고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왔다. 보안사는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은 필자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필자는 사령관실로 불려갔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

전두환 전 보안 부대원들이 내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데, 김 소령만 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반대하고 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을 제출했네. 그 이유가 뭐요?

필자 사령관님께서 복귀하지 않고 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다면 사람들은 최 대통령 자리를 빼앗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JP, YS, DJ 등 대통령이 되려고 오랜 세월 준비해온 사람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순리대로 풀어야지, 그러지 않으면 후일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이번 기회는 포기하고 군으로 돌아가셔서 참모총장, 국방부 장관도 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게 좋겠습니다. 다음 정권이 국민의 신뢰를 잃는다면 국민이 ‘전두환 장군이 나와야 한다’며 나설 겁니다. 10·26사건 조사를 통해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분이라는 것은 국민도 알게 됐으니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이 되는 게 합당하다고 봅니다.

전두환 정호용 장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소?



필자 이것은 보안부대 내부 여론조사라 제 개인 생각을 보고한 겁니다. 정호용 장군은 이번 여론조사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전두환 그래, 잘 알겠소. 근무 잘하시오.

전 사령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면담을 마치고 나오면서 그의 대권욕이 확고하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정치적 혼란기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대통령이 등장해 혼란을 수습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집권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봤다. 국민적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면 반드시 후환이 따른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12·12를 일으킨 허씨들(허삼수, 허화평)과 합동수사본부 요원들, 그리고 ‘하나회’ 회원들 간에는 전 사령관을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묵시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필자는 정국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보안사령관과 주변 추종자들의 움직임을 꼼꼼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DJ와 재야 정치권의 투쟁

“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1980년 2월 29일 복권 소식을 들은 김대중 씨가 자택에 몰려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동아일보]

재야 반체제 인사들 중에는 김재규를 옹호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김재규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라고 공공연하게 평가했고, DJ와 그 추종세력은 유신헌법 폐기와 차기 대통령선거를 위한 정치 일정을 공개하라며 적극적인 공개 투쟁을 전개했다.

1979년 11월 10일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이 “헌법에 따라 3개월 안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10대 대통령을 선출하고, 헌법 개정 후 대통령을 선출하겠다”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재야에선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한 대통령 보궐선거를 반대, 유신헌법 즉각 폐지, 거국내각 구성, 조기 총선 실시를 요구했다. 11월 13일 신민당 총재인 YS가 이를 지지하고, 여당인 공화당 총재 JP도 이에 가담하자 군부에서는 JP의 ‘배신 행위’를 규탄했다.

1979년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 대통령은 12월 8일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하고 위반자 68명의 형 집행을 면제했다.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진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다가 1978년 12월부터 가택연금 중이던 DJ가 이 조치에 따라 풀려났다. 아울러 재야 정치인들이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전개했고, 최 대통령이 1980년 2월 29일 DJ 등 시국사범 687명을 복권 조치하자 정국은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헌법 개정을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게 이어졌다. 국회는 1979년 11월 26일 개헌특위를 설치하고 국회 주도의 헌법 개정을 추진했고, 공화·신민 양당은 1980년 2월 9일 직선 대통령중심제, 4년 임기의 1차 중임제 헌법 시안을 확정하고 이를 국회 개헌특위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무분별한 정치 과열 현상을 용납할 수 없다”고 정치권에 경고했다. 신민당은 1980년 3월 15일 민주화촉진대회를 열어 정부의 헌법 개정 심의기구를 해체하라고 촉구하고 그러지 않으면 중대 결단을 하겠다며 계엄사령부를 압박했다. 재야 세력을 대표하는 DJ는 민주화투쟁을 선포하는 한편 “정부가 유신 세력을 주축으로 신당을 구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대통령은 대통령 담화문을 통해 “애국적 견지에서 자제와 화합으로 대동단결해 북한의 도발에 대비하자”고 당부했다. 그리고 10·26사건 이후 중지된 중앙정보부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전두환 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임명해 국내 정치에 직접 관여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확보해줬다.

DJ는 이런 기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학 순회 연설에 나섰다. 4월 29일에는 DJ가 주도하는 ‘국민연합’이 민주화촉진국민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선포한 뒤 반정부 장외투쟁을 본격화했다. 5월 중순 그 세력이 전국적으로 10만 명을 넘어서자, 5월 22일을 기해 정국을 뒤엎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그러자 기회를 엿보던 군부는 1980년 5월 17일 0시를 기해 전국에 비상계엄확대조치를 발표하고 DJ를 포함한 재야 인사들과 여권 권력형 부정축재자들을 구속하기에 이른다. 다음 날 광주에서 DJ 석방과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나면서 5·18이 터지게 된다.




2/4
김충립 | 前 수도경비사령부 보안반장 kimchoonglib@naver.com

관련기사

목록 닫기

“다들 내가 대통령 해야 한다는데…”(전두환)

댓글 창 닫기

2019/07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